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6. 09:08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Immortal architecture 05
Reichstagsgebäude
건축법에서 재축(再築)이란 “건축물이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재해(災害)로 멸실된 경우 그 대지에 다시 축조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신축, 재개발, 재건축 등 새로 짓는 것이 건축의 주류인 상황에서 재축된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건축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독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우선 기술과 경제분야를 살펴보면, 과학기술 세계 1위, 수출과 수입규모 세계 2위, 명목 국내총생산 세계 4위, 구매력 평가기준 세계 5위로 뛰어난 모습이 보인다. 다른 쪽으로 독일의 철학자를 꼽아보면 괴테, 니체, 마르크스, 베버, 쇼펜하우어, 칸트, 하이데거, 헤겔, 후설, 훔볼트 같은 이름을 교과서에서 한 번쯤 접했을 것이다. 기술, 경제, 철학 모두 딱딱하고 잘 모를 수도 있겠다. 그러면 좀 더 부드럽고 친근한 음악은 어떨까? 바흐,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 슈만, 슈트라우스, 바그너, 헨델, 호프만 같은 이름을 몰라도 이 음악가들의 음악을 한 번쯤 들어보고 흥얼거렸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이라 생소하다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스포츠는 어떨까? 유럽 4대 축구리그 중 하나인 분데스리가의 나라이고, 월드컵에서 4회 우승을 하여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월드컵 우승을 많이 한 나라다. 마테우스, 클린스만, 마이어, 클로제, 뮐러, 발터, 베켄바우어 같은 스타플레이어가 있다. 스포츠도 관심이 없다면 자동차는 어떤가? 차종까지는 모르더라도 벤츠, BMW, 폭스바겐, 아우디 같은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건축 전공자라면 싱켈, 슈페어, 브루노 타우트, 발터 그로피우스, 미스 반 데어 로에, 프라이 오토, 페터 베렌스, 귄터 베니쉬, 헬무트 얀, 웅거스 같은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의 독일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과 국제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지금은 세계인들이 모범국가로 손꼽는 독일이지만, 현대국가로 자리 잡은 것은 불과 100여 년이 조금 넘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짧은 역사에 놀랐다. 역사적으로 프로이센 왕국을 계승하긴 했지만, 현대적인 독일의 모태는 독일 지역을 처음으로 통일한 독일제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제국이 독일의 정체성을 담아 상징적 건축물로 만든 독일연방의회(당시 제국의회) 의사당은 독일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독일 역사’ 그 자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이 건물에 얽힌 사건들과 재축의 과정을 살펴보면, 독일의 역사를 볼 수 있다.
1871년 처음으로 독일 지역을 통일하여 하나의 국가로 만든 독일제국은 건국과 함께 국가를 상징하는 국회의사당을 마련하고자 1872년 설계공모를 열었다. 첫 설계공모는 무산되었지만, 1882년 다시 열린 설계공모에서 파울 발롯(Paul Wallot)의 계획안이 채택되어 1894년 독일 국회의사당이 완공된다. 통일국가로서 독일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기 때문에 독일 건축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두고 논란이 컸지만, 19세기 유럽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유행한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황제를 둔 제국의 상징으로 중앙에 돔을 두고 좌우대칭인 권위적인 모습이었다. 이 모습으로 오랜 영광을 꿈꾸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제국은 반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1918년 11월 9일 사회민주당 의원 필립 샤이데만이 이 건물의 창문에서 공화제를 선포했다. 제국을 상징하는 이 건축물에서 바이마르 공화국(독일국:Deutsches Reich 도이체스 라이히)이 시작을 선포하면서, 독일 역사에서 의미있는 공간이자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전후의 복잡한 외교와 극심한 인플레이션, 극좌와 극우의 대립 같은 정치적 상황까지 모든 상황에서 어려운 독일을 힘들게 꾸려갔다. 그런데 1933년 공산당원의 방화로 본회의장이 불타고 이로 인해 제국의 상징과도 같았던 돔이 철거되는 사건이 생긴다. 그동안 힘을 키우던 히틀러의 나치는 이 방화사건을 빌미로 독일 공산당을 탄압하고, 공화국을 나치 독일로 이끈다. 이 건물에서 일어난 방화사건이 나치가 힘을 얻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이후 나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서 베를린과 이 건축물은 연합군의 폭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이렇게 독일연방의회 의회당은 폭격으로 돌이키기 힘든 심한 피해로 폐허가 된다.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양분되고 냉전의 시대를 맞는다.
독일이 동-서로 분단되면서 이 건축물은 서베를린 지역에 속하게 된다. 서독은 수도를 베를린이 아닌 빈(Wien)으로 정하면서, 서베를린에 있던 의회당 건물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폐허인 채로 남는다. 재건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다가 1966년이 되어서야 파울 바움가르텐(Paul Baumgaten)의 계획으로 재축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1972년에 공사를 마치고 서독의 의회 위원회 회의장소로서 역할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건축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재축이 이루어졌지만, 분단 독일에서는 이전처럼 국가를 상징하지 못하는 절반의 부활이었다.
1990년이 되어서 드디어 동서로 분단되었던 독일이 재통일을 이루었다. 통일 독일의 역사적인 첫 연방의회가 상징적인 의미에서 이 독일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리기도 했지만 예전 같지는 못했다. 의사당 기능은 가능했지만, 재통일의 의미를 담고 새로운 독일의 지향점을 다지기 위해, 통일독일은 독일연방의회 의사당의 재축을 추진한다.
재축을 착공하기 전인 1995년 6월 24일. 환경설치 예술가인 크리스토퍼와 진-클로드가 연합군의 폭격으로 심하게 파손된 의사당 건물 전체를 흰색 폴리프로필렌 직물로 감싸는 Wrapping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전시를 전환점으로 삼아 4년간의 재축 공사를 시작한다. 새로운 독일연방의회 의사당은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계획안으로 진행되었다. 전쟁 상대국인 영국의 건축가가 계획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노먼 포스터가 제안한 새로운 의회당의 계획안에 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황제에 의한 제국과 나치 독일 그리고 분단된 독일을 거치면서 어렵게 재통일된 독일이 앞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의 의미와 개방성을 상징하는 계획안이기 때문이다.
황제의 권위와 제국의 힘을 상징하는 철의 돔은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상징하는 유리 돔으로 치완 되었다. 기존 건물의 역사적인 외관을 유지하면서 독일의 전통과 위상은 그대로 남겼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유리의 돔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친환경적 기술을 도입하여 미래세대를 고려한 계획이다. 재통일된 현대독일이 지향할 방향으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의회의 유리 돔에 오를 수 있고, 그들을 대표하여 돔에 오른 시민들은 그들을 대표하여 정치적 활동을 하는 의회 의원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 권력이 시민의 권리 아래 위치하고, 시민의 견제를 받는 상징적인 공간 구성이다.
독일연방의회 의사당은 독일제국의 권위와 힘의 상징으로 시작하여, 공화국 선포의 현장이었으며, 나치 독일의 시작이 계기가 된 방화사건이 벌어진 현장이었다. 여기에 전쟁의 참담함과 분단되었던 냉전시대의 아픔도 보여준다. 이제는 재통일된 독일의 새로운 상징과 지향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독일연방의회 의사당은 통일독일의 역사와 함께 국가가 지향하는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물이 되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 힘겹게 재축된 만큼 독일이라는 나라가 지속되는 한 이 독일연방의회 의사당은 국가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건축물로서 불멸하길 바란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 젊은건축가(문화체육관광부) 수상자이며, ‘얇디얇은집‘으로 서울시건축상(2019)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 겸 골목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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