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4. 09:07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Live today! With this quote in mind, I have lived only for today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긴다, 어느새 느닷없이 덜컥… 12월이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지나온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이 안갯속처럼 희미하다. 삼백 예순 날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에 일어나고 일터에 나가고 잠자리에 들었을 터인데, 문을 쾅 닫고 다른 방에 들어온 것처럼 기억이 멀다. 지난 1년 무슨 일이 있었나, 억지로 머릿속을 뒤져본다. 마스크가 제일 먼저 튀어나오고, 재택근무와 취소된 모임들이 뒤를 잇는다. 지난 2년은 성인이 된 후 집에 머문 시간이 가장 길었던 해였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거리두기의 연장선으로 휴대전화에서 페이스북 앱을 지웠더니 남의 밥상을 들여다보는 일도 줄었다. 대신 동네 수영장에 다니며 내 몸과 만나는 시간이 늘었다.
대부분의 날이 특별한 사건 없는 무덤덤한 하루였고 고맙게도 마음에 아무런 바람도 불지 않았다. 그저 내가 살고 있는 ‘지금’만 의식했다. 바로 ‘오늘’ 해야 할 숙제, ‘오늘’ 만나는 사람, ‘오늘’ 먹는 음식에 집중했고, 끝난 후에는 복기도 후회도 하지 않았다. 나의 2021년을 두 줄로 정리하면 ‘오늘을 살아가세요, 이 말에 기대 하루에 하루만 살았다’ 정도가 되겠다. 두 해 전, 한 광고 영상에서 아이슬란드까지 먼 길을 떠났던 배우 김혜자의 카피에서 빌려온 문장이다.
코오롱스포츠는 20~30대 젊은 모델을 주로 기용하는 아웃도어 광고의 상식을 깨고 여든에 가까운 배우 김혜자를 모델로 발탁했다. 2분 30초가량의 광고는 그녀가 아이슬란드에 도착해 혼자 밤을 보내고 거리를 걷고 오로라를 만나는 여정을 아름다운 풍경과 감동적인 카피로 보여주고 있다. 광고라기보다는 짧은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자막) “오늘을 살아가세요.”
이 말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김혜자O.V) 여기까지 오는 데 참으로 오래 걸렸습니다.
연기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라
가볍게 휙 떠나올 수 없었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살아볼 만한 거겠지요.
이 길에서 자꾸만 나의 지난 일들이 겹쳐집니다.
하늘이 허락해 주시지 않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80을 눈앞에 둔 내 인생의 길 끝에서
나는 내 꿈 앞에 서 있습니다.
나를 믿고 걸어갑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막) TRUST 김혜자
TRUST KOLON SPORT
광고 속 김혜자의 말처럼 ‘언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그런데 나는 자주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했고, 지나가버린 어제를 후회했다. 남의 기준, 남의 시선을 의식해 싫은 일을 억지로 하기도 했다.
커서 생각하니 어릴 때 어른들에게 들은 말 중에는 거짓말, 틀린 말이 많았다. 변화하는 시대에 더이상 맞지 않는 속담이나 격언도 부지기수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또 얼마나 많은 그릇된 환상을 심어주었던가! 어린이들에게 강요하는 어른의 기대나 권선징악의 동화를 유쾌하게 뒤집는 광고가 있는 것을 보면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는 모양이다. 토이킹덤이라는 장난감 가게에서 운영하고 있는 인스타그램이 그것이다.
2021 돌JOB이
주인공의 돌잡이가 시작되자
어른들은 다양한 이유로 돌잡이 물건을 가리켰어요.
“청진기를 잡아야지, 그래야 의사가 되지.”
“마이크를 잡아야지, 그래야 연예인이 되지.”
“공을 잡아야지, 그래야 운동을 잘하지!”
주인공은 한참을 고민하다…
돌잡이 물건을 다 거부하며 과감히 외쳤답니다!
제 길은 제가 정해요!
아직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으니 좀 더 커서 생각해 볼게요!
‘제 길은 제가 정해요!’라고 외치는 인스타그램 속 주인공을 내 아이에게서 본다. 내 아이뿐 아니라 많은 젊은 세대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인류의 진화를 목격하고 있는 기분이다. 늦었지만 나도 따라 다짐한다.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자, 오늘에 충실하자!
오로라를 만나러 아이슬란드에 갔던 배우 김혜자는 그 이듬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과연 걸을 수 있을까 걱정하고, 길을 잘못 들기도 하지만 걷기를 계속한다. 누구나 제 몫의 짐 하나씩을 지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받아들이며, 쉬었다가도 끝까지 걸어야 하는 순례자의 길은 우리 인생길과 닮았다.
2021년이 저물고 있다. 지난 열두 달, 멈추지 않고 잘 걸어왔다. 애썼다고 장하다고 내가 내 어깨를 토닥인다. ‘아듀 2021, 웰컴 2022!’ 조금은 감상적인 마음이 되어 오가는 해(年)에게 인사를 건넨다. ‘올해 참 고마웠어, 내년에도 잘 부탁해.’ 옷 벗은 가로수와 다정하게 밝은 달, 무뚝뚝한 지하철 그리고 신발장에 가지런한 신발에게도 감사의 말을 중얼거린다.
2022년엔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또 어떻게든 살아낼 것이다. 새해에도 난 오늘을 살고, 오늘을 사랑할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자막) CAMINO DE SANTIAGO
당신의 앞길에 행운이 있기를
김혜자O.V) 이 길에선 누구나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서로를 응원하며 갑니다.
내가 이 길을 끝까지 걸어낼 수 있을까?
나를 믿고 가보자.
잘못 왔다…
누구나 삶의 짐 하나씩은 지고 가지요.
씩씩하게 걷지만 가끔은 쉬어가는 거예요.
오늘은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순례자의 길은 뭐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연습 같아요.
인생의 길도 다르지 않겠지요?
우리 같이 걸어가요.
자막) TRUST 김혜자
TRUST KOLON SPORT
https://www.youtube.com/watch?v=PEKPMGHQEOY
코오롱스포츠_기업PR:아이슬란드 김혜자 편_2019_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PF2BuEMziOY
코오롱스포츠_기업PR:산티아고 김혜자 편_2020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 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 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 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 >(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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