2026. 10. 31. 10:40ㆍ아티클 | Article/포토에세이 | Photo Essay
A Lighthouse Etched in Time and Light
Palmido Lighthouse (八尾島燈臺), Incheon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약 15.7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 팔미도가 있다.
두 개의 섬이 사주로 이어져 마치 한자 ‘八’ 자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 작은 섬의 정상에 높이 7.9미터, 지름 4.67미터의 오래된 등대가 서 있다.
1903년 6월 1일 처음 불을 밝힌 이 등대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등대로 남아 있다.



건축사의 눈으로 이 등대를 바라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규모가 아니라 재료와 구조다. 등탑은 콘크리트와 석재를 사용해 원형으로 만들어졌으며, 당시 새로운 건축재료였던 콘크리트가 섬이라는 쉽지 않은 조건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2011년 김종헌·김태우의 실측 및 연구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특징을 바탕으로 팔미도 등대를 국내 최초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평가하기도 했다. 다만 관련 기록에는 벽돌과 돌을 섞은 연와석조로 기록된 자료도 있어, 건립 당시의 재료와 공법에 대해서 는 여전히 살펴볼 부분이 남아 있다.
작은 등대지만 형태에는 기능이 분명하게 담겨 있다. 원형의 등탑과 두꺼운 벽체, 출입구 주변의 석재 구성, 그리고 양쪽에 남아 있는 돌담은 바다 위에서 등대의 존재를 드러내고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장식보다 기능이 먼저였던 근대 건축의 태도가 이 작은 건축물 안에 담겨 있는 셈이다.
설계자 역시 영국인 하딩(John Reginald Harding)과 일본인 이시바시 아야히코의 이름이 함께 거론될 만큼, 대한제국기 새로운 건축기술이 여러 나라의 기술과 교류하며 들어오던 시대적 상황을 보여준다.


팔미도 등대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건축물이 놓인 장소’다. 배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 바다를 건너고, 섬에 내려 등대까지 걸어가는 과정 자체가 건축을 만나는 시간이 된다. 도시 안에 서 있는 근대건축물과 달리 이곳에서는 건축물보다 먼저 바다와 바람, 섬의 지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하는 작은 등대는 120년이 넘는 시간을 조용히 보여준다.
1903년 항로를 밝히기 위해 세워진 등대는 1950년 인천상륙작전 당시 다시 역사의 현장에 놓였다. 그리고 2003년 옛 등대가 임무를 마친 뒤에는 바로 곁에 새로운 등대가 세워졌다. 1903년의 등대와 2003년의 등대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한 장소에서 서로 다른 시대의 기술과 건축을 마주하게 한다. 오래된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그 흔적을 남겨두는 것이 건축의 또 다른 역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팔미도 등대는 크지 않다.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다. 그러나 작은 건축물 하나에 근대 건축기술의 도입과 항로표지의 역사, 전쟁의 기억, 그리고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겹쳐 있다. 그래서 이곳을 바라보면 건축물의 크기보다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이 더 크게 느껴진다.
건축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팔미도 등대는 그 말을 아주 작은 크기로 보여주는 건축물인지도 모른다. 바다 위에 세워진 작은 등대 하나가 100년을 넘어 12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인천의 근대와 전쟁, 기술의 변화와 사람들의 기억을 함께 품고 있다. 건축사로서 이 등대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글·사진. 김교중 Kim Kyo Jung
건축사사무소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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