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6. 09:11ㆍ아티클 | Article/포토에세이 | Photo Essay
Disappearing village Dolsan Village
가난이 머물다 간 흔적은 마음을 멍들게 할 때도 있지만
한참을 오다가 뒤돌아보면
전이되어버린 좁쌀 같은 생의 암 덩어리를 향한 치유의 손길
빈 신작로 길 위를 구르는 바람 소리에 가만가만 물어보면
가난처럼 귀한 유산도 없단다
-이충재 詩, ‘가난 유산’ 中
전체 5만 5,000제곱미터 산기슭에 300여 채의 무허가 촌락, 부산의 대표적 빈민가인 문현동 돌산마을(부산시 남구 돌산1길 16)이 60년의 세월을 뒤로 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곳은 황경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황령마을이라 불렸고, 돌들로 형성된 절벽 중간에 주거지가 형성되면서 돌산마을이라 불렸다.
일제 강점기부터 형성된 공동묘지 터에 한국전쟁의 피난민들이 모여 만든 주거지로 90여 기의 무덤과 함께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죽은 자와 산자의 동거촌이 1970년대 도시빈민들의 피난처로 이어지면서 마을은 그 명맥을 이어가고, 기존의 산비탈에서 더 높고 험한 지금의 고개 정상까지 확장되었다. 마을 전체가 무허가 건물이어서 전기와 수도 등의 기반시설 역시 갖춰지지 않아 오랫동안 시설 혜택을 누리지 못했고, 날마다 철거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며 삶을 살아온 주민들의 공동체였다.
2020년 6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재개발 사업으로 지상 28층 총 1,072세대의 아파트 단지가 형성될 이곳, 전쟁과 산업화의 그림자인 피난민과 도시빈민들의 삶의 역사도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지고 주민 대다수는 또 다른 피난처로 이동해야 하는 가난의 이주가 반복되는 것이다.
고단한 삶을 승화시키며 벼랑에 떨어진 자들의 삶을 지켜주었던 피난처.
시간을 거슬러 이들이 살았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소통 그리고 삶의 희망 - 벽화
2008년 부산시 벽화사업을 통하여 40여 점의 다양한 벽화로 탈바꿈한 마을이 세상의 이목을 받아 많은 유명세를 치르면서, 고립된 삶을 살던 주민들이 마을을 찾은 많은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희망과 소통의 삶을 부여받는 심리적 변화를 겪는 계기가 되었다.
무덤 속 마을의 삶의 애착 – 숙명과 공생
기반시설이 없던 시절에는 주변의 무덤들로 인한 무서움과 고립, 그리고 삶의 의지.
이 두 조건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 공생해야 했다.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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