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가 되고 건축사로서 살아남기 2022.11

2022. 11. 10. 14:38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Become an architect and survive as an architect

 

건축학을 전공하다
대학교 2학년 때 건축대학에서 5년제 건축학과와 4년제 실내건축학과 중 전공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가 있었다. 건축학을 졸업하면 건축사가 될 수도 있고 실내건축도 할 수 있지만, 실내건축학을 졸업하면 실내건축만 할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건축과 실내건축을 모두 하고 싶어 건축학을 선택했었다. 건축사 면허 없이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시행사가 소위 말하는 허가 방(허가만 대행해 주는 건축사사무소)에 허가를 맡기고 설계를 하는 걸 보면 교수님 말씀이 100% 맞는 것 같진 않지만… 내 이름을 걸고 설계를 하고 허가를 내는 순간은 건축사만이 느낄 수 있는 뿌듯한 순간일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건축학으로 전공을 선택한 건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진로 그리고 건축사 시험 
4~5학년 즈음 졸업 후 진로로 건축사사무소와 건설사,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 또는 탈 건축으로 친구들의 결정이 나뉠 때 나는 하루빨리 실전에서 설계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으로 방학 때마다 기회가 닿는 대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여러 곳의 대형건축사사무소부터 중견 건축사사무소와 아틀리에까지 한두 달씩 인턴십을 하거나 짧게는 2주 정도 아르바이트도 해보며 사무소 분위기를 파악하고 다녔다. 덕분에 대학 졸업 후엔 경험해본 곳 중 가장 회사 분위기가 좋고 가고 싶었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소규모 프로젝트의 모든 단계에 참여해 볼 수 있는 아틀리에와 다르게 대형사무소는 1년 내내 복사만 하거나 화장실만 계획하고 비중 없는 허드렛일만 할 가능성이 크다고들 하는데, 내가 다닌 회사는 그렇지 않았다. 신입임에도 계획단계부터 실시설계 단계, 때로는 인허가 작업까지 참여하며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고, 배운 만큼 회사에 도움이 되고자 더 노력했던 것 같다. 당시에 수업료를 내는 게 아니라 마치 돈을 받으면서 학교에 다니는 느낌이라고 말했을 만큼…. 그런데도 불구하고, 3년을 채 못 채우고 입사 동기들이 한두 명씩 그만둘 때쯤이었다. 그해 1월 회사 선배들을 따라 얼떨결에 건축사학원에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3년은 걸리겠지’ 하는 생각에 미리 준비해놓자는 마음이었는데, 시험이 있는 9월이 가까워올수록 오기가 생겼고 한 달 정도만 밤낮으로 공부하면 합격할 수도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결국 시험 한 달 전 휴직 신청을 했지만 반려되었고, 그토록 다니고 싶었던 회사였음에도 과감히 퇴사를 결정하고 공부에 매진했다. 다행히 운 좋게도 첫 시험이었던 2015년에 건축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후 건축사로서 좋은 조건을 제안받아 다니게 된 두 번째 회사에서는 2년간 해외건축설계와 시공감리, 그리고 다양한 인테리어 현장을 진행했다. 2018년에는 사무소를 개소했고, 지금은 벌써 건축사 8년차, 건축실무 11년차가 되었다.  

수주를 위한 무료 기획업무는 NO
4년 전 사무소를 오픈했을 때는 비용을 받지 않고 법규검토나 규모검토 등의 기획업무를 진행하고, 리모델링 문의는 현장에도 직접 나가보는 등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했었다. 지인이라는 이유로 계약도 하기 전에 중간설계 단계까지 진행해 주었지만 건축이 무산되기도 했고, 후배의 아버지 회사 사옥 설계도 몇 주 동안이나 시간을 투자해 계획안을 보여주고 미팅을 했지만 같은 구 소속 내 대학교 선배의 사무소와 계약을 한 것을 뒤늦게 알기도 했다. 지인이라는 이유로 계약도 하지 않고 시간을 투자한 내 잘못이었다. 씁쓸한 경험을 여러 차례 하고 나니 이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무료 기획업무는 해주지 않겠다는 하나의 철칙이 생겼다. 그리고 어떤 프로젝트든 간에 “거기 얼마 들었어요?” 또는 “몇 평 정도 지으려고 하는데 설계비 얼마예요?” 등의 유선상 질문에는 답변해 주지 않는다. 또 “땅 근처에서 만나자”, “리모델링할 현장을 보며 미팅 가능하냐”라는 문의도 정중히 사양하고 있다. 첫 만남은 무조건 우리 사무소까지 방문하는 성의를 보여주는 분들에게만 나도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이다. 얼마 전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건축주가 미안할 만큼 많은 양의 계획을 공들여 보여준다는 선배 건축사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해야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는 게 현실이라 슬프지만, 아직 나는 수주를 위한 무료 기획업무는 하고 싶지 않다. 아직 배가 덜 고파서 그렇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건축상담과 기획설계는 유료입니다”라는 서울건축사신문의 슬로건처럼 모든 건축사가 시간과 노력에 대한 당당한 대가를 받고 일을 진행하는 것이 진정한 상생을 위한 방법이 아닐까? 

사월애가(四月愛家)_윤아영 건축사의 대표작으로, 건축사가 직접 거주할 목적으로 설계와 직영 시공까지 진행한 3층 규모의 단독주택이다. Ⓒ 남경진

포트폴리오의 중요성
2018년 개소 후 첫 프로젝트로 중학교 동창의 165제곱미터(50평대) 아파트 인테리어 설계를 해주고, 건축주 직영공사로 시공의 진행도 돕게 된 후 5년 내내 꾸준히 매년 10개 이상의 주거공간 인테리어를 진행하고 있다. 포트폴리오가 많이 쌓이다 보니 별다른 영업 없이 일이 꾸준히 주어졌다. 그 덕분에 설계공모에 도전하지 않고 무료 기획업무도 진행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건축사임에도 아직은 건축설계 일보다 인테리어 설계 업무가 일의 비중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아이러니하지만, 그 경험 또한 안팎이 조화를 이루는 좋은 설계를 하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 
가족소유 약 330제곱미터(100평) 규모 작은 빌딩의 대수선 설계와 건축주 직영공사 진행을 도운 것을 시작으로 대수선 설계도 여러 번 진행했지만, 신축설계는 좀처럼 진행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동창이나 가족이 맡겨준 프로젝트나 허가권자 지정으로 주어진 감리 업무, 이미 포트폴리오가 수없이 쌓인 인테리어 프로젝트들 외에 포트폴리오가 만무한 신축설계는 나 같아도(내가 건축주 입장이라도) 믿음이 부족해 나에게 맡기지 않을 것 같았다.
신축설계에 대한 목마름으로 시작한 첫 설계 프로젝트가 본인이 건축주인 내가 살 집이 되었으니 말이다. 사무소 개소 후 2년 가까이 발품을 팔아 시간만 나면 땅을 보러 다녔고 예산과 규모, 그리고 위치 모두 적당히 만족스러운 곳을 찾아 열과 성을 다해 설계해서 직영공사를 했다. 이제는 사무소 방문미팅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집을 건축주들에게 설계, 시공 포트폴리오로 직접 보여줄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좋은 건축주를 만나 신축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포트폴리오가 생겼기 때문에 수주가 가능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평생 젊은 건축사가 될 수는 없다
이번에 설계를 계약한 고객은 내 또래의 부부이다. 약 330제곱미터(100평) 대지에 330제곱미터 규모의 고급 단독주택을 짓고자 하는 이 부러운 부부는 나를 찾아와 말했다. 앞으로 함께 커 나갈 수 있는 친구 같은 젊은 건축사에게 집의 설계를 맡기고 싶었다고… 나를 만나기 전 약992제곱미터 규모의 사옥을 다른 중견 건축사분과 진행했고 이제 착공에 들어가지만, 진행 과정의 답답함과 러프한 모습에 집 설계는 진행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수주를 위해 저렴한 설계비를 제안한 것도 아니었고, 무료 기획업무를 진행해 주지도 않았는데 나의 가능성을 보고 믿고 계약해 준 건축주에게 너무나도 고맙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한해 한해 나이가 들수록 쌓이는 노하우만큼 생물학적 나이로 한정 짓는 만 45세라는 젊은 건축사와도 나 또한 멀어지고 있기에 답답하지 않게 일을 진행하며 세심함 또한 갖추고, 초심을 잃지 않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딸만 둘인 집에 아드님 방? 
물론 첫 만남 때 계약이 이루어진 건 아니다. 사무소 개소이래 수많은 주거공간 인테리어와 직접 거주할 집의 설계와 시공을 진행했었기에 건축주는 그 사례들처럼 세심한 공간계획과 가구도면까지 반영된 설계를 원했고, 건축주의 요구와 규모에 맞는 도면의 양과 노력을 가늠해 적정한 설계비를 제안했다. 건축주는 고민해본다고 돌아갔었다. 며칠 후 우리와 또 다른 곳과 계약을 고민 중이었다는 이 건축주는 건축박람회에서 하우징○○○, ○○하우징, 이런 소규모 주택을 많이 짓는 건설사와 상담을 했고 상담 바로 다음 날 대지 앞에서 다시 만났다고 한다. 다음 날 그 건설사는 번듯한 3D와 벌써 상세하게 계획된 도면들을 가지고 찾아왔다고 했다. 하루 만에 방대하게 준비해온 자료에 건축주가 감동할 때쯤, 올해 말 태어날 둘째까지 딸아이만 둘이 있는 건축주인데 그들이 제시한 계획도면 안에 ‘아드님 방’이 있었다고….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사례 중의 하나를 계획 대지에 끼워넣은 복붙(복사+붙여넣기)에 불과한 자료에 실망해 결국 건축주는 우리와 인연을 맺게 됐다. 만약 ‘아드님 방’이라는 실수가 없었다면, 계약도 전에 시간과 정성을 그만큼 들여준 그 업체에 건축주가 감동했다면, 그들과 계약이 성사됐을까? 그만큼의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지 않는 나로서는 경쟁자들의 수주를 위한 진행방식이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천천히 살아남기 
수주를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현장을 먼저 방문하고, 바로 다음 날 비록 복붙일지라도 건축주가 감동할 수 있게 도면과 3D를 준비해 갈 수 있는 실행력과 맨파워가 나는 아직 없다. 우리 사무소 맨파워는 나 포함 네 명인데, 우리에게 주어진 이미 진행하고 있는 일들을 하기에도 바쁘다. 설계 계약을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언젠가는 지금 가진 철칙을 바꿀지도 모르지만, 맨파워가 더 많아질지라도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정성을 다해 포트폴리오를 쌓아가다 보면 무료 기획업무 없이도 포트폴리오를 보고 계약하는 고객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11월에 서울시 청년건축사들의 워크숍이 있다. 워크숍의 주제는 ‘청년, 건축사로 살아남기. 그리고 청년 건축사, 협회와 함께하기’라고 한다. 그 모임에 다녀오고 나서는 청년, 젊은 건축사인 내가 조금 더 발전한 모습으로 사회적 신뢰와 존경을 받는 전문가인 건축사로서 한발 더 나아가고 탄탄한 사무소 운영방안을 찾게 될 수 있길 바라본다. 

 

글. 윤아영 Yoon, Ah Young (주)윤아영건축사사무소

 

윤아영  건축사·(주)윤아영건축사사무소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2015년 29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세경그룹 산하의 UNITLess Design에서 근무하며 해외 건축설계와 시공현장 감리를 경험하고, 국내외 다수 인테리어 실무를 쌓았다. 2018년부터 윤아영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대한건축사협회(KIRA), 한국건축가협회(KIA)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yay.architec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