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1. 14:54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Architecture and the Urban in Film and Literature⑨ <The Razor's Edge> 1946 American drama film directed by Edmund Goulding
1960~197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내 세대는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 1915)’ 나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 1919)’ 등으로 알려진 서머싯 몸(W. Somerset Maugham, 1874~1965)의 작품 중 상당수는 읽은 것으로 안다. 기억에 생생한 것은 아주 짧은 작품으로 ‘점심(The Luncheon)’이라는 글이다. 여중생 때 친구들은 걸핏하면 “캐비어라면 먹 겠어요”라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했다. 단편은 명 문장으로, 장편은 명작 고전으로 서머싯 몸 작 품은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의 나이 70세인 1944년에 쓴 면도날은 중·고등학생 땐 몰랐고, 대학생 때 우연히 선배의 책 을 빌려서 읽게 되었다. 당시는 번역이 잘 되었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없으니 그냥 마구잡이로 읽던 때였다. 어느 주말에, 학교 연구실(당시 학부생인데 연구실에 있었다)에서 책을 들고 거의 9시간을 꿈쩍 않고 읽었던 것 같다(그때의 번역판은 지금의 번역판보다 훨씬 두꺼웠다. 나중에 나온 번역판은 600쪽이 안 되니 대여섯 시간이면 한 권을 읽을 수 있다). 그 이후 누가 내게 맘 에 드는 남자를 이야기하라면 셋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로렌스(래리) 대럴(Larry Darrell) 같은 남자라고 답했다. 도서관에 앉으면 식사시간을 잊을 정도로 집중하는 자, 스스로 를 찾기 위해 몸소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하는 실천가, 어려운 상황에 도움이 되려는 노력을 마다 하지 않는 인간애의 구현자, 그리고 일상이 아름다운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 나름의 삶 에 충실한 자…. 뭐 이런 것들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훗날 명작영화를 통해 보게 된 영화의 버전들… 그 중 1946년 에드먼드 굴딩 감독의 영화는 결코 짧지 않은 145분짜리 영화인데, 언제 보아도 단숨에 시간이 간다. 한 달에 한 편, 연간 12편의 문학을 바탕으로 한 영화보기 모임에서 다룬 아홉 번째 영화였 는데, 참석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긴 것을 별로 못 느끼고 단숨에 본 영화라면서 아주 즐거워했다. 원작자는 소설과 너무 달리 표현해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중 서머싯 몸이 본인에게 인상적이었던 한 젊은이에 대해 서술하는 것으로 되 어있으며, 원작은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시 또는 주요 장소는 1919년 시카고에서 시작해서 파리, 그리고 리비에라 해안, 프랑스의 탄광, 수도원, 농장과 인 도 등 다양한 배경으로 서술된다. 주인공 래리는 전쟁터에서 자기를 구하려다 먼 저 죽은 동료에 대한 충격으로 자신의 삶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찾 아서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하며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런 래리 대 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증오로부터의 사랑, 실패에서 성공, 죽음으로부터의 삶 (Love from hate; Success from failure; Life from death)을 엿볼 수 있는 소설과 영화다.
1919년 이후와 금주령이 발동하던 1920~193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 그리고 시카고 미시간 등 미국 중서부 및 유럽의 파리와 프랑스 남부 등을 공간적 배경 으로 한다. 이를 바탕으로 돈이나 사회적 지위, 멋진 집 등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굳게 믿고 사는 상류계층의 삶과 그들과 한 동네에서 살아오면서 어떤 계기로 자 신에게 묻던 심오한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구도하는 자세로 사는 주인공의 면 면을 서술하고 있다. 경제 상황은 다르지만 어린 시절부터 한 동네 친구로 자라 던 래리, 이사벨, 그레이, 소피, 밥의 이야기다.
한때 래리의 약혼녀였던 이사벨에겐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인생이 사교계인 외삼 촌 엘리엇 템플턴이 있다. 그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조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질녀의 약혼자가 심히 못마땅하다. 술카(Sulka)라는 남성용 고급 맞춤집에서 속 옷까지 맞추어 입는 그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중요한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것에 대해 한없이 섭섭해한다. 본인 모르게 래리의 기지로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초대 장에 “나, 엘리엇 템플턴은 주님과의 선약으로 인하여 초대에 응할 수 없어서 죄 송하다”는 회신을 대필하면서 숨을 거둔다. ‘교회에서 받은 초대장을 들고 하느님의 왕국에 입국할 거라며 모든 문이 본인을 위해 열릴 것이라고 굳게 믿는’ 엘 리엇은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이사벨은 1년에 3,000불 정도로 살 수 있다고 믿으며 본질적으로 자유스럽게 또는 빈둥거리며(Loaf) 살고자 하는 래리 를 사랑은 하지만 결혼할 수는 없다고 여긴다. 결국 또 다른 어린 시절 한 동네 친 구인 당대 백만장자의 아들 그레이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잘 산다. 그러다 1929년 경제 대공황과 함께 주식 폭락으로 하루아침에 생활환경이 바뀌게 된 다. 또 다른 동네 친구인 소피는 소녀 시절에 시도 쓰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랑스 러운 순수함을 가진 여인으로 묘사된다. 본인에게 걸맞은 재원과 결혼해서 아이 를 낳고 잘 살던 중 음주차량에 남편과 아이를 하루아침에 잃고 시댁에서 쫓겨나 파리에서 지내고 있다. 근근이 지탱하던 삶을 살던 중 파리에서 친구들과 재회한 다. 래리와 소피에게 한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사벨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소피 는 기회를 잃게 되고, 의도치 않게 살해당한다.
래리는 광산에서 일을 하면서 만난, 파계한 신부인지 몰랐던 동료와의 대화 중 인도로 갈 결심을 하고 구도(求道)하러 인도로 간다. 수행 끝에 기이한 변화를 느끼게 되고 하산한다.
영화의 첫 장면으로 시작되는 시카고 저택에서의 파티는 당대 미국 중서부의 부 유한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다. 시작 부분에 언급된 금주령은 1910~1920년대 미국 도시에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대량의 범죄가 발생했고, 그 원인을 음주라 고 여겼기에 금주법을 선포하고 금주운동이 있었다. 특히 이민자가 주로 일자리 를 소개받는 자리가 술집이다 보니 더더욱 술이 범죄와 부패의 원인이라고 생각 해 금주법을 선포했다고 한다.
· 한편 엘리엇의 파리 아파트는 거실 밖으로 노트르담 성당이 보이므로 파리 중 심가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소피의 단골인 카페 뤼 드 라페(Rue de Lappe)는 현재도 바스티유 지역의 밤 문화의 중심인 곳이다. 명칭은 바스티유 근처에서 야채 및 과일나무를 재배하 던 ‘제라르 드 라페’라는 정원사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기도 하고, 지역의 가 난한 아이들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작은 공동체를 설립한 수도원장의 이름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 이 술을 마시면 마치 달빛 아래서 음악을 듣는 기분이라고 묘사된 기이한 이름 의 술 페르조브카(Persovka, 폴란드 보드카 Zubrowska로 알려져 있다)나, 사랑 시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 롱사르(Pierre de Ronsard 1524~1585)의 시, 25세에 요절한 영국 시인 키이츠(John Keats 1795~1821)의 시 등이 서 머싯 몸의 특유의 박식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키이츠는 당대 퍼시 비 시 셀리와 조지 고든 바이런과 함께 당대 낭만주의를 대변하는 3대 낭만파 시 인으로 알려져 있다.
· 알프레드 뉴먼이 만든 이 영화음악 중 ‘페르조브카 왈츠’라는 곡에 술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 리비에라는 프로방스 알프 코트다쥐르(Provence-Alpes-Côte d'Azur) 지 역으로 이탈리아와 접한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에 면하는 해안과 리구리아해를 의미하며, 툴롱(Toulon)은 그곳의 항구 도시로, 바르주(Var)의 주도로 프랑스 의 해군 기지가 있는 군항이기도 하다. 리비에라나 니스에 별장이 있다는 것은 사교계의 중요 인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 히말라야로 묘사된 인도 장면은 콜로라도 덴버에서 촬영했다고 자료에 나와 있다.
소설과 영화에서 조금 다르게 처리된 부분도 있지만, 여기서는 주로 배경이 되었 던 도시나 건축물 또는 실내 공간들을 다루려는 취지이므로 차이점은 최소로 소 개한다. 마지막에 이사벨에게 소피에게 술을 마시게 한 의도를 묻는 장면은 영화 에서는 래리가, 소설에서는 서머싯 몸이 묻는 것으로 되어 있다.
<면도날(Razor’s Edge)>이란 제목은 힌두 문학(Hindu sacred literature) 의 한 부류를 구성하는 카타 우파니샤드(Katha Upanishad) 중 한 구절에서 따 온 것으로, 소설의 시작 전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면도날의 날카로운 모서리는 지나가기 어렵다. 그러므로 현자(賢者)는 구원 의 길이 어렵다고 말한다(The sharp edge of a razor is difficult to pass over; thus the wise say the path to Salvation is hard).”
이 한 구절을 넣음으로 해서 20세기 최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한편 이 영화에서는 당대의 톱스타 타이론 파워가 래리 역을 맡았는데, 그의 수 려한 외모 탓에 오히려 주제 전달에 실패했다는 평도 있다.
다음 호는 스티븐 돌드리 감독에 데이비드 헤어가 각본을 맡은 2008년 영 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 원작: 베른하르트 슐링크 ‘Der Vorleser’)>를 다룬다.
글. 조인숙 Cho, In-Souk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조인숙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1986~ 현재)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업(공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수료(건축학 석사/건축학 박사) · 건축학 박사논문(역사·이론 분야): 한국 불교 삼보사찰의 지속가능한 보전에 관한 연구 · 독일 뮌헨대학교(LMU) 및 뮌헨공대(TUM) 수학(교환장학생)
choinso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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