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 포스터들 2020.2

2023. 1. 10. 09:04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Intriguing movie poster 

 

<기생충> 포스터. 긴장감을 주는 모호한 포스터로서 배우의 스타성보다 연상을 통 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형식이다.

해외에서 각종 상을 휩쓸고 있는 영화 <기생충>은 포스터 디자인에서도 남다른 감각을 보여주었다. 이 포스터는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아마존을 비롯한 해외의 각종 영화 포스터 판매 사이트에서 팔리고 있다. 한국의 영화 포스터로는 이례적인 일이다. <기생충>의 포스터가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한국 영화로서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인 IMDB에서 <기생충>에 평점을 준 관객은 16만 명이 넘는다.(2020년 1월 집계) 봉준호 감독의 또다른 걸작으로 16년 전에 개봉된 <살인의 추억>의 11만 명보다 훨씬 많다. 지난해 한국 최고 흥행 영화인 <극한직업>의 평점 참여 관객 수는 3천 명대에 불과하다. 이것만 봐도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외국인들에게 알려졌는지 알 수 있다. 평점 또한 대단히 높아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한 단계 높은 26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런 유명세와 별도로 이 영화 포스터는 기존의 영화 포스터들과 차별화된 디자인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기존의 가장 보편적인 영화 포스터는 출연한 스타의 얼굴을 부각하는 것이다. 영화 예술은 다른 어떤 장르의 예술보다도 많은 자본이 투여된다. 이런 조건이 영화의 모험을 위축시킨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만든다. 포스터도 마찬가지다. 가장 무난한 포스터는 당연히 흥행의 열쇠인 배우를 부각하는 것이다. 배우의 얼굴이 중심인 영화 포스터의 역사는 아주 오래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예외적인 포스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솔 바스가 디자인한 일련의 영화 포스터들은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예술성을 인정 받았다. 하지만 이런 포스터는 말 그대로 예외적이며 극소수다. 대부분의 영화는 역시 스타의 얼굴을 띄운다.  

 

<어벤져스: 엔드 게임> 포스터. 아이언맨 과 캡틴 아메리카 같은 주요 캐릭터들을 크고 작게 구성했다. 주연 배우 얼굴 보여 주기가 주요 전략이다

 

<토이 스토리 4> 포스터. 애니메이션 역 시 실사 영화와 똑같이 주요 캐릭터를 중 심으로 배치하는 방식이다. <어벤져스: 엔 드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이다.


2019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어벤져스: 앤드 게임>을 비롯해 10위 안에 드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캡틴 마블>, <알라딘>, <분노의 질주: 홉스&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출연 배우들의 얼굴 나열이 디자인의 키 포인트다. 심지어는 <토이 스토리 4>, <겨울왕국 2> 같은 애니메이션조차 주요 캐릭터의 얼굴 보여주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중앙에 주연 배우를 앉히고 양 옆으로 주인공 다음으로 비중 있는 인물들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런 포스터는 한 마디로 ‘구성(composition)’이 디자인의 핵심 기술이다. 내용보다는 형식적인 꾸밈에 매진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을 중심으로 부수적인 인물이 양 옆에 배치되는 삼각형 구도가 흔해진다. 포스터에는 어떠한 이야기나 긴장감도 없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포스터. 전형 적인 삼각형 구도
<겨울왕국 2> 포스터.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과 똑같은 구성 방식을 보여준다

 

<원스 어폰 어 타임&hellip; 인 할리우드> 포스 터. 1970년대에 흔하게 봤던 스타일이다. 일러스트레이션 묘사와 영화 주요 장면의 짜집기 편집, 아울러 중앙에 주연 배우의 얼굴 띄우기까지 딱 복고풍이다

 

<로즈메리의 아기> 포스터. 주연 배우의 옆 얼굴과 실루엣으로 처리한 유모차가 신 비로우면서도 공포 분위기를 자아낸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중 하나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포스터는 1970년대풍 포스터로 디자인했다. 주연 배우를 중심으로 주변에 영화의 주요 장면을 짜집기 편집하고, 그것을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하는 것이 전형적인 1970년대식이다. 이 복고풍 포스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주연 배우의 얼굴을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2019년의 주요 흥행 영화 포스터는 이 40여 년 전 양식에서 진보한 게 거의 없다. 물론 기술적인 완성도만큼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아이디어의 측면에서는 천편일률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빈곤함을 보여준다. 

반면에 <기생충>의 포스터는 그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주연 배우의 얼굴을 오히려 가려서 혼란을 야기시킨다. 이른바 ‘검열 막대기(censor bars)’로 배우의 눈을 가렸다. 이런 검열 막대기는 예전에 가십 기사를 다루는 주간 잡지에서 흔히 보았던 것이다. 그런 기사에서는 불륜이나 치정 살인 같은 흥미 위주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해당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는 사진을 활용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포스터에 쓰인 검정색 검열 막대기는 바로 그런 기사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왼쪽에 여성의 맨 다리가 놓여 있어서 더욱 어떤 살인사건이나 폭행 현장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이 포스터에는 단지 유명한 얼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다. 그것도 뭔가 긴장감 넘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어둠의 표적> 포스터. 깨진 안경이 뭔가 폭력적인 사건을 암시한다.



뛰어난 영화 포스터는 배우의 얼굴이나 주요 장면에 의지하지 않는다. 함축, 연상, 암시를 통해 영화에 대해 상상하게 만든다. 영화 포스터 디자인의 대가인 솔 바스는 주로 요약과 함축의 기술을 활용했다. 예를 들어 <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 포스터에는 일그러진 팔과 손이 나오는데, 이것은 빠른 손을 가진 주인공 도박사의 소중한 손이자 주사를 맞는 마약 중독자의 저주 받은 팔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영화의 주요 내용을 함축한 것이다. 반면에 할리우드의 걸작 포스터 중 하나인 <로즈메리의 아기>(1968년작)이나 <어둠의 표적>(1971년작)은 연상과 암시를 통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이 두 영화 포스터에서 주연 배우의 얼굴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기생충> 역시 여러 요소들을 활용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연상의 효과’를 만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영화로는 정말 보기 드문 아주 신선한 포스터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