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다, 통영 2021.5

2023. 2. 3. 14:51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Tongyeong, in the vibe

 

난생처음 통영엘 갔다. 
가보니 통영은 그리움의 마을이었다. 
작곡가 윤이상이 평생 돌아오고 싶어 한, 시인 유치환이 바닷가 우체국에서 날마다 편지를 부치던, 소설가 박경리가 죽은 뒤 돌아와 묻힌… 
고요하고 깊은 그리움이 물결마다 골목마다 스며있는 정다운 동네였다. 
통영에서 수십 년 만에 자전거를 탔다. 바다를 옆에 두고 길게 뻗은 자전거 도로가 한산했다. 비틀비틀 서툰 실력으로도 달릴 만 했다. 통영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어떡하면 좋으냐고 떼쓰듯 물었다. 무얼 먹어야 하냐고, 어느 섬에를 가야 하냐고, 섬에 왔는데 차가 없으니 어쩌냐고… 어린애 같은 내 물음을 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하던 일을 멈추고 길고 충분한 대답을 주었다. 전화를 걸어 차편을 알아봐 주기도 했다. 다정한 언니나 오라비의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통영에서 나는 모든 것에 서툴렀다.
통영에서 나는, 나도 모르던 내가 되었다.
서툴고 낯선 나와 마주치게 되는 일, 원래 여행은 그런 것인가 보다. 특히 쪽빛 파도가 넘실대는 남해로의 여행은 그런가 보다. 
몇 해 전 전파를 탄 한국관광공사의 남쪽 여행 홍보영상이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여O.V)    여행은 낯가리던 나를 마당발로 만들고,
               부끄러움 무릅쓰고 철판도 깔게 만든다.
               어른인 척하던 나를 철부지 아이로 만들고,
               빨리 빨리만 외치던 나를 나무늘보로 만든다.
               나도 모르던 내가 되는 여행!
               made by 남쪽빛 감성여행.
자막)       부산, 부평깡통시장 
               남해, 양모리학교
               통영, 동피랑마을 
               남해, 섬이정원
               거제, 바람의 언덕
               부산, 문화공감 수정
               남해, 돌창고프로젝트 대정

한국관광공사_남쪽빛감성여행:여행이 만들었습니다_여자편_인터넷/바이럴_2018


남O.V)    여행은 구두 대신 모래를 신게 만들고,
               빠른 길만 찾던 내가 고생길도 즐기게 만든다.
               익숙한 음식만 먹던 나를 모험가로 만들고,
               내일을 걱정하던 나를 오늘에 취하게 만든다.
               나도 모르던 내가 되는 여행
               Made by 남쪽빛 감성여행
자막)      부산, 광안리 해변 
               거제, 매미성 
               통영, 중앙전통시장
               부산, 부평깡통시장 
               남해, 쿤스트라운지

한국관광공사_남쪽빛감성여행:여행이 만들었습니다_남자편_인터넷/바이럴_2018


굳이 통영이 아니라도 여행은 ‘어른인 척하던 나를 철부지 아이로 만들고’, ‘내일을 걱정하던 나를 오늘에 취하게 만든다’. 이 영상을 보고 깨달았다, 내가 왜 통영에서 철부지 아이처럼 행동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내가 내일의 근심을 잊고 오늘의 행복에 취할 수 있었는지를. 
통영이 좋아 아예 눌러앉은 사람의 얘기를 듣기도 했다. 서울의 작업실을 접고 통영에 작업실 겸 카페 겸 문화 공간을 마련한 일러스트 작가도 있었고, 서울의 식당을 닫고 신선한 해산물이 지천인 통영에 레스토랑을 차린 꼬르동블루 출신의 셰프도 만났다. 통영 앞바다 욕지도에 반해 무작정 귀농해 고구마 농사를 짓는 이가 만든 기가 막힌 고구마 도넛을 맛보기도 했다. 대놓고 유혹하는 동피랑의 벽화를 보니 그이들의 통영행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래도 고등어도 낙지며 조개와 대게까지 나를 좋아한다는데, 내 마음을 낚고 싶다는데! 이렇게 노골적인 고백을 보고 어떻게 마음이 콩닥콩닥 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난 고래야, 고래서 널 좋아해.
               고등어 때부터 널 좋아했어.
               너의 마음을 낙지.
               날 바다 줘.
               보조개가 이쁜 널 대게 좋아해.

통영 동피랑 마을의 벽화


잠깐의 나들이 끝에 다시 일상이다. 여행을 했다고 변한 건 없다. 밀린 일이 어깨를 짓누르고 답답한 마스크도 그대로다. 
책상 위 모니터 화면에 초록색 통영 앞바다 사진을 띄웠다. 
하염없이 바라본다. 아니 일하는 틈틈이 흘깃 본다. 마음에 찰랑찰랑 파도가 인다.
‘통영’ 하고 소리내어 본다. 
단 두 개의 음절에 이응이 세 개나 들어있다. 
통영, 다시 부른다. 보드랍다, 간질간질하다, 왈칵 눈동자가 흔들린다.
잠시 머물다 왔는데 통영은 어느새 슬그머니 내 안에 스며들어 있다.

욕지도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https://www.youtube.com/watch?v=wP0Yy5s0goo

한국관광공사_남쪽빛감성여행:여행이 만들었습니다_여자편_인터넷/ 바이럴_2018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Vl_L-_vQ0o0

한국관광공사_남쪽빛감성여행:여행이 만들었습니다_남자편_인터넷/ 바이럴_2018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 >(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