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하얀 지갑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2021.6

2023. 2. 6. 09:05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Where did mom's white purse go?

 

“내가 속상한 일이 있어.”
엄마가 수화기 너머에서 얘기했다. 
짚이는 구석이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뭔데?”
“지갑이 없어졌어.”
“엄마가 잘 둔다고 숨겨 놓고 못 찾는 거 아냐?”
“그런가 해서 내가 다 찾아봤어, 없어.”
“전에도 그런 적 있잖아. 지갑 잃어버렸다고 온 집안 다 뒤졌는데 안 보이다가 한참 만에 나왔잖아.”
“내가 언제? 집에 없어, 훔쳐갔어.”
“누가 훔쳐가?”
“누구긴 누구야, 가져다가 지 마누라 준 거야.”
엄마는 남동생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줘도 안 가질 정도로 낡은 지갑을 훔쳐갈 이유가 없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엄마는 막무가내였다. 매일 전화를 드리고, 1주일에 한 번은 꼭 국이며 반찬을 들고 가 진지를 챙기고, 요일별로 잡술 약을 약통에 채우고 오는 효자 동생이 졸지에 지갑 도둑이 되어버렸다.
엄마의 하얀 반지갑, 13년 전 함께 홍콩에 갔다가 산 것이다. 우리 돈으로 10만 원 정도였던가? 명품 브랜드도 아니라서 상표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지갑 안에는 옛날 디자인의 만 원권 열 장이 새 돈으로 들어 있고, 요즘 돈 만 오천 원과 주민등록증, 은행 현금카드가 들어 있다. 평생 신용카드도 사용한 적 없는 울 엄마의 지갑은 만약 누가 훔쳤다면 몇 푼 더 넣어서 돌려줄 만큼 소박하다. 그런 지갑을 도둑도 아니고 당신의 큰아들이 슬쩍해 갔다니 누가 들어도 황당무계한 일인데 엄마는 진지하게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엄마 연세 올해 만 여든일곱, 아직은 혼자서 밥 차려 드시고 공원 마실 다니신다. 해마다 치매 검사를 받는데 큰 이상소견은 없다. 뭘 깜빡 잊는 일이야 젊은 나도 자주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가끔 엉뚱한 일을 지어내 철석같이 믿는다. 주로 큰아들이, 아끼는 물건을 며느리한테로 처가로 빼돌리는 엄마 상상 속의 악당이다. 4남매 중 가장 편애하며 애지중지 키운 큰아들인데, 도대체 엄마의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영화 <더 파더(The Father)>에서 치매에 걸려 혼란을 겪고 있는 노인 앤서니는 다섯 살 어린애처럼 엄마를 찾으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의 잎사귀가 다 떨어지는 것 같아. 
나뭇가지가 비바람 속에 있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더 이상 모르겠어. 
무슨 일인지 알아요?”

영화 <더 파더> 포스터 속의 앤서니 ⓒ 판씨네마(주)


영화의 주인공은 런던의 아파트에서 혼자 노후를 보내고 있는 노인 앤서니(앤서니 홉킨스)다. 그는 세 번째 간병인을 내쫓고,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다고 간병인을 거부한다. 이로 인해 이웃에 살며 매일 그를 돌봐주러 오는 딸 앤(올리비아 콜맨)과 의견충돌을 빚는다. 한발 더 나아가 딸이 자신의 집을 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고 생각한다. 사위는 자신의 시계를 훔쳐서 버젓이 손목에 차고 있다고 의심한다. 딸은 런던을 떠나 파리로 가고 그는 요양병원에 들어가는데, 그곳의 간호사에게 묻는다. ‘내가 정확하게 누구인가요?’라고.  
엄마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알 수 없는 일들은 아마 나도 겪을 수 있는 슬픈 미래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난 엄마의 머릿속이,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무얼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궁금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으니 묻지도 않았다. 그냥 엄마는 늘 내 가까이에 있으면서 내가 아쉬울 때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해도 되는 존재로만 알았다. 젊었던 때는 더 심해서 나 놀고 먹고 일하는 것이 언제나 엄마보다 우선순위였다. 아니 엄마는 순위에 아예 없었다. 
나랑 똑 닮은 딸들은 어디에나 있는 모양인지 광고에서도 보인다. 광고의 주인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딸과 엄마이다. 광고는 23년 전부터 현재까지 변화해온 모녀 사이를 짧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엄마는 딸이 고등학생 때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딸에게 묻는다. ‘어디야? 저녁은? 언제 와?’ 모든 엄마들의 공통질문이기도 하다. 엄마의 문자나 질문에 딸은 짜증을 내거나 건성으로 대답하고 만다. 그런데 엄마는 10년 전에는 세제를 어디 뒀는지 잊고, 7년 전에는 딸이 결혼한 사실을 깜빡 잊는다. 5년 전에는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까맣게 잊어버려 화상을 입고도 아무데도 연락을 못 한다… 그렇게 엄마는 치매 속으로 들어갔고, 딸이 질문해도 공허한 눈빛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엄마의 질문을 귀찮아하던 딸은 대답하지 않는 엄마에게 끝없는 질문을 돌려줘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딸(O.V)               언제나 내 생각뿐이던 엄마의 물음표는 조금씩 조금씩 변해갔고.
                              결국 멈춰버렸습니다.
   휴대전화 화면)   우리엄마
                              어디야?
                              저녁은?
                              언제와?
   딸(O.V)               엄마는 여전히 내 곁에 있습니다.
                              그래서 난, 엄마의 물음표가 그립습니다.
   딸)                      엄마 밥은? 상담은 잘 받았어? 엄마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딸NA)                 엄마의 물음표에서 엄마를 향한 물음표로
   딸)                      내일은 엄마가 좋아하는 공원 산책 가자.
   딸NA)                 엄마와 난 새로운 답을 찾아갑니다.
   자막)                   우리나라 치매 환자 83만
                              치매안심센터, 치매안심병원 운영 · 치매 환자 공공 후견인 사업 · 치매친화적인 의료 · 돌봄환경 조성
   NA)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국가가 함께 하겠습니다.
                              당신 곁에, 치매 국가책임제.
   자막)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_공익광고_치매국가책임제:엄마의 물음표 편_2021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치매에 걸린 가족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주변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 흔해서 이제 별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가족도 힘들지만 기억을 잃어가는 당사자의 혼란과 괴로움은 얼마나 클지… 짐작하기도 미안하다. 
원고를 쓰다 말고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원에 나왔다가 들어가는 길이라는 엄마의 목소리는 가볍고 밝았다. “엄마는 잘 있지, 애들도 다 잘 있어?” 아이들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잘 챙겨서 드세요, 했더니 “나야 잘 먹어. 먹고 싶으면 먹고 싫으면 안 먹고 내가 제일 편한 팔자야!”라고 대답하신다. 언제 가겠다는 약속 대신 “알 러뷰”라고 말한다. 말하기 쑥스러워 영어가 튀어나왔다. “엄마도 우리 딸 많이 사랑하지!” 엄마의 사랑이 몇 배 더 커져 한국말로 되돌아온다. 
그래 우리 엄마 아직 끄떡없어! 엄마를 뵈러 가는 대신 이렇게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랑했었던 것들이 자꾸 사라지는 일’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디론가 사라져 오지 않는 엄마의 지갑처럼, 한 때 아끼던 많은 물건이 내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세상을 버려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과 끊어진 인연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막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그저 견디고 또 견딜 수밖에…
광고의 BGM으로 쓰인 여성 듀오 ‘스웨덴세탁소’의 ‘두 손, 너에게’라는 곡의 가사가 자꾸 귀에 맴돈다. 

사라질까요, 지금 그리고 있는 미래도.
아주 오래전 매일을 꾸었던 꿈처럼.
잊혀질까요, 작은 두 손가락에 걸어두었던
간절했던 약속처럼.
사랑했었던 것들이 자꾸 사라지는 일들은
그 언젠가엔 무뎌지기도 하나요.

캄캄한 우주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찾아서
눈을 깜빡이는 넌 아주 아름답단다.

수많은 망설임 끝에 내딛은 걸음에
잡아준 두 손을 기억할게요.

 

스웨덴세탁소, ‘두 손, 너에게’ 가사 일부

 

 

 

 

https://www.youtube.com/watch?v=mOEVwNtyu58

보건복지부_공익광고_ 치매국가책임제:엄마의 물음표 편_2021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 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 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 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 >(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