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향연과 눈 축제의 고장, 비에이 2020.2

2023. 1. 10. 09:07아티클 | Article/포토에세이 | Photo Essay

Biei, a town of feast of flowers and snow festival 

 

비에이는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설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설경뿐 아니라 여름에 펼쳐지는 꽃의 향연도 못지않게 아름답다. 필자는 여러 아름다움이 오버랩되는 비에이의 면면을 소개하고자 훗카이도 내 같은 장소를 각기 다른 계절에 두 번 방문했다. 현재 한·일 간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다소 글을 쓰기가 망설여지는 측면도 없지 않으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건축사분들께서 이곳 풍광의 아름다움과 현지인들의 일상에 깃들어있는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이 글을 기고한다.

 

여름 들녘에서의 스프링클러 축제(여름 들녘에서 뿜어지는 스프링클러)
후라노의 라벤더 향에 취한 채 비에이로 이동하던 중 창밖으로 생경한 풍경이 눈에 들어와 급히 차를 세웠다. 넓디넓은 논에서 스프링클러의 물줄기가 하늘을 향해 뿜어지고 있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노령국가다. 농촌 노동력 대부분이 노인이다 보니 등장한 방책일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스프링클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여름 해질녘의 들판을 시원하게 적시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나라 들판에도 나타날 풍경일지 사뭇 궁금해진다.

 

 

여러 아름다움이 오버랩되는 홋카이도에서(비에이 들녘의 설경)

 

여러 아름다움이 오버랩되는 홋카이도에서(비에이 들녘의 여름)

 

 

후라노의 아로마 농장, 팜 도미타
한때 라벤더 산업이 쇠퇴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1976년 국철(현, JR)에서 발행한 달력에 아로마 농장 팜 도미타의 사진들이 소개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많은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이 후라노의 팜 도미타로 모여들면서 농장들은 다시 라벤더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여름철 들판에 라벤더 꽃이 만개한 모습은 마치 시루떡을 겹겹으로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색채가 아름다운 구릉의 곡선과 앙상블을 이루며 천상의 경치를 자랑한다. 팜 도미타에서는 라벤더 추출액을 첨가한 에센셜 오일과 라벤더 비누 등을 직접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후라노의 라벤더 화원, 나카 후라노 라벤더 정원
JR역에서 차로 3분 정도 가면 나카 후라노의 라벤더 정원이 나타난다. 겨울 스포츠의 명소 호쿠세산 스키장이 여름에는 라벤더 정원으로 변신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비에이의 밀밭과 감자밭 들녘
비에이는 사방 천지가 들판이지만 작물들이 싱싱하고 건강해 보이는 것을 보면 토질이 상당히 비옥한 듯하다. 주로 밀과 감자가 재배되는 평범한 시골이다. 그러나 그 작물들이 우리에게 주는 시각적 감동은 남다르다. 일부러 깎아서 만든 지형도 아니건만 오밀조밀한 곡선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이 땅에 자리 잡고 사는 사람들의 행운이 아닌가 싶다. 그 주어진 행운을 잘 가꿔가는 그들의 자연친화적 생활방식에 찬사를 보낸다.

영화 ‘러브레터’가 생각나는 오타루 운하
오타루는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으로 유명한 홋카이도 북부 지역에 있는 소규모 항구도시다. “오겡끼데스까? 와따시모 겡끼데스!”하고 영화 속 여주인공의 대사를 외쳐본다. 우리의 심금을 울린 바 있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매력적인 운하의 도시에 온 것이 실감난다. 오타루는 영화뿐 아니라 과거 운하 주변의 낡은 창고 건물들을 리노베이션해 오르골의 메카로 자리 잡으면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동화 같은 비에이 농촌
비에이의 어느 이름 모를 농장 풍경이다. 소담스런 풍경이 마치 동화 속의 삽화 같다.

청록빛 호수, 아오이 이케
홋카이도의 명소인 청록빛 호수 아오이 이케는 에메랄드빛 잔잔한 물결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위를 잊게 만든다. 언제부터 호수가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물속에서 생명을 다한 고사목의 상태를 보면 상당한 세월이 지났으리라 짐작이 간다. 아쉽게도 겨울 경치는 온통 눈을 뒤집어쓰고 있어 에메랄드 빛깔은 볼 수 없었다.

 

비에이 들녘의 설경
비에이 들녘의 설경은 여름의 풍성함은 간데없이 단조로운 경치가 감탄을 내뱉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이 설경을 보면서 일본인들의 ‘단순화시키는 재능’이 이런 풍경에서 기인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글. 김기성 Kim, Kisung 예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