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광야, 그랜드 서클 2020.3

2023. 1. 11. 09:07아티클 | Article/포토에세이 | Photo Essay

Wilderness of the American West, 
Grand Circle 

 

그랜드 서클(Grand Circle)은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무려 열세 시간 이상을 가야 도착한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가면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이 가슴에 확 와 닿는다. 라스베가스다! 그랜드 서클을 지나는 관문에 있다. 라스베가스를 뒤로 하고 다시 일곱 시간을 차로 달려가야 드디어 그랜드 서클 서쪽에 있는 페이지(page) 시에 도착한다.
그랜드 서클은 아리조나 주, 유타 주, 네바다 주, 이 세 개 주가 연결돼 지도로 보면 커다란 원형 관광벨트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곳이 그랜드 서클이다. 이곳은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랭크되었고 각 방송국들이 앞 다퉈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도 한, 세계적인 관광지다. 
이 지역을 탐방하는 동안 여러 가지 감회를 느꼈지만 그 중에서도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있는 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다. 이방인을 대하는 정겹고 온화한 태도, 법을 정확하게 준수하며 살고 있음직한 그들의 생활 태도, 그리고 어디를 가도 쓰레기 하나 볼 수 없이 잘 유지되고 있는 자연에 대한 이들의 배려심이 인상 깊다. 이런 면모들이 오늘날 거대한 미국의 위상을 형성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경이로운 수만 년의 세월, 브라이스 캐년
유타주 남부에 펼쳐진 거대한 원형 땅에 자리한 브라이스 캐년은 자이언 국립공원에서 보면 북동쪽으로 대략 85마일 거리에 있다. 일출과 일몰 때 후드라 불리는 핑크색 바위 수백만 개가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수한 바위들이 몇 만 년의 세월을 거쳐 비바람에 깎이면서 형성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서부영화의 단골 촬영지, 모뉴멘트 밸리
애리조나 주와 유타 주 경계, 동쪽으로는 뉴멕시코 주 근처에 위치한 모뉴멘트 벨리(Monument Valley). 끝없이 펼쳐진 붉은 평원과 거대한 바위기둥, 언덕, 나바호(Navajo) 인디언 마을들로 새로운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이곳은 서부 개척 시대에 백인들에 의해 수많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죽임을 당한 불행한 역사가 깃든 곳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바호 인디언들의 영혼의 성지기도 하다.
인디언 자치 구역에 위치한 모뉴멘트 벨리 나바호 부족 공원은 서부영화의 단골 촬영지로 현재까지도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존 웨인이 활약했던 서부영화 속 익숙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면 마치 영화에 출연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말을 탄 채 절벽 끝에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주인공을 상상하며 필자는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빛이 부리는 마술의 공간, 앤틸로프 캐년
페이지 시내에서 약 11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앤틸로프 캐년(Antelope Canyon)은 업퍼 캐년(Upper Canyon)과 로우 캐년(Lower Canyon)을 통칭하는 곳이다. 업퍼 캐년은 입구보다 높은 곳에, 로우 캐년은 입구보다 낮은 곳에 형성된 계곡이다. 
앤틸로프 캐년은 나바호 인디언 말로 ‘Tse' bighanilini’다. 이는 'the place where water runs through rocks(바위틈으로 물이 흐르는 곳)'란 뜻이다. 그랜드 캐년이나 브라이스 캐년, 자이언트 캐년만큼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자연의 신비와 빛의 마술을 체험하기엔 그지없이 좋다. 수만 년 동안 물이 흐르면서 이리저리 깎인 탓에 지금은 붉은 사암층의 협곡만이 남아 있다. 협곡 안으로 빛이 들면 반사된 빛이 붉은 사암층을 비춘다. 암석 계곡의 깊이는 40~50미터 정도다. 구불구불해서 하늘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간혹 하늘이 보이는 공간에서는 직사광선 빛이 부리는 마술을 볼 수 있다. 바닥에 있는 고운 모래를 허공에 한 움큼 뿌리면 먼지와 빛이 떨어지는 듯이 아름답고도 마술 같은 현상이 펼쳐진다. 

아찔한 절벽 끝, 호스슈 벤드
호스슈 밴드(Horseshoe Bend)는 콜로라도 강이 270도로 휘어 U자 형태로 흘러가면서 형성된 곳으로 그 모습이 말발굽을 닮았다고 해서 그 같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호스슈 밴드가 해발 1,300미터 높이인데 반해 콜로라도 강은 해발 980미터에서 흐른다. 그러니 절벽 높이는 300미터쯤 되는 셈이다. 이곳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고 어지럽다. 헌데 특이한 점은 높이가 수백 미터나 차이 남에도 불구하고 절벽에는 안전난간 하나 없다는 것이다. 절벽 끝에 서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한데 왜 안전난간을 설치하지 않았을까? 이따금 경치에 취해 호기를 부리다 추락하는 사고도 발생하는데 말이다. 미국인들만의 독특한 정서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참고로 필자는 절벽 끝에 엎드린 채 이 사진을 촬영했다.

너무 길고 너무 깊은 그랜드 캐년
미국 애리조나 주 북서부 고원지대는 콜로라도 강의 침식으로 생긴, 폭 0.2~29킬로미터, 길이 443킬로미터의 거대한 협곡이다. 애리조나 주 북쪽 경계선 근처 파리아 강 어귀에서 시작해 네바다 주 경계선 근처 그랜드위시 절벽까지 이어진다. 그랜드 캐년은 이곳에서 갈라진 수많은 협곡과 고원지대를 아우른다. 남과 북, 양 끝에 위치한 사우스 림(South-Lim)과 노우스 림(Nouth-Lim)의 거리와 깊이는 너무 길고 깊어 짐작조차 어렵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그랜드 캐년을 제대로 여행하려면 계곡의 가장 아래 지점인 콜로라도 강까지 꼬박 하루를 걸어서 내려가야 한단다. 계곡의 거대함이 새삼 실감난다. 사우스 림 끝에 서 있는 나 자신은 너무나 작다.

 

 

 

 

글. 김기성 Kim, Kisung 예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