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마을대한민국 ‘도시재생사업 1호 마을’ 창신동 절벽마을 ① 2021.10

2023. 2. 10. 09:12아티클 | Article/포토에세이 | Photo Essay

Disappearing village South Korea's 'No.1 Urban Regeneration Project Village' 
Changsin-dong Cliff Village ①

 

채석장에서 1960년대 판자촌→1990년대 봉제공장→2000년대 봉제마을까지
절벽마을은 서울 동대문구 창신1·2·3동에 위치하며 30만 6,667제곱미터, 2,800여 명의 소유주로 구성된 마을로서 대한민국의 유일한 채석장으로 쓰던 바위 절벽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채석장의 흔적이 병풍처럼 보인다. 마을은 밀집되어 있는 불량 주택과 노후 주택, 깎아지른 낭떠러지와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주택촌’과 돌산 아래 비정형으로 막힌 골목을 따라 형성된 ‘돌밑 마을’로 구분된다. 이들 모두 급경사 지형에 적응하여 다양한 건축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큰 바위 사이의 좁은 공간에 좁고 좌우 비례가 맞지 않는 집들도 많이 있다. 일제 강점기엔 이곳에 화강암을 채취하던 채석장이 있었다. 일본은 당시 이곳에서 캐어낸 화강암으로 한국은행, 서울역, 조선총독부 등을 지었으며 쉼 없이 돌을 캐면서 채석장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만들어졌다. 해방 후 채석장은 문을 닫았고, 한국전쟁 이후 채석장 인근에 토막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폐쇄된 채석장 자리에 눌러앉아 1960년대에 지금과 같은 주거지를 만들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소규모 형태로 형성된 수많은 봉제 공장촌이 생겨났다. 한국의류사업의 메카인 동대문 평화시장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에서였다. 1,000여 개의 공장들이 밀집한 ‘창신동 봉제거리’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공장들이 모인 봉제 산업 집적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봉제산업이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봉제 공장촌은 사라지고, 현재는 동대문 패션마켓을 위한 생산지로, 또 여전히 많은 소규모 개인 봉제마을로 그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2007년 뉴타운 개발 대상 지정→2014년 도시재생 1호 지역 지정→2021년 도시재생구역 해제 요청과 소송
뉴타운 개발 열풍이 불던 2000년대, 2007년에 창신동도 대상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뉴타운 지구는 해제되었다. 개발이 되면 살고 있는 주민 대다수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란 걱정 때문이었다. 이에 대안으로 찾은 게 ‘도시재생사업’이었다. 그리고 2014년 도시재생 1호 사업지로 선정되었다. 
창신동 도시재생에 투입된 예산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1,168억 3,300만 원에 달한다. 마을의 주택은 그대로 보존하되, 환경을 개선하고 거리를 가꾸는 사업에 중점을 두었다. 도로정비, 지정주차장, 주민교육시설, 공원, 놀이터, 도서관, 지역 공작소, 공동운영조합 등 다양한 재생사업이 이루어졌다. 이후에 영화와 드라마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기념관, 전망대, 조망점, 역사관 거리박물관, 카페 등도 생겨났다. 하지만 주민들의 실제 생활 환경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창신동엔 좁고 가파른 골목에 허름한 주택들이 즐비하다. 가파른 계단과 급경사의 도로, 차가 지나가기도 어려운 골목길도 많고 빈집이나 폐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주거환경은 열악하다. 종로 한복판에 이런 데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직 정화조가 없어 공용 화장실을 쓰는 집들도 있다. 재생사업 이후에도 마을 모습이 30~40년 전 모습과 달라진 게 없었다. 노후주택 비율 72%… 슬럼화만 키웠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은 더 이상 재생사업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패한 도시재생사업을 이유로 창신동을 공공재개발에서 배제해 주민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2021년, 주민들은 공공재개발과 민간재개발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지만 재개발에 대한 의지와 참여가 고조되고 있다. 서울시와 도시재생구역 해제요청과 행정소송도 이어가고 있으며,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공기획’을 적용한 민간재개발 후보지 공모가 9월 말 시작되면서 주민 동의율 50%가 넘는 참여율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 중심지에 여전히 과거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의 고통을 재생사업으로 덜어내는 데 한계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삶의 터전이 사라지고 이 지역을 떠나가야 하는 현실을 걱정하는 재개발 반대 주민들의 목소리도 여전히 존재한다. 창신동 주민의 상당수는 작은 지분 소유주이거나 혹은 주민의 70%가 세입자들이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을 연장하느냐 아니면 재개발을 시작하느냐, 이곳 창신동은 또다시 갈등의 갈림길에 서 있다.
보존을 하든 재개발을 하든, 이 모든 것의 초점은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맞추어져야 한다.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