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30. 09:07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Miyazaki Hayao’s works that embody metaphorical space and symbol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마도 일본인보다 외국인들이 더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일본의 만화 영화 감독이 아닐까. 어린 시절, 주인공의 이름이 전부 한국식 이름으로 바뀌어 있어 우리나라 만화 영화인 줄로만 알았던 만화들의 상당수가 그의 작품이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그의 작품 중 <엄마 찾아 삼만리>라던가 <플란다스의 개>, <미래소년 코난> 등의 일부 장면은 50대 중반이 넘어서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의 실력은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만화 영화보다는 장편 영화에서 빛을 발한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을 본 듯한데,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등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는 암암리에 들어왔다가, 일본 대중문화가 공식적으로 개방된 2000년대 이후 정식으로 극장 개봉을 했다.
서정적이고 아기자기한 그의 영화들을 보면서 어른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의 동료이면서 청년시절 격렬한 현실 운동에 참여했던 다카하타 이사오와 유사하면서도 결이 다른 만화영화를 선보였다. 과거 동경대의 격렬한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은 다카하타 이사오의 작품에는 이런 청년 시절의 사회적 관점이 녹아들어 있다. 전쟁의 공포와 인간성에 대한 비극을 처절하게 담은 <반딧불이의 묘>나 개발에 대한 환경 파괴를 직접적으로 다룬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은 현실의 문제를 은유적이면서도 강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사회적 이슈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나, 다카하타 이사오보다는 좀 더 우화적이고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강렬한 서정적 묘사에 가려진 사회적 메시지는, 만화를 자세히 분석하고 봐야만 읽어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수많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도시와 공간에 대한 해석이다. 만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로케이션 촬영과 묘사, 그리고 재해석으로 배경을 그리는 집요함이 보이는데, 평화와 인간애라는 주제 배합이 기가 막히다. 그의 만화에서 보이는 서정적 묘사는 낭만성을 자극하고 드러내는데, 이런 낭만적 표현들은 사람들이 이야기에 편하게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낭만은 기억을 자극하는 다양한 시각적 표현으로 채워지고 있다.
특히 도시 풍경과 거리의 모습, 골목길은 유럽이나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공간적 요소들이 다수 등장한다. 아기자기한 미로 같은 골목길은 의외성과 드라마틱한 관점을 동원해서 관객들을 이야기로 몰입하게 만드는데, 만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실사 영화 같은 정교한 묘사는 이런 몰입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금 의아한 부분은 그의 상당수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본이 아닌 유럽의 특정 도시풍경들을 담아내는데, 이는 이국적 풍경에 대한 판타지를 강조하는 역할도 한다(기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국내를 대상으로 상업 만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일본의 대중문화를 비판하는 시각으로, 19세기 서구 문물의 도입 이후 일본인들이 그리는 이상적 풍경으로 삼은 유럽의 고전 건축이 가득한 도시에 대한 맹목적 추종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상향은 공동체 중심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이다. 그는 유럽의 도시풍경을 이상적 사회주의의 도시 모습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특히 중세 도시의 개별화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공유되는 공적 공간의 특성은 그가 감동을 받은 도시 구성 요소다. 유럽의 중세 도시 구조를 보면, 중앙중심적이고 통치를 위해 계획적으로 구성한 것이 아닌 자연발생적 공간들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제한된 사적 공간에서 해결되지 않는 개방성을 갖춘 공간으로는 교회나 광장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동체의 공간이 있다. 이런 도시 풍경은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등에 나타나는 요소들이다.
소녀에서 성인 마법사가 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마녀배달부 키키>에서는 주인공인 키키가 해변가의 도시를 뛰어다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들이 나온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동화적 요소는 판타지로 충분한데, 키키가 하늘을 나는 과정은 여러 가지 상징과 추상적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해변 마을의 이사 장면을 위해서 실제 장소를 찾아서 모델링하고 적용했다. 상상의 내용이 현존하는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 그가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어떻게 관객들의 몰입을 유도하는지 알 수 있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배경이 된 해변 마을은 실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1995)된 스웨덴의 도시 비스뷔(Visby)다. 비스뷔는 14~15세기 중세 시절 활성화된 스웨덴의 항구도시다. 그런 덕에 도시 곳곳에는 중세 고딕적인 건축 양식들이 즐비하고, 그런 건축 유산들이 고스란히 남아 보존되고 있다. 중세는 마녀 등 주술적 상황이 실제화 하는 것으로 느껴지던 시대였고, 그런 중세 도시를 배경으로 마법 판타지 이야기가 전개되는 상황은 절묘한 구성이기도 하다. 더불어 영화 내용의 대부분은 창조적 야망에 대한 은유인 마법의 비행에 대한 열정을 재발견하려는 키키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키키의 생활상이 과거는 아니다. 현재의 어느 시점으로 묘사되어 있다. 마법이라는 유럽의 전통적 이야기 소재와 판타지, 기술 발전 및 현대적 상황들이 혼재된 것이다. 모호한 시간대는 오히려 이야기 몰입을 도와준다.
그런가 하면, 전쟁 관련 문제를 드러낸 <붉은 돼지>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극 중의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전쟁의 광기 아래서 다뤄지는 집단의 폭력성을 코믹하면서도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이탈리아 어느 도시의 풍경에서 시작된다. 포르코 로소가 사는 가상의 도시 피우메는 실제 크로아티아의 비스 섬과 풍경 좋은 남쪽의 스티니바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가 몇천 명 정도에 불과한 비스 섬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중해의 작은 도시이기도 하다. 어업을 중심으로 하는 평화롭고 작은 섬의 도시 풍경과 스티니바 해변가 풍경의 절벽과 해안선은 너무 흡사하다.
밀집된 중저층의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 풍경에서 골목길의 흥겨움과 의외성, 오픈 카페의 낭만들이 묘사되고 있으며 이는 평화적 상황을 설명하는 일상 그 자체다. 주인공은 포르코 로소라 불리는 비행사이자 의인화된 돼지로, 그를 사랑하는 지나와 함께 한다. <붉은 돼지>에서는 당시의 시대상인 파시스트 정부와 비밀경찰, 노동자 등을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포르코의 활약은 배경 속에서 함께 하는데, 네오르네상스가 만개한 이탈리아 밀라노가 주 무대로 등장한다. 극 중 밀라노는 농업 중심에서 산업화로 진전하는 근대화 중심 도시로, 좀 더 밀도 있는 도시로 구성되었다. 규모는 커지고, 다양한 길들은 자동차가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차를 피해 다니는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주인공이 하늘을 나는, 즉 비행을 하는 과정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상당수 작품에 등장한다. <붉은 돼지>처럼 비행기를 몰거나, <마녀 배달부 키키>처럼 빗자루에 올라타는 등의 행위를 통해 비행을 한다. 그의 대표적 TV만화 시리즈인 <미래소년 코난>에서의 비행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포르코 로소의 비행은 과학과 기술의 산물이지만, 키키의 비행은 동화와 상상의 산물이다. 같은 행위지만, 상징하는 바가 완전히 다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판타지는 사실 매우 비논리적인 동화적 상상에서 출발한다. 실제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 방식은 논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내 잠재 의식의 우물을 파헤치려고 노력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순간에 뚜껑이 열리고 매우 다른 아이디어와 비전이 해방됩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감정의 표현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1)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에서는 마법이라는 행위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마법은 은유적 상상력을 담은 표현으로 묘사되며 물질적 영역 너머에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만화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사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자극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전쟁의 고통과 무의미함을 고민한 반전 주제를 담고 있다. 더불어 반전 이상의 더 많은 의미와 상징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욕망과 폭력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상처와 고통을 고민하고, 또 그 중에서도 어린이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담고 있는 것이다. 미야자키의 능수능란함은 무겁고 어려운 이런 주제들을 연민과 낭만으로 쉽게 풀어내고 있다.
1960년대 서구 각국과 일본을 휩쓴 사회적 파동과, 청년들이 현실 운동으로 저항하는 시절을 겪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감수성일 수도 있지만, 그런 비판은 사실 사회에 대한 애정과 긍정에서 출발한다. 희망과 긍정이 없다면 결코 낭만이 묘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낭만은 작품 내내 이야기되는,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과 이에 대한 연민이 담겨서 표현되고 있다. 소녀와 노인을 오가는 변화는 각자가 겪게 되는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를 이해하게끔 한다. 여성에 대한 관점과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묘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여성의 역할이기도 하다.
자연과 환경 파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모노노케 히메>에서는 무리의 대장 역할일 뿐 아니라 주도적인 영웅으로서의 여성을 그리고 있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도 주도적 여성을 묘사하고 있다. 유럽이 아닌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이웃집 토토로>에서도 어린 자매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생활 모험이 등장하고 있고, <벼랑위의 포뇨>에서도 여성은 엄마로서 능동적이다.
어린아이와 여성은 평화를 상징도 하고, 조화로움을 의미한다. 비록 전쟁 시절의 기억이 희미한 미야자키 하야오지만, 전후 고통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직접 겪었을 그를 짐작한다면 그가 왜 반전과 평화에 집착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그런 집착은 오랜 시간 공존해온 도시의 연속성과 흔적에서 동기를 부여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그의 이상향으로 언급되었던 공동체 중심의 유토피아적 사회와, 개별화된 공간과 공적 공간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유럽의 사회주의 도시 모습 말이다. 예를 든 세 작품 외에 유럽의 골목길과 낡은 공간들을 배경으로 하거나, 일본의 시골이나 오밀조밀한 사람 냄새나는 풍경을 담은 여타의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다.
일견 아이들이 보는 영화 같지만, 어느 영화 못지않게 진지한 삶에 대한 관찰과 사색, 그리고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사회에 대한 발언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는 그의 작품은 관람 후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그래서일까? 흥미롭게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영화들이 학술적 대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반전, 평화, 선악의 묘사, 나이에 대한 고찰, 페미니즘, 전통과 민속, 숲과 나무 그리고 다양한 신화들이 분석되고 있다. 특히 공간과 도시, 건축을 통해 묘사되는 기억과 향수, 익숙함을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를 철학자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 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 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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