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품이 발휘하는 환유의 힘 2020.6

2023. 1. 16. 09:03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The power of metonymy from movie props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1960년대 말을 추억하는 영화다. 따라서 1960년대를 복원해야 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고증이나 복원의 노력이 너무나 꼼꼼하고 충실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나 큰 차도에서 배우가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이 있다. 차 안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도로 전체를 보여주면서 차가 달린다. 시간도 꽤 길다. 이때 차도를 달리는 차들이 몽땅 그 시대의 차다. 그 시간 동안 도로의 차들을 완전히 통제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많은 골동 차들을 모두 어떻게 긁어 모았는지 감탄스러울 뿐이다. 

 

주차장에 주차된 차들은 1960년대에 유행한 머슬카들이다. 차체가 길고 투도어에 각이 져 있다. 이런 스타일은 너무 고급이어서 복고풍으로 다시 유행하기도 힘들다.


이 영화는 1960년대 패션, 60년대 이동수단, 60년대 가구와 가전제품, 60년대 컬러, 그리고 60년대 포스터와 서체까지 완벽하게 재현한다. 영화에서는 배우의 연기만큼이나 무대와 소품 또한 중요하다. 무대와 소품이 받쳐주지 않으면 연기는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어쩌면 무대와 소품조차도 연기를 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특정 사물을 보면, 곧바로 특정 시대와 특정 지역으로 인도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환유의 법칙이라고 한다. 

환유는 비유법의 하나다. 은유는 전혀 상관 없는 두 개의 사물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문장에서 마음과 호수는 전혀 상관이 없는 완전히 별개의 개념이다. 고요함, 잔잔함, 평화로움 같은 호수가 갖고 있는 속성을 통해 내 마음이 그렇다고 연상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반면에 환유는 가까이 있는 것, 더 나아가 신체와 접촉하는 사물로 비유하는 것이다. “한 잔 하러 가자”고 할 때 잔은 잔 자체가 아니라 술을 뜻한다. 잔은 사람이 술을 마실 때 쓰는 도구이고, 또 잔과 신체, 잔과 술은 서로 접촉하는 사물이다. 잔은 자연스럽게 술을 환기시킨다. 환유는 은유보다 훨씬 직접적이다. 

 

오렌지색 쿠퍼 블랙 서체가 1960년대 팝 문화를 연상시킨다.
1966년에 발표된 비치 보이스의 명반 <펫 사운즈>는 쿠퍼 블랙이 쓰인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또한 환유는 하나의 사물, 소리, 냄새, 색채로 그것이 지시하는 어떤 기억 전체를 불러오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강력한 비유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어느날 홍차와 마들렌 과자를 먹으면서 잊고 있었던 자신의 과거 기억(과거 홍차와 마들렌 과자를 먹었던 시절의 기억)이 재생된다. 이때 홍차와 마들렌 과자의 향과 냄새는 과거를 연상시키는 환유가 된다. 사진 또한 이런 환유의 힘을 갖는다. 사진 속에서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가 살아 있었던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영화는 일종의 연속 사진이므로 환유의 힘을 갖는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지나가는 자동차 한 대만으로도 관객은 곧바로 1960년대로 날아갈 수 있다. 영화 속 거리의 자동차들을 보면 그 하나 하나의 모델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각이 지면서도 차체가 아주 긴 형태에서 전형적인 1960년대 화려한 머슬카를 느낄 수 있다. 멋을 잔뜩 부린 고성능 머슬카는 1973년 석유파동이 일어나기 전 기름값이 아직 싸던 시절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자동차 문화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또 결코 다시 유행할 수 없는 머슬카 스타일은 1960-70년대 미국의 환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뿐이겠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1960년대 음악 또한 그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관객을 붙잡는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포스터는 1960년대에 유행한 전형적인 스타일로 디자 인되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포스터는 1960년대에 유행한 전형적인 스타일로 디자 인되었다



이런 환유는 영화 전체를 이끌어갈 뿐만 아니라 영화 줄거리와는 별도로 1960년대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안긴다. 여기서 1960년대를 느낀다는 건, 반드시 실제로 1960년대에 살아서 그 시대를 기억할 수 있는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나는 1960년대 말 한국에서 태어나 1960년대 미국의 기억이 전혀 없다. 하지만 수많은 기록들, 그러니까 영화와 사진, 책과 잡지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 1960년대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시기는 아마도 초등학생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시대의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뮤지션, 정치인, 스포츠 스타 등을 다양한 통로로 즐겨왔고, 심지어 공부까지 했다. 그 결과 누구보다 그 시대를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이제 1960년대를 향수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영화 속의 영화 포스터. 19세기 미국에서 유행한 투스칸 스 타일 서체를 사용했고, 그림에서는 B급 정서가 물씬 풍긴다


예를 들어 나는 주인공 디카프리오가 응원단 복장을 한 여성들과 춤을 추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강력하게 1960년대를 느꼈다. 이 장면의 무대에는 영문 알파벳으로 만든 조형물이 등장한다. 이 조형물은 ‘쿠퍼 브랙(Cooper Black)’이라는 서체로 만든 것이다. 쿠퍼 블랙은 비치 보이스의 위대한 앨범으로 평가 받는 <펫 사운즈Pet Sounds>(1966년 발표)의 서체로도 유명한다. 이 서체는 1922년에 발표되었지만, <펫 사운즈>를 비롯해 1960년대에 발표된 많은 록 앨범의 커버와 그밖에 광고, 포스터, 방송 프로그램 타이틀에 쓰이면서 1960년대 팝 문화를 대변하게 되었다. 통통하고 동글동글해서 귀여운 형태는 1960년대에 히피 문화에서 크게 유행한 사이키델릭 타이포그래피 스타일과도 연결된다. 영화는 또한 쿠퍼 블랙에 오렌지색까지 입혀 완벽하게 1960년대를 되살려냈다. 이런 밝고 생생한 색 또한 팝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포스터 역시도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유행한 스타일로 디자인되었다. 관객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주차장에 놓인 커다란 포스터 그림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그 포스터가 1960년대 스타일이다. 사진 대신 그림을 그리고, 주인공을 커다랗게 중앙에 앉힌 뒤 영화 속 특정 장면을 주인공 주변부에 배치하는 것이 그 시절의 유행이었다. 거기에 서체도 모던한 것보다는 기이하고 흥미로운 형태를 쓰기도 했다. 그래서 포스터가 다소 복잡하고 산만하고 촌스럽다. 이 영화에서는 이탈리아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 포스터들이 자주 등장한다. 바로 이런 포스터들도 이탈리아 서부영화가 세계적으로 흥행했던 1960년대를 연상시킨다. 교묘하게도 이런 서부 영화 장르를 통해 이 영화는 1960년대 속 19세기 미국의 서부 스타일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19세기 미국의 현상금 포스터다. 이처럼 영화는 특정 시대와 지역의 소품뿐만 아니라 서체와 색채의 디자인을 통해서도 강력한 환유의 힘을 불어넣는 것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