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신가요?” 2021.9

2023. 2. 9. 09:06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Are you happy now?"

 

여름 내내 차라리 야자수로 사는 게 낫겠다 싶었다. 겨울잠 말고 여름잠을 자는 곰이 되고도 싶었다. 지칠 줄 모르는 바이러스와 열대야, 찜통더위를 겪고 있자니 지구에 심각한 일이 생기고 있구나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몸은 땅으로 꺼지는 것처럼 가라앉고, 생각은 뒤죽박죽 제멋대로 떠다니던 여름의 한가운데서, 친구와 짧은 여행을 했다. 
대관령 자락에 방을 하나 잡아서는 멀리 나가지 않고 숙소 근처에서만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작은 음악회를 구경했다. 부지런한 친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숍에 가서 책을 읽다가 내가 깰 때쯤 모닝커피를 배달해 주었다. 커피 향기로 잠이 깨다니, 평생 몇 번 누려보지 못한 호사였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는 다시 침대로 기어들거나 가벼운 소설을 읽었다. 아기자기한 꽃밭을 거닐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연주회를 관람하며 꾸벅 졸기도 했다. 연주가 끝난 뒤에는 편의점에서 와인과 당근, 치즈를 사다가 나누어 먹고 마셨다. 조용한데 즐거웠고, 밋밋하지만 풍요로웠다.
우리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버린 순간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모하고 무지했던, 그래서 용감했던 젊은 날을 추억했다. 살면서 우리를 힘들게 했던 무책임한 남자들과 가식적인 여자들을 성토했고, 억울했던 일을 털어놓기도 했다. 즐거웠던 기억을 소환하고, 잘 했으니 칭찬해 달라고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집에서 일터에서 낯선 도시에서, 나처럼 친구도 ‘이게 아닌데’ 싶었던 날을 겪었다. 나도 친구처럼 자주 막막하고 아득한 순간을 맞닥뜨렸다. 맞아 맞아,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잘 했어, 잘 될 거야. 우리는 아낌없이 서로에게 공감하고 서로를 토닥였다. 그리고 거울처럼 마주 보며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살아야 10년 뒤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 나는 과연 행복한 걸까?”

‘세상의 기준 앞에 사표를 내’고 스스로 세운 행복의 기준에 맞춰 기꺼이 ‘가난’을 감수하며 사는 부부가 주인공인 광고가 있다. 2017년 KBS가 진행한 연중 캠페인 ‘한국사람’ 시리즈 중 하나였던 그 영상의 등장인물은 김용민, 박보현 부부다. 그들은 서핑을 하다 만나서 ‘인생의 파도에 함께 올라’탄 뒤, 도시의 직장 대신 바닷가에서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다.
파도와 햇볕에 그을린 화장기 없는 얼굴, 소박한 옷차림의 두 사람. 세상 누구보다 부자 같은 표정으로 자신들은 ‘가난하다’고 밝히며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행복하신가요?’라고. 

 

KBS 캠페인_한국사람:파도를 사랑한 부부 편_2017


자막)          한국사람 
                  파도를 사랑한 부부 김용민, 박보현
김용민)      저희는 양양에서 서핑을 하다 만나서 결혼한 부부 김용민
박보현)      박보현입니다.
                  그 느낌이 있어요 이렇게,
                  파도가 싹 이렇게 오는데…
김용민)      어떨 때는 하늘을 날라가는 기분도 들고 심장 터질 것 같고,
                  타고나면 그 생각밖에 안 해요.

자막)         인생의 파도에 함께 올라탄 지 3년
                  우리의 행복을 찾아서
                  세상의 기준 앞에 사표를 내다 

박보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김용민)     서핑보드도 만들고 뭐 주말이면 강습도 하고. 

박보현)      가난하죠 저희.
                  또 어떤 사람들이 봤을 때는 
                  저 사람들 생각 없이 사는 거 아니야?
                  서울에서 회사 다니면 저도 적금 들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됐겠지만…
                  내가 과연 행복한가? 
                  결정을 내린 거죠.
김용민)      너무 미래를 위해서 지금을 희생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를 바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막)         오늘에게 행복을 묻는다
                  지금 행복하신가요?
박보현)      오늘이 즐거우면 내일도 기분 좋잖아요.
                  오빠는 꿈이 뭐야?
김용민)      그냥 같이 건강하게 계속 좋은 파도 타고… 딱 그거.

자막)         마음을 담습니다.
                  마음이 닿습니다.
                  KBS

여름날의 짧은 추억과 여운이 긴 질문을 남기고 친구가 돌아갔다,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열일곱,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의 책상에 손 편지를 놓아주던 친구. 스무 살, 어쩔 줄 모르고 뜨겁기만 했던 사랑을 털어놓던 친구. 깔깔대며 함께 명동 거리를 쏘다니고, 랩스커트를 골라 주고, 충무 김밥과 카레를 나누어 먹던 친구. 설악에 같이 가고 마니산에 함께 오르고 아무 데서나 화음을 맞춰 노래 부르던 친구다.
옆집에 살면서 콩나물무침을 나눠 먹고 빈대떡을 얻어 오고 싶었는데, 저녁마다 와인 한 병 들고 가 오늘만 딱 한 잔 하자고 꼬시며 살고 싶었는데… 옆집은커녕 20년 넘게 밤과 낮의 시간마저 서로 다른 먼 대륙에 떨어져 살고 있다.
내년에 보자 하고 헤어지지만… 내가 걸어보지 않은 그녀의 거리와 보지 못하는 그녀의 저녁 밥상과 그녀가 입 밖에 내어 말하는 이국의 언어들이 아득히 멀다. 
어쩌면 서울에서의 내 삶은 그녀를 기다리는 날들일지도 모르겠다. 반갑게 해후해 서로의 몸에 새겨진 지난 시간을 찬찬히 확인하며 연민과 애정 가득한 포옹을 나누기 위해, 한 시간을 하루를 한 주일을 세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친구를 다시 만날 때까지 나는 매일 지금 행복한가 자문할 것이다, 정기적금 붓듯이 꼬박꼬박 10년 동안 쌓아갈 일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친구가 내 곁으로 이사 오게 되기를 기도할 것이다.

친구가 떠나고 거짓말처럼 바람의 온도가 달라졌다. 매미 울음이 한 옥타브 낮아졌다. 
구름이 흩어지고 하늘이 한 뼘 높아졌다.
드디어 마침내 간신히! 여름이 갔다!
초록을 덜어낼 준비를 하는 나뭇잎을 보며 겨우 안심이 되었다. 영원할 것 같던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와서 마음이 편해지는 건 나뿐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해 방영된 삼성생명 광고는 단풍 물든 가을을 보여주며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라고 이야기했다. 30초 동안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낙엽과 연못에 비쳐 반짝이는 단풍을 보고 있으면 아닌 게 아니라 마음이 고요해진다. 

삼성생명_기업PR:마음편한 인생금융_가을 편_2020


Na)            마음이 편해지는 지금 이 순간처럼
                  당신의 인생도 언제나 편안하길.
자막)          마음 편한 인생금융
                  삼성생명


내 사랑스러운 친구는 단풍잎 한 장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가을이면 가장 곱게 물든 단풍잎을 주워 말려서 비닐로 코팅까지 해서 보내주곤 한다. 
나는 그 단풍잎 편지를 책갈피에 끼워 두고 1년 내내 가을의 향기를 즐긴다.
하염없이 흔들리는 광고 속 가을 단풍을 보며 기원한다. 
이국 땅에서 보내는 그녀의 모든 날들이 가을 하늘처럼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고향이지만 자주 낯설게 느껴지는 이 땅에서 만나는 나의 날들 또한 저 단풍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기를…
승연아! 
네가 있어, 내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Sox9qn2Mfg

KBS 캠페인_한국사람:파도를 사랑한 부부 편_2017_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O1fYUDN1qqs

삼성생명_기업PR:마음편한 인생금융_가을 편_2020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