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만(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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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림의 슬기 2022.9
The wisdom of counting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어머니가 인두를 이용해 저고리 동정을 다림질하신 것이 기억난다. 어머니는 인두를 숯불에 올려놓고 적당한 온도에 다다르면 동정을 다림질하셨다. 그때 인두가 너무 달궈지면 동정이 손상되므로 적정한 온도에 기준을 정하기 위해 어머니는 소리 내어 셈을 하시곤 했다. 이윽고 수차례 인두 다림질을 마치고 동정이 반듯하게 다려지면, 동정 달기 바느질을 하시고 어머니는 일을 마치셨다. 어머니 하시는 일을 도와드릴 나이가 안되었고 손도 서투르므로 나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 기억이 나는데, 중요한 사실은 정확한 시간을 기다려서 알맞은 온도를 이용하여 해당 일을 균등하게 적용시킨 후, 원하는 품질로 일을 마친다는 지혜를 배운 것이다. 그 헤아림의 슬기는..
2023.02.23 -
마라톤을 합시다 2022.6
Let's run a marathon 무슨 일이든지 체험담을 얘기하는 것이 실감 나고 바로 적용이 가능하기에 경험 위주로 말씀드리지요. 본인은 원래 축구도 좋아하였지만 대학교 졸업 후 테니스에 상당히 심취하여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테니스 단식 게임을 해야 잠이 올 정도였습니다. 조기 축구회에도 가입하고자 하였으나 마눌님의 휴일 운동 금지령과 더불어 가족을 배려하고, 특히 주일에 주님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는 조기 축구가 날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테니스에 더 심취했지요. 그러나 이 운동은 짝이 있어야 가능한 운동이라, 파트너가 없으면 테니스장을 나가기가 두려웠었죠. 테니스를 같이 하시던 분들이 전근을 가시고 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짝이 없어지고… 파트너가 없이 운동하기도 그렇고 해서 한동안, 근 1년..
2023.02.20 -
노래, 곁에 오래 두고 사귄 벗 2023.2
Song, a long-time friend 중학교 졸업반 겨울 방학 동안에 기타를 처음 접하고 배우다가 음악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긴 겨울 방학을 기타와 함께 보내고 나서, 고교 입학 후 음악 첫 시간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충실히 잘 배우면 작곡이 가능하도록 가르쳐 주겠다” 하셨는데, 이 말은 마치 가물었던 내 마음 밭에 단비처럼 내려와 노래와 음악에 대한 커다란 환상을 심고 무궁무진한 꿈을 키우게 해주었다. 당시 대학가요제가 태동하여 인기가 엄청나던 때였고, 기타 반주를 하며 포크 송을 부르는 것에 대한 멋과 욕구가 지대했던 때라, 그동안의 초·중학교 음악 수업에 대충 얻은 지식을 일거에 바꾸고,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한 학기 후 대학입시라는 중..
2023.02.16 -
성명, 한 사람의 모든 것 2022.1
Full name, a person's everything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 속담은 나에게 소리친다. 눈 덮인 산길 걸어갈 때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삶에 ‘역사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한자·한문 공부를 많이 강조하셨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응당 한자로 이름을 쓰도록 내 이름 석 자를 한자로 가르치셨다. 그 덕택에 어려서부터 나는 한자로 이름을 쓸 줄 알게 되었고 심지어 친구들 간에도 한자 이름을 알게 되었다. 죽마고우인 경원 친구의 가운데 이름이 서울 경(京) 자로 쓴다는 것과 길수 친구의 길할 길(吉), 시용 친구의 얼굴 용(容) 자도 알게 되었다. 이윽고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학년 초 어느 날 선생님이 호적초본을 제출하라고..
2023.02.15 -
복도, 그 아련한 시작과 끝 2021.8
A hallway, its dim beginning and end 영화 를 시청하던 중, 평소 선도부장에게 불만이 있던 학생이 위층 복도에 있다가, 마침 아래 지상에 모여 있던 선도부와 선도부장에게 마시던 우유갑을 내던져 그 우유갑이 선도부장 몸에 명중하면서 흰 우유가 검정 교복에 쏟아지는 장면을 보았다. 선도부와 부장은 잔뜩 화가 난 채 위층 교실로 함께 몰려와 우유갑 던진 학생을 찾다가, 그 행위를 말리는 햄벅(햄버거) 학우를 대신 냅다 팬다. 주연배우는 같은 반 학우들이 선도부장에게 늘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는 걸 보고, 그걸 빌미로 선도부장에게 옥상에서 한 판 맞짱을 뜨자고 큰소리로 욕하며 소리친다. 그 장면에서 나의 중학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청소시간에 물을 1층 배수구에 버려야 되는데, 귀찮아..
2023.02.08 -
건축물의 활력소 ‘계단’ 2021.6
‘Stairs’, the vitality of buildings 계단을 생각하면 먼저 우리 시대의 명가수 조용필 님의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딘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으로 시작되는 ‘서울 서울 서울(1991)’의 노랫말이 생각난다. 일반적으로 우체국으로 진입하는 출입구 앞에는 계단이 조성되어 있다. 그 계단은 우편 화물차의 짐 싣는 공간과 차 바닥판의 높이를 맞춘 것으로부터 기인하는데, 화물 트럭 짐칸에서 내리는 우편물을 수평으로 힘 덜 들이고 올리고 내리려 하다 보니 1층 바닥은 도로보다 높아지게 되고 그래서 우체국 앞은 자연스레 계단이 조성되곤 했던 것이다. 그 계단 양측에는 환경미화를 위해 봄에는 사르비아(샐비어), 가을에는 들국화 등 화초류가 화분에 정갈히 담..
2023.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