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

2022. 11. 1. 21:12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Calf


#1 추억
뉘엿뉘엿 해가 저물던 어느 가을날, 마루에 엎드린 채 밀린 숙제를 하다가, 담장 모퉁이를 돌아 들어오는 동생을 보고 부리나케 토방으로 내려섰다. 투덜대면서 집으로 들어서던 동생이 대문간에서부터 쇠고삐를 던져버렸는지, 어미소를 따라 질질 끌려 들어오는 쇠고삐를 서둘러 주워들고 나는 곧장 외양간으로 들어섰다.
외양간의 한쪽 구석 말뚝에 쇠고삐를 매면서 흘낏 뒤를 돌아보니, 뒤따라오던 송아지의 걸음걸이가 왠지 어색해 보였다. 평소처럼 폴짝폴짝 마당을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지 않는 것부터 이상했다. 고삐를 매다 말고 주춤거리는 송아지가 외양간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먼발치에서도 엉덩이 한쪽에 뭔가 엉겨 붙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가 잘못 묻었다는 생각에 송아지 곁으로 다가서려 하자, 송아지는 그만 오던 발걸음을 돌려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아니, 왜 저러지? 날 피할 리가 없는데……?”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렸다.
순식간에 대문 앞까지 달아난 송아지는 그저 그 큰 두 눈만 껌벅거리고 있을 뿐, 좀처럼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경계하는 눈빛마저 역력했다. 쇠꼴 한 주먹을 들고 위아래로 크게 흔들어봤지만,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껑중껑중’ 뛰어와 쇠꼴을 얼른 받아먹곤, 또 못내 아쉬운 듯 내 손바닥까지 핥아주었을 텐데…….
‘정말 어딜 다쳤나?’
궁금증만 더해갔다. 외양간 앞에 설치된 구시에, 쇠죽 을 한 양동이 퍼다 붓고 나오시던 아버지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셨던가 보다.
“어디 나뭇가지에 찢겼냐? 송아지가……?”
대답 대신 곧장 송아지가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슬슬 피하던 송아지와 그때 두 눈이 딱 마주쳤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아니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엉덩이를 어디에 찢긴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럼 저게, 아파죽겠다는 하소연이었을까? 지금 빨간약이라도 발라줄까? 아니, 저렇게 내빼기만 하는데 어떻게 하나?” 
혼자 또 중얼거리다가, 우두커니 행랑채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동생을 보고 재빨리 구원요청을 했다. 쪽마루에서 마당으로 재빠르게 툭 뛰어 내려온 동생과 서로 힘을 합쳐, 외양간 쪽으로 송아지를 몰아붙였다. 그제야 송아지도 체념한 것처럼 외양간의 문지방5)을 슬쩍 뛰어넘어 들어갔다. 그리곤 곧장 어미 소의 옆구리에 제 작은 얼굴을 바짝 갖다 붙였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어미소가 그 긴 혀로 어린 송아지의 엉덩이를 핥아주기 시작하였다. 
괜히 멋쩍어졌다. 어서 들어와 저녁 먹으라는 할머니의 재촉에, 그만 손도 씻는 둥 마는 둥 하며 안채 마루로 올라서려는데, 방으로 들어간 줄 알았던 동생이 어느새 등 뒤에 바짝 달라붙으며 조잘대기 시작했다. 
“형아! 근데, 저…….”
“어? 왜?”
“우리 송아지, 나뭇가지에 찢긴 거 아니다!”
“그럼?”
“내가 소를 몰고 들어오려고 신작로를 막 건너가는데, 우리 송아지가 배추밭 쪽에서 갑자기 뛰어나오더라고……. 나도 깜짝 놀랐지!”
“왜?”
“송아지가 내 앞에서 후다닥 도망을 치니까~.”
동생은 얼른 못 알아듣는 내가 답답했던지, 금방 볼멘소리로 변했다. 그러니 더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도 저렇게 피가 묻어 있었냐?”
“어……, 그런데…….” 
“뭐가, 또?”
“배추밭 아저씨가 낫을 들고 서 있었어. 씩씩거리며.”
“낫을? 아니, 풀 베는 낫을?”
동생은 대답 대신 고개만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그럼, 네가 봤냐?”
“뭘?”
“아~, 그거! 그건 못 봤어.”
방문을 열다 말고 급히 토방으로 내려섰다. 그리곤 외양간까지 냅다 뛰어갔다.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이번에는 어미소가 놀랐는지, “음매~ 음매~”소리를 내지르며 사납게 제 뿔을 들이댔다. 몇 번 멈칫거리다가 살짝 몸을 피하며 얼른 송아지 엉덩이 쪽으로 다가섰다. 이번에는 송아지가 얌전하게 서 있었다. 
정말, 날카롭게 찢긴 자국이었다. 상처도 꽤 깊어 보였다. 핏덩이가 누런 털에 이미 말라붙어있었다. 피를 상당히 흘렸던가 보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엊그제 신작로까지 졸졸 걸어 나오면서 어미소에게 풀을 뜯길 때,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송아지가 그만 길모퉁이 배추밭으로 코를 벌름거리며 들어갔던지, 배추밭 아저씨의 돌팔매에 쫓겨 뒷다리를 뒤뚱거리며 후다닥 달아나던 송아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도 우스워서 아저씨 몰래 ‘킥킥’ 댔는데…….
그렇지만 난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겨우 분(憤)을 삭이며, 엉덩이에 붙어있던 핏덩이라도 떼 주려 하자, 송아지가 몸부림치듯 재빨리 엉덩이를 뒤로 뺐다. 그 소동(騷動)에 어미소가 다시 제 뿔로 구시를 거칠게 ‘툭툭’ 밀어제치며 송아지를 보호하려는 듯했다. 워낭소리가 다시 사납게 쩔렁거렸다.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며 외양간에서 되돌아 나와, 구시에 남아있던 국물을 닥닥 긁어서 바가지에 퍼 담고, 거기에 쇠꼴을 한주먹 더 얹어서 송아지 코앞에 바짝 들이댔다. 그제야 송아지도 예전처럼 코를 벌름거리며, 마침내 제 작은 혀로 내 손등을 핥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따뜻한 촉감이 밀려왔다. 
“무척 배가 고팠구나! 불쌍하게도…….”
그렇지만 분명 예전 같지는 않았다. 확실히 힘이 없어 보였다. 그저 형식적으로 겨우 혓바닥만 날름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새 동생이 뒤따라와 있었던지, 내 옆에서 쇠꼴 몇 주먹을 더 던져 주며, 저도 송아지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송아지를 핥아주고 있는 어미 소
아직 코뚜레를 꿰지 않은 송아지

#2 예방주사
저녁 밥상 앞에 앉아서도 송아지의 그 선연한 눈망울이 자꾸만 떠올랐다. 
‘차라리 진즉 코뚜레를 꿰놓았더라면, 배추밭에 들어가서 그렇게 헤집고 다니지는 않았을 텐데…….’
퍼뜩 그런 생각이 스치자, 저녁밥을 먹다 말고 다짜고짜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걸어 달라고 아버지에게 간청했다. 처음에는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핀잔이시더니, 
“하긴 코뚜레 꿸 나이도 됐지!”
“그래, 낼모레 장(場)에 가서 코뚜레랑 워낭을 사다가, 그놈 코뚜레부터 꿰놓자!”
흔쾌한 승낙이 반가웠지만, 갑자기 학교에서 예방주사 맞던 일이 생각났다. 주사를 먼저 맞던 애들의 찡그리는 얼굴을 보고 몰래 도망을 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 벌름거리던 송아지 코에다 주삿바늘보다 몇 배나 더 굵은 꼬챙이로 구멍을 뚫다니……. 아프겠지? 
잠자리에 들어서도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옆에 누워 계신 할머니 등을 일부러 박박 긁어주며, 조심스레 물어봤다. 
“할머니, 코뚜레 꿸 때 어떻게 코에다 구멍을 뚫어?”
“그것도 모르고 코뚜레를 꿰어 달라고 그랬냐?”
“응~, 왜?”
“뜨겁게 불에 달군 쇠꼬챙이를, 이렇게 콧구멍에 푹 쑤셔 넣고 뚫지, 어떻게 뚫어!” 
할머니는 허공에 두 손을 쭉 펴서 코 뚫는 시늉을 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받아넘기셨다. 
“할머니도 봤어?”
“그럼!”
“송아지가 아프다고 마구 몸부림치면?”
“송아지가……? 지가 소 새낀데, 그러면 쓰나?”
“아니, 내 말은……, 송아지도 아프니까 도망갈 거 아냐?”
“그러니까, 옆에서 장정(壯丁)들이 꽉 붙잡고 콧구멍을 한꺼번에 후벼 파버려야 하지!” 
할머니 얘기는 무정하게 계속 이어졌다.
“그래야 저도 또 어른이 될 거고………!”
“어른?”
그러다가 갑자기,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자자!”

주위를 경계하는 듯한 송아지
얼굴을 파묻고 젖을 빠는 송아지

#3 코뚜레
며칠 뒤, 정말 송아지의 모가지에 굵은 밧줄을 메어놓고, 동네 아저씨들 몇몇이 송아지 몸통을 틀어쥔 채, 코뚜레를 뚫는답시고 외양간 쪽에서 야단법석이 벌어졌다. 송아지는 희멀건 눈 흰자위만 치켜뜨고 바동거리며, 허공(虛空)을 향해 연신 울음만 토해냈다. 
“음매~ 음매~” 
그래도 나처럼 자지러지지 않는 게 이상했다.
“아직, 엉덩이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을 텐데, 거길 땅바닥에다 놓고 저렇게 사정없이 짓누르다니!”
엉겁결에 내 엉덩이로 손이 갔다. 그리곤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한바탕 격전을 치르듯 안타까운 실랑이가 끝난 뒤, 땅바닥에 눕혀졌던 송아지가 두 앞발을 먼저 짚은 채 잠시 엉거주춤하고 있더니, 역도선수가 마지막 용트림을 하며 육중한 바벨을 순식간에 들어 올리듯, 마침내 불끈 일어섰다. 그 큰 두 눈에서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자 송아지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제 모가지에 새로 걸린 작은 방울을 달랑거리며, 헛간 쪽으로 급히 사라졌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도 이제는 쇠고삐를 메었으니, 다시는 낫으로 찍히는 일은 없을 거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송아지야! 괜히 네 코뚜레를 뚫자고 했구나! 미안하다. 정말……!’ 
그날은 온종일 외양간 앞마당에서 바동거리던 송아지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급기야 쓸데없는 다짐까지 하고 말았다.
“아, 이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송아지로는 태어나지 말아야지!”

#4 이별
다음날 소에게 풀을 뜯기려 나설 때는, 일부러 송아지의 고삐를 슬며시 풀어 놓아주었다. 신작로(新作路) 길을 가로질러 가다 말고 논둑 위로 줄줄이 심어놓은 콩잎에, 송아지가 제 코를 들이대고 킁킁거려도 그저 모른 척했다. 만날 때마다 구시렁거리는 대문집 아줌마 얼굴이 떠올랐지만, 오늘은 무섭지 않았다. 고삐를 바짝 조이면 송아지 콧구멍이 너무나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송아지는 어제 코뚜레가 뚫리던 아픔은 깡그리 잊어버렸다는 듯, 낯선 쇠고삐를 질질 끌며, 좀 더 풀이 무성한 곳을 찾아서 ‘껑중껑중’ 뛰어 달아났다. 워낭소리도 곧장 “짤랑짤랑”거리며 뒤를 따랐다. 나도 덩달아 뛰었다.
그런데 이별은 뜻하지 않은 데서, 너무 빨리 찾아왔다.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꿰어놨으니, 이제 송아지를 시장(市場)에 내다 팔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이건 코뚜레를 꿰는 것하고는 아예 차원이 다른 시련이었다. 
“아버지!”
“응~, 왜? 
“송아지를 우리가 좀 더 키우면 안 돼?”
“…….”
“더 오래 키워서 그때 팔면, 돈을 더 많이 벌잖아?”
“…….”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며 솥뚜껑 밑으로 눈물이 줄줄 흐르는, 푹 삶아진 쇠죽을 뒤적거리시다가 섞어줄 왕겨가 모자랐던지, 서둘러 헛간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꽁무니에 바짝 따라붙으며, 답을 재촉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아버지의 마른 헛기침뿐이었다.

#5 워낭소리
밤새 저 건너 외양간에서는 워낭소리가 더 심하게 쩔렁거렸다. 간간이 “음매~ 음매~” 하는 울부짖음도 새어 나왔다. 동생의 고자질로 억울하게 혼나고, 헛간 뒤쪽으로 달아나다가 문간 옆에 쌓아둔 멍석 더미에 엎어져, 한참 동안 숨죽여 울던 작년 가을 저녁때 일이 떠올랐다. 눈물을 훔칠 때마다 팔등을 적시던 눈물이 그렇게 뜨거운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외양간에 홀로 남은 어미소의 휑하니 짙은 눈망울이 떠올랐다. 코뚜레를 꿰던 날, 송아지의 두 눈에 그렁그렁 맺혀있던 눈물방울도 자꾸 아른거렸다. 
‘얼마나 뜨거웠을까?’
‘얼마나 원망했을까?’
그렇지만 그칠 것 같지 않던 워낭소리도, 마치 어미소의 옆구리에 제 얼굴을 파묻던 송아지처럼, 할머니의 가슴팍으로 파고들며 잠을 청하던 내 귓가에서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글. 최상철 Choi Sangcheol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최상철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최상철은 전북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대표건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의 건축설계 작업과정에서 현대건축의 병리현상에 주목하고, 산 따라 물 따라 다니며 체득한 풍수지리 등의 ‘온새미 사상’과 문화재 실측설계 현장에서 마주친 수많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의 살터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건축’에 담겨있는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저서로는 ‘내가 살던 집 그곳에서 만난 사랑’, ‘전주한옥마을’ 등이 있다.
ybdcsc@naver.com

'아티클 | Article > 에세이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축사가 되고 건축사로서 살아남기  (0) 2022.11.10
바람과 함께 사는 집  (0) 2022.11.09
해줄 말이 없을 테니까  (0) 2022.11.07
구짝  (0) 2022.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