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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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와 풍화, 인공과 자연 2024.1
Entropy & Weathering, Artificial & Nature 서촌에 있는 일상여백이라는 공간엘 갔다. 목공예가 최성우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트레이였다. 이 트레이는 나무껍질을 거의 가공하지 않은 상태다. 나무껍질 겉 표면을 옻칠한 것이 작가가 한 공예적 노력의 전부인 것 같다. 이 트레이는 기능적으로 약간 부실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나무껍질의 형태를 그대로 가져왔으므로 둥글게 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펜이나 연필을 담아두는 데 전혀 손색이 없다. 나는 이 트레이가 쓸모 이상의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무엇일까? 일반인이 이런 나무껍질을 보았다면, 대부분은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거기서 쓸모를 발견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은 아..
2024.01.31 -
마스크, 변신술의 미학 2023.12
Mask, the aesthetics of transformation 서촌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기에 더욱 변화가 무쌍하다. 가게들은 또 왜 그렇게 자주 바뀌는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많은 자영업을 망가뜨린 뒤 그런 현상을 더욱 자주 목격하게 된다. 식당이 카페로 바뀌는 건 여러 번 보았다. 내가 사는 청운동부터 경복궁역까지 가다 보면 상가들이 수시로 바뀐다. 가게가 바뀐다고 상가 건물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건물은 그대로이고 입주하는 상가의 성격에 따라 파사드가 바뀌는 것이다. 한번은 누상동을 지나는데 새로운 건물이 분명한 듯한 카페를 보았다. 그곳은 요즘 대왕 크루아상으로 인기가 높은 곳이었다. 손님들이 쟁반에 놓인 커다란 크루아상을 찍고 있었다. 이 카페 건물은 옛날 양옥 건물을 개조한 것이..
2023.12.30 -
파리 노트르담 성당 복원의 역사 2023.11
History of the restoration of Notre-Dame Cathedral in Paris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 불타기 불과 두 달 전에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가톨릭 신자인 나는 그곳에서 미사도 보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영성체 시간이다. 워낙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다 보니 성당에서는 성체를 받아먹는 방식이 다양했다. 한국에서는 두 손을 모아 받은 뒤 입으로 가져가 먹는다. 어떤 나라 신자는 무릎을 꿇은 뒤 입을 벌려 혀로 받아먹고, 어떤 신자는 그냥 서서 입을 벌려 받아먹는다. 아마도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은 가장 국제적인 미사 공간이 아닐까 싶다. 21세기에 들어와 노트르담 성당은 해마다 1,300~1,4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다. 물론 지붕이 불타기 전의 일이다. 이..
2023.11.30 -
프로필 사진은 왜 앞모습이 되었을까? 2023.10
Why is the profile photo a front view? 루이 16세는 프랑스혁명으로 자기 권력의 위협을 느껴 평민으로 가장하고 튈르리궁을 빠져 나와 오스트리아로 도망가기로 한다. 오스트리아 국경에 가까워질 무렵 작은 시골 마을의 우체국 관리가 이들을 수상하게 여겨 제지한다. 그는 마차에서 내린 남자가 프랑스 국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전하지도 않은 18세기에, 게다가 국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방 관리가 어떻게 그를 알아봤을까? 그것은 루이 16세가 사용한 ‘아시냐(assignat)’라는 프랑스혁명 당시 정부가 발행한 임시 지폐 덕분이다. 임시 지폐에는 아직은 국왕이었던 루이 16세의 프로필(profile), 즉 옆모습 그림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 옆모습이 자신..
2023.10.31 -
우연을 포착하는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 2023.9
A picture by William Klein that captures serendipity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열리고 있는 윌리엄 클라인 사진전을 보러 갔다. 한국에서 보기 쉽지 않은 사진가의 전시다. 한국은 유별나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전시회를 많이 한다. 우리에게 브레송은 마치 사진계의 빈센트 반 고흐 같다. 하지만 그런 브레송조차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대중적인 이름이 아니다. 몇 년 전 나는 디자인과 대학원 수업으로 브레송 전시를 보러 갔는데, 여러 학생들이 이 전시회로 브레송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다. 2000년대에 유서프 카쉬 전시회가 열렸을 때 관객이 엄청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유서프 카쉬가 유명한 사진가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처칠, 아인슈타인, 피카소, 오드리 헵번 등, 유서프 카..
2023.09.14 -
키치(kitsch)의 감성 2023.8
Sensibility of kitsche 가족여행으로 강릉에 갔다. 경포 해변을 걷다가 재미있는 벤치를 발견했다. 함께 간 가족 한 명이 거기에 앉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그 벤치에 앉아서 사진을 찍고 싶은 모양이다. 벤치 위의 하트 장식은 그곳을 포토존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저곳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분명 바다의 수평선과 모래사장, 파란 하늘이 멋진 배경을 만들어줄 것이다. 벤치는 마치 관광지의 호객꾼처럼 그런 사진을 찍어보라고 아주 노골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벤치를 기획한 주최 측은 아마도 ‘포토존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어떤 디자인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촬영하도록 만들까? 평범한 벤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
2023.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