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는 집

2022. 11. 9. 17:57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A House in the Wind

 

아파트를 버리고 작더라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기를 꿈꾸었다. 담장을 넘어온 햇빛이 아장아장 마당을 지나 툇마루를 올라와 처마 속으로 사라지는, 그런 어렸을 적 살던 주택 집 풍경이 나이가 들면서 너무 그리웠다. 햇빛이 아깝다며 바구니에 담은 갖은 나물들을 지붕 위에 올려놓던 할머니는 아마도 환한 햇빛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아까웠으리라.
굴뚝이 있고 다락방이 있던 집. 다락방에 엎드려 소공자, 소공녀, 보물섬,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다가 다락방 창문으로 보이는 초저녁 별. 저녁밥 짓는 냄새, 전봇대 긴 그림자처럼 골목으로 성큼성큼 돌아오던 아버지.
장독대가 있던 집. 장독대에 놓인 항아리에 장을 가지러 올라갔다가 지붕 위에 핀 쑥부쟁이를 보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왔다고 생각하시던 할머니. 그런 집이 너무 그립고 그리워서 오십이 되면서 작은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어렵지 않았다. 멀리 전원으로 나가 비싼 전원주택을 구입하지 않아도 됐다. 잘 찾아보면 서울의 산동네나 허름한 동네에 비싼 아파트보다 더 싼 집들이 많았다. 
국사봉 자락이 있는 상도동 산꼭대기. 20년된 집을 사서 리모델링을 했다. 집주인이었던 할머니가 심어놓은 10년 넘은 감나무와 모과나무가 있는집. 골목처럼 긴 좁은 마당이지만 봄이면 철쭉이 피고 집뒤 바로 뒷산에서 아카시아꽃 향기가 온 동네를 덮는 산동네 지붕이 있는 집에서 산 지 오 년을 넘기고 있다.
가을이면 마당과 골목으로 수북이 떨어지는 모과 잎과 감 잎을 쓰는 일도 운동 삼아 재미있고 해마다 열리는 모과를 따서 술을 담고 연도를 매겨 놓은 모과주들도 즐비하다. 감을 따서 모빌처럼 곶감을 매달아 창 밖에 걸어두는 일도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다. 
한파가 되면 먹을 것이 없는 새들이 찾아든다. 휘파람새, 박새들이다. 모과나무 아래 견과류를 썰어 놓아주었더니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온다. 와이프가 우리 집으로 오는 박새 가족 이름을 대박이, 중박이, 소박이라고 붙였다. 길고양이들도 찾아온다. 산으로 향해 있는 뒷베란다에 물과 사료를 놓아주기를 몇 해, 골목에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고양이들이 파헤쳐놓는 일이 없어졌다.
이름 짓기를 좋아하는 와이프가 길고양이들에게 이름을 주었다. 감나무 아래 그늘에서 낮잠 자기를 즐기는 아이에게는 홍시라는 이름을, 와이프가 번역한 고양이 책 주인공 듀이와 행동이 비슷한 아이에게는 듀이라는 이름을, 그리고 까망이, 회색이. 이렇게 네 마리가 올 한파도 무사히 넘겨가고 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람소리를 듣고 집 마당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맞이하고 가을이면 우는 벌레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해를 왕성하게 살다가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쓰는 것. 꽃을 심고 그 꽃들이 피어나는 것과 맺히는 씨앗들을 보는 것. 봄이면 날아드는 나비를 보고 수원을 비는 것. 그렇게 자연을 바라보며 내 안에 들이는 것. 
재미있다. 집을 가꾸며 산다는 것. 눈이 오면 눈을 쓸어 모은 곳에 술병을 꽂아놓고 찬술 한 병씩 꺼내 마시는 재미도 남다르다. 층간 소음도 없고 이웃집끼리 음식도 나누어먹고 가을이면 수확한 감도 나눈다.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다. 때로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울 수 있고 집을 수리도 해야 하고 몸을 움직이며 살아야하지만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삶인가. 
자연은 앞지르거나 반칙을 하지 않는다.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들도 그렇다. 마당을 가꾸고 서너 그루 나무를 키우고 계절마다 찾아오는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나는 배운다. 나무처럼 버리기를. 꽃처럼 피었다 지는 것을. 달처럼 차고 기우는 것을. 거미줄을 쳐놓고 하루 종일 기다리는 거미처럼 치열하기를. 어느 여름 빈집만 남겨놓고 사라져간 매미의 생을. 매일 밤마다 지붕 위로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그 모든 것이 지나감을. 그리고 겸허함을.

 

글. 권대웅  Kwon, Daewoong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