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파괴에 온 몸으로 맞선 폼포코 너구리의 분투기”신도시, 과연 모두를 위한 최선일까? 2020.6

2023. 1. 16. 09:06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Raccoon dog Pom Poko's struggle against their environmental destruction” New city, is it really the best for everyone?

 

또 신도시다. 집값 때문이다. 무척 시끄럽다. 너무나 단순한 이 이유가 지난 수차례 동안 반복된 신도시 탄생의 원인이다. 건축이나 도시 관련 어떤 책에도 집값 때문에 도시가 만들어졌다는 글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이유를 전면에 내세워 신도시를 만들었다. 벌써 수십 년을 이어온 일이다. 도시의 핵심 가치나 의미는 오히려 부록처럼 보인다. 개발 독재 시대에는 워낙에 집이 없었고 집을 짓는 일이 급했기 때문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지금은 왜 그래야 하는가? 정말 집이 부족해서 집값이 춤을 추는 것일까?
오래 전에 제작된 일본 만화영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보았다. 당시 일본 뉴타운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를 우화적으로 비판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1994년 작품인데, 영화 말미가 흥미롭다. 너구리들의 노력(?) 덕에 뉴타운에 환경친화적인 개념이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2007년 용인에서 의왕시를 가로질러 가던 중 판교 건설 현장을 본 적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울창한 숲을 자랑하던 곳에 하나 둘 콘크리트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용인 인접 도로는 정체돼 꽉 막혀 있었다. 밀도를 낮춘 친환경 도시라고 하던데……. 13년이 흐른 지금, 이에 동의하긴 쉽지 않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 신도시를 개발하는 상황이 외국과 판이하게 다르고 전개 과정도 드라마틱하기에 직접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집값을 잡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신도시 개발의 최선의 설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도시는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삶의 바탕이 됐다. 집값이 중요하긴 하지만 도시 계획의 절대적인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이 차익을 노리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 계획은 장기적이고 가치 지향적이어야 하며, 도시는 오늘날 이야기되는 행복한 공간이 돼야 한다. 물론 행복한 가치 지향적 도시는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이익을 가져온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신도시들이 세워지는 과정을 보면, 우선 순위가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뀌었다. 기존 도시의 한계인 자연환경은 무시되고, 황량한 상태로 제공돼 버린다. 그러니 나중에 만들어지는 도시 인프라를 두고 행정단위를 교체하라는 시위가 이어지며, 차가 없으면 이동이 어려워서 너나없이 차를 소유해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집 근처에 학교가 없어 한동안 먼지 통을 지나며 먼 학교를 오간다. 이 모습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당연하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자료 한국영상투자개발


동경에 세워진 후카자와 환경공생주택단지을 보면 우리가 새로운 도시환경들에 참고해야 할 방향성을 알 수 있다. 생태계를 재현한 비오탭, 열섬현상을 축소하고 단열효과를 내는 옥상과 벽면 녹화, 풍력을 이용한 단지 내 공용 전기, 태양열 에너지, 우수를 이용한 잡용수 사용, 지면의 생태적 활성화를 돕는 투수성 포장 활용 등 그곳은 친환경 아이디어로 계획돼 있다. 뿐만 아니라 고령인을 고려한 경사, 이웃과의 소통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 울타리를 없앤 자유로운 공간, 풍부한 녹지 공간 등 계획적인 내용도 충실하다. 작은 단지임에도 그 이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주거단지다.
이미 세계 각국엔 이런 환경재생 주거단지들이 건립되고 있다. 영국의 베드제드 역시 이런 사례 중 하나이다. 물론 규모나 내용을 볼 때 신도시와 작은 주거단지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왕에 21세기를 목표로 만드는 신도시라면 에너지 소비형 도시보다는 친환경 도시가 장기적인 측면에서 훨씬 경제성이 있다. 앞서 말한 도시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야 했다. 교통의 경우도 그렇다. 우리 교통 체계는 자동차 도로를 중심으로 계획돼 있다. 하지만 보행을 기반으로 하는 전철 같은 철도 체계가 이용 면에서는 더 편리한 것이 사실이다. 환경적 도시는 결국 도시 전체를 공원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게 되면 직장인들에게도 점심을 먹고 산책할 공간이 생기는 셈이다.
이제는 수많은 기업 역시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쾌적한 도시를 선호한다. 쾌적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싶은 직장인들의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기업은 도시에 경제적 활력을 주는 바탕이면서, 도시 사람들에게는 수입을 제공한다. 바로 이런 것들이 도시의 경쟁력 아닌가? 도시적 차원의 또 다른 스페이스 마케팅인 셈이다. 지평선이 선명한 곳에 불쑥 솟아오른 신도시가 의문스럽고 낮선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신도시가 세워진다면 이제는 다른 도시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누구나 가서 살고 싶어 하는 도시가 진정 가치 있는 신도시가 아닌가?
문제는 이런 희망이 1992년에도 2007년에도 2020년에도 매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이유로 만들어진 1992년 5대 신도시는 베드타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도시 리모델링을 이야기한다. 2007년에 만들어진 판교 디지털 단지 신도시에서는 기업을 유치하느라 대폭 할인된 값에 단지를 분양한 탓에 그곳 기업들은 지가 상승의 혜택을 누렸다. 서울 CBD지역의 도심 공동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주말과 야간엔 인적 하나 없이 황량함만 떠도는, 8시간짜리 도시다. 이런 도시를 자랑하는 것이 민망하긴 하다.

 

자료 한국영상투자개발


기존 도시에서 대안 찾아야
신도시 유감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영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으로 이야기를 돌아가 보자. 신도시 개발로 인해 너구리들의 삶의 터전인 산과 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너구리들의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무리들 간 다툼으로 이어져 서로를 죽이는 상황이 된다. 곧 너구리들은 이러한 다툼이 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방법을 찾기로 한다. 
변신술에 능한 너구리들은 인간을 쫒아내려고 여러 방법을 사용하지만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그러는 사이 너구리들 사이에서는 또 분열이 생기고 이합집산을 한다. 너구리들은 강경파와 온건파 등으로 나뉘어 인간에 대응한다. 그러나 개발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너구리들의 대응은 이길 수 없는 게임이고 과정이었다. 인간과 대치하던 최후의 너구리들은 경찰들에 의해 모두 사살되고 만다. 결국 변신술에 능한 너구리와 여우들은 인간으로 변신해 인간들 속에 숨어 일상에 침잠하는 샐러리맨들로 살아가게 된다.
이 영화를 만든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일본에서 알아주는 진보 인사다. 1968년 학생운동의 전면에 있던 인물이고, 여전히 일본 내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이야기하고 인간성을 몰살하는 욕망에 대해 지적한다. 서정적으로 보이는 그의 영화 대부분엔 속물적 인간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역시 도시 개발과 그 이면에 있는 갈등과 한계, 인간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도시와 자연의 대립에서 거대한 욕망을 끌어내 영화의 줄거리로 만들어냈다.
도시 또한 이 같은 배경에서 만들어진다. 여전히 기존 도시를 두고 외곽에 신도시를 만드는 정책엔 동의할 순 없지만, 조금 더 쉽고 빠르게 만드는 전략으로 신도시를 선택한 것이라면 이제는 더 많은 생각과 기대를 가지고 접근하길 희망하는 바이다. 기능과 생산성 중심의 도시 구조를 버리지 못하는 것도, 신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은 결과들도 아쉽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자연과 도시의 대립이라는 큰 줄기로 구성돼 있지만 그 안에선 다른 줄거리도 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인 생활에 찌든 도시 샐러리맨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었다. 직장까지 두 시간이 걸리는 신도시가 아니라 30분쯤에 있는 도시여야 하는 것 아닐까? 
시간이 단축되면 그만큼 삶도 여유로워진다. 더 나아가 걸어가는 출근길이라면? 그건 불가능할까? 과거라면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지식산업 근로자가 늘어나고 언택트(Untact) 업무 방식에 익숙해진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연간 지역 총 생산이 80조가 넘는 판교 디지털 밸리의 상당수 근로자들은 젊은 소프트웨어 개발 종사자들이다. 느닷없는 바이러스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세계는 재택근무에 주목하고 있다. 재택근무는 온라인 기반인 비즈니스에 유리한데, 특히 판교 디지털 밸리는 이에 적합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물리적 거리가 필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의 구조는 20세기 조닝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 블록 개념이다.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 만든 신도시의 구조가 기존에 있던 여의도나 강남과 대동소이하다. 이럴 거면 굳이 왜 만드는 걸까. 땅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왕 이렇게 된 것, 더 파헤치지 말고 기존 도시를 재구성하는 게 좋을 듯하다. 물론 그것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보상도 크고, 어려운 일임을 안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한다. 도시 재생을 넘어 도시 리모델링을 전면적인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신도시는 그만 만들자!
나는 분당 신도시에 산다. 판교에 비하면 25년이 넘는 구도시다. 가끔 탄천을 산책하다 후다닥 지나가는 너구리를 볼 때가 있다. 어쩌면 그 너구리는 한국판 폼포코 너구리들이 아닐까? 낮에는 사람으로 변해서 여기저기서 땀 흘리고 일하다 밤이 되면 탄천변 수풀 속으로 사라지는…….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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