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별, 우리 집 2022.12

2022. 12. 21. 14:45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My star, my house

 

아무튼 우리 집을 지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막연한 상상 속에 진학한 건축학과에서는 크고 멋 진 건물들보다는 자꾸 작은 것들에 손이 갔고 결국 졸업작품도 다가구주택이었 다. 다행히 인턴이나 졸업 후 다닌 사무실에서는 규모가 큰 일들도 접할 수 있었 는데, 여전히 제일 재미있던 작업은 주택설계였다. 집은 내가 매일 경험하는 공간 이기에 디테일한 상상이 가능했고, 그게 작업에 몰입하게 했다.

그래서 빨리 내가 살 집을 짓고 싶었다. 마음껏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을, 시간을 그 리고 싶었고 우리 가족이라는 건축주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소통할 수 있기에 정말 좋은 집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실무수련 과정을 마치고 자격이 생기자 서둘러 시험을 준비했고, 운이 좋게 바로 건축사가 되었다. 건축사가 되니 사무실을 다니며 어찌나 엉덩이가 들썩대던지, 겁도 없이 다음 해에 바로 독립하였고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니 내 집이라도 지어야겠다며 땅을 찾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가족들이 포트폴리오만 생기면 빵빵 터질 수 있다는 나의 허풍을 들어주었고, 우리 집을 지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 하자면 집은 지었지만 포트폴리오는 아직 없다.

 

이웃을 배려하는 설계란?

 

내 집을 짓는데 이웃을 어디까지 배려해야 하는가?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 이 지 면을 빌어 조언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메일 주시면 너 무 감사하겠습니다.)

집을 지으면 십 년 늙는다던데, 나는 아직 젊으니깐, 늙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겁도 없이 시작했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 더듬듯 각 공정마다 시공자를 찾아나서며 공 사를 했음에도 시공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날 늙게 만든 것은 이웃들의 민원이 었다. 내 집을 내가 설계하고 감리하며 시공하니 앞으로 계속 얼굴을 볼 이웃과의 관계가 너무 어려웠다. 중재자가 없어 모든 비난을 다 받고 다루어야 했으니 말이 다. 우리 땅은 경사가 있는 전원주택지로 앞뒤, 양옆 주변 모두에 집이 들어서 있 었다. 지금 다시 땅을 고르라고 하면 과연 이런 땅을 고를 수 있을까 싶다.

특히 뒷 집은 1층의 골조가 다 되었을 때 빼꼼 내려다보더니 자기들이 생각한 것 이랑 너무 다르다며 우리집 구조를 물어보며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고 항의를 했다. 내가 어려서였을까? 이야기를 나누러 간 자리에서는 공부는 열심히 해서 건축사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웃을 배려할 줄 모른다며 훈계를 들어야 했다. 우 리 집이 뒷집의 조망을 가로막는다는 이유였다.

벌써 집을 지은지 3년이 지났는데, 정말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동네 마스 터플랜이나 지침 없는 땅에서 나는 그저 건축선을 비롯한 법을 따지고, 경사지 를 이용한 것일 뿐이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우리집이 튀게 높거나 한 것도 물론 아니다. 나도 뒷집의 경관을 생각해서 최대한 낮게 지으려 현장에서도 레벨을 몇 번을 따졌다. 그렇다고 뒷집 조망을 피해 주기 위해서, 넓지도 않은 땅에 건축면 적을 포기하거나 일조를 포기하는 등의 계획을 할 수는 없는것 아닌가? 아님 아 직도 내가 많이 부족한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우리는 공사 중에 방 하나를 지웠고 이를 조건으로 뒷집을 달랬다.

 

 

포트폴리오는 없지만 나의 힘

 

그 말 때문일까. 이 집을 통해 '짜잔' 하고 데뷔하고 싶었던 마음은 뒤로 숨기게 되었다. 계획에서 사라진 방처럼 말이다.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너무 소 중한 첫 집을 어떻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재주껏 사진 을 찍어도 내가 생활하면서 순간순간 스며오는 감동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우리 집은 공중정원을 통해 들어온다. 처음 집에 들어올 때의 인상이 중요하다 생각했는데, 밖에서 겪는 안 좋은 일들을 이를 경계로 털고 들어왔으면 하는 마 음에서였다. 정원을 건너 계단을 오르면 좁았던 시야가 탁 트이는 시원함이 있다. 잠깐이지만 마치 모형을 들여다보듯 보이는 잔디밭을 통해 작은 왕국의 거인이 된 듯하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며 켜지는 센서등은 조용한 알림이다. 인기척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이층으로 가는 길을 밝혀주기도 한다. 현관 옆으로는 작은 사 랑방이 있다. 누가 오가나 볼 수 있는, 예전 시골집을 갔을 때 마당으로 들어오는 우리를 창문 열고 반겨주시던 할머니의 집을 기억했다. 자랑은 이만 줄여야겠다. 계획대로 내가 지은 집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직접 설계한 집에 사 니 큰 힘이 된다. 건축사로는 내가 그린 선들이 어떻게 구현되고 어떤 영향을 주 는지 여러해 경험할 수 있어서 좋고, 직접 시공을 하면서 배운 것들은 다른 계획 에서도 구현을 위한 이해와 정확성을 올려주는 아주 훌륭한 공부였다. 물론 무엇 보다 집이 주는 공간의 응원이 크다. 이전 아파트 생활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따뜻한 아침 햇살이 감사하고, 내가 지은 집에서의 삶이 만족스러우니 앞으로도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에 마음이 설렌다.

 

2023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을 요청받았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마침 한 해를 마 무리하는 12월 호에 실릴 글이라 그간의 일을 뒤돌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집을 짓고 나니 하나의 꿈을 이룬 듯하여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지 텅 비어있었는데, 이젠 다시 나아갈 방향을 세워봐야 할 것 같다.

건축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승하세요.

 

 

 

 

 

 

 

글. 김미소 Kim, Miso 25A건축사사무소

 

김미소 건축사·25A건축사사무소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전공, 시각디자인학과를 부전공했다. 졸 업 후 지이건축에서 실무수련을 마치고 희림건축으로 옮겨 경 험을 쌓던 중 대한민국 건축사(KIRA)가 되었다. 2017년부터 는 25A건축사사무소 대표가 되어 “어떤 별에 살고 싶으세요?” 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의 우주를 만들고자 한다.

 

 

25architect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