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7. 09:05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Wine?What's so great about that?"
프랑스에서는 놀랍게도 1956년까지 14세 미만의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학교 매점에서 와인, 사과주 또는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오랫동안 알코올이 어린이의 건강을 유지하고 성장을 촉진하며 지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특히 와인은 1897년부터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는 법적인 「위생」 음료였다.
1956년 8월이 되어서야 프랑스에서는, 14세 미만 어린이의 학교 구내식당 내 알코올 섭취가 금지되었다. 대신 아이들에게 우유 한 잔과 설탕을 주자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는데, 이에 반발한 부모들은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아침에 술을 주어 마시게 했단다. 와인이나 맥주를 마신 아이들은 벌게진 얼굴로 땀을 흘리며 학교에 도착했고 오전 내내 잠을 자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프랑스의 고등학교에서 알코올음료가 금지된 때는 그로부터 25년이나 더 지난 1981년 9월이 되어서였다.
역시 와인의 나라다운 와인 사랑이군, 구글이 가르쳐주는 믿기 어려운 정보를 읽으며 오늘 몫의 와인을 잔에 따랐다. 너무 자주 마시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프랑스 사람들과 비교하여 날려버렸다. 프랑스인들은 20세기 초에는 인구 1인당 연간 거의 170리터의 와인을 소비했고, 1970년대까지는 100리터, 21세기에 와서도 여전히 연간 40리터가 넘는 와인을 한 사람이 마신다. 그에 비하면 내가 마시는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양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프랑스보다 더 자주 와인을 마시는 동네를 만났다. 와인을 물처럼 마시는 마을이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인 그곳에서는 아침 댓바람부터 모닝 커피 대신 모닝 와인을 마신다. 밭을 매다가 새참을 먹을 땐 주전자에 담긴 와인으로 막걸리를 대신한다. 와인잔을 들고 소등에 타서 흔들리며 “워메- 저절로 디캔팅이 되는구먼!” 하고 감탄하고, 손으로 쭉 찢은 김치부침개를 입에 넣고 “전이랑 와인이랑 잘 어울린당께”라며 와인을 꿀꺽 삼킨다.
어디 그뿐이랴. 툇마루 처마엔 곶감을 말리는 것처럼 와인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할매들은 구부정한 허리로 와인을 가득 실은 손수레를 밀고, 할배들은 정자나무 아래서 와인잔을 부딪치며 “와인, 아무것도 아녀”라고 선언한다.
몇 해 전 이마트 와인장터를 알리는 광고에 나오는 마을 이야기다.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고, 나도 양은 막걸리잔에 와인을 따라 마셔보고 싶어진다. 이마트는 와인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전남 구례 당촌리 마을 주민들을 모델로 등장시켜 광고를 만들었다. 광고 속에서 58가구 82명의 주민이 살고있는 당촌리는 와이너리(里)로 새롭게 변신했다. 곳곳에 주민들의 재치 있는 입담이 넘치고,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가 위트 있게 펼쳐진다.
앞니가 홀딱 빠진 할머니나 머리 허연 할아버지들이 와인잔을 기울이며 하는 얘기는, 고급스럽고 어려운 술이었던 와인을 친근하고 만만한 존재로 변화시킨다.
주민1) 그기 뭐이 대단허다고?
주민2) 요새 누가 아침부터 커피 묵는당가?
주민3) 순덕이 빨간 거이 좋아, 하얀 거이 좋아?
순덕) 아 갈증 날 적엔 하얀 게 좋제!
주민4) (밭에 새참을 이고 가며)참 드셔-
함께) 와인 들어간다, 쭉죽죽 쭉쭉!
주민5) 아따 와인은 탄닌 맛이랑께.
손자) (주렁주렁 매달린 와인병을 닦는 할아버지에게)할아버지 그거 다 알어?
할아버지) 몰라도 디야, 그냥 다 마시는 거여.
남편) (와인병의 레이블을 들여다 보며)이거 읽을 줄 알어? 미지니, 샹볼 뮈지니 와인…
아내) 샹, 몰라도 잘만 묵어!
주민들) 와인, 이즈, 노말!
자막) Wine is nomal.
주민6) 와인은 우리의 벗이여!
이마트_와인장터:다큐 와이너리 편_바이럴 영상_2018
이탈리아의 천재 과학자이자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와인 애호가였다고 한다. 그의 방대한 스케치와 메모가 담긴 노트인 코덱스 아틀란티쿠스(Codex Atlanticus)에는 와인 제조법, 와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와인을 잘 마시는 방법 그리고 바리크(Barrique)라 부르는 225리터 용량의 작은 포도주 저장용 참나무통에 관한 스케치가 남아 있다. 다빈치는 “와인도 식사에 포함되는 것이고 절제하며 조금씩 자주 마셔야 한다”고 쓴 메모를 남겼다. 거장의 생각이 나와 같으니, 저녁 반주를 위해 와인을 따르는 내 손길에 자신감이 넘친다.
다빈치의 와인 사랑은 와이너리를 작품의 대가로 받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1495년부터 3년간 밀라노의 산타마리아델레그라치에 성당 실내 벽에 ‘최후의 만찬’을 그린 뒤 성당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는 약 3,000평 정도 크기의 포도밭을 작품 대가로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빈치의 포도밭은 황폐해졌고, 2차 세계대전 도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망가졌다. 그러나 다빈치의 와이너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2015년 밀라노 대학의 과학자들이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다빈치가 길렀던 포도나무 품종을 밝혀낸 뒤, 원래의 다빈치 포도밭을 복원하여 그 포도나무를 심었다. 다빈치의 포도나무는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청포도의 한 종류인 ‘말바시아 디 칸디아 아로마티카’ 품종이었다. 그 후 다빈치의 와인 제조방식으로 와인을 만들어 그의 서거 500주년이 되던 2019년 화이트 와인 330병을 출시했다.
나는 밀라노에 있는 다빈치 포도원 박물관을 가고 싶은 곳 목록에 추가해 적었다.
소주를 처음 입술에 대었던 열 아홉 살 이후로 술과 나는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매일이다시피 학교 앞 백반집으로 출근해서 소주와 우정을 함께 마셨다. 주머니 사정이 좀 나아진 후로는 코냑을 홀짝이기도 했다. 청하가 시장에 처음 나왔을 때는 `세상에 이런 술도 있구나!' 감탄했고, 일본에 처음 갔을 때는 커다란 사케 통 하나를 업어오고 싶었다. 홍콩 반환기념으로 중국에서 만든 `백년고독'의 향기에 반해 고량주를 입에 대기 시작했고, IPA의 쌉싸름한 맛에 맥주를 쇼핑리스트에 추가했다.
20여 년 전부터는 와인이 나의 최애주가 되었다. ‘와인은 물속에 숨어 있는 불이다’, ‘신은 사람이 울 수 있도록 눈물을 만들었고, 웃을 수 있도록 와인을 만들었다’ 유명한 사람들이 남긴 와인에 대한 찬사이다. 병마다 맛과 향이 다르니 매번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설렌다. 비싸지 않은 와인을 세일 때 사서 고급진 와인셀러가 아닌 김치냉장고 아래칸에 넣어두고, 기쁘거나 슬플 때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는 날 따서 마신다. 아무렇지도 않은 저녁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으로 와인을 한 잔 따르면, 느긋한 평화가 온몸에 퍼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하루가 고맙고 애틋하다.
내가 와인을 마시는 날짜를 헤아리면 1년 365일의 절반 가까운 숫자가 된다. 켕기는 마음에 아침이면 와인을 끊는데 해가 지면 다시 금주 결심을 끊는다. 나만 자주 마시는 건 아니라는 합리화를 위해 구글링을 하다가 프랑스 어린이들과 다빈치 이야기 그리고 와이너리 광고를 보았다. 무릎을 치며 웃었고 다빈치를 본받겠다고 시키지도 않은 다짐을 했다.
‘절제하며 조금씩 자주’라는 다빈치의 원칙에 ‘되도록 늙어서까지 오래오래’라는 희망사항을 하나 덧붙인다. 와이너리(里)로 이사가는 상상은 유치하지만 고소한 와인 안주다.
https://www.youtube.com/watch?v=Kq8ZcWRbQkM
이마트_와인장터:다큐 와이너리 편_바이럴 영상_2018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 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 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 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 >(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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