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의 너도 올해의 나도 참 수고했어, 우리!” 2021.4

2023. 2. 2. 09:06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Good job, last year! This year,  too! We both did!” 

 

출퇴근길 지하철에 타면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마스크 때문에 안경에 김이 서리면 마스크를 벗지 않고 안경을 벗는다. 유니폼처럼 마스크를 맞춰 쓰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 어쩐지 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성숙하고 착한 공동체 의식을 지녔구나, 감탄이 들기도 한다. 작년 초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에 줄을 설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마스크를 쓰고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봄이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와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지고 벚꽃잎 흩날리는 4월까지 이럴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마스크를 벗고 살던 시절이 어땠는지 까마득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관에도 미술관에도 발걸음을 끊었다. 저녁 모임도 주말 나들이도 아주 드문 일이 되었다. 경사나 애사에도 달려가 손잡고 축하와 위로를 나누는 대신 계좌이체만 하고 마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연말이 될 때까지는 아마 마스크를 벗기 어려울 거라는데, 이렇게 1년이 또 지나면 세상은 얼마나 변해 있을까?
작년 12월 제작된 삼성카드의 애니메이션 영상은 팬데믹 이전과 이후의 변화한 생활을 신입사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비교해 보여주고 있다. 
2019년의 신입사원은 설레는 마음으로 새 구두를 신고 출근한다. 어색하게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서툴게 업무를 하고 저녁엔 선배들과 얼굴을 맞대고 회식을 한다. 반면 2020년의 신입사원은 재택근무를 주로 한다. 모니터 화면으로 인사를 하고 화면을 통해서 야단을 맞기도 한다. 아래는 잠옷 바지를 입고 화면에 보이는 웃옷만 정장을 입기도 한다. 회식도 각자 집의 책상 앞에서 언택트로 한다. 

 

     일구)   안녕? 작년의 너.
                2019년 오늘 드디어 첫 출근!
     자막)   #첫출근룩 #아싸 #기대반설렘반 #회사얼짱되겠어 
                #어쩜좋아  #반하겠어 #첫구두 #첫발걸음 #부탁해

 

     이공) 안녕? 올해의 나. 2020년 오늘 집으로 첫 출근!

     자막) #첫입사날아침 #맑은날 #기대가득 #첫다이어리 #첫펜 #필수템 #재택야근중 #밤새지마라 #열일중


영상은 긴 하루의 일을 끝낸 주인공들이 각자의 방에서 ‘참 수고했어, 우리!'라는 위로의 말로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잔잔하게 흐르는 배경음악은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노래다. 이야기하듯 나직하게 읊조리는 가사는 새삼 우리 모두 이만큼이나 힘들구나, 이렇게 애쓰고 있구나 실감하게 한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지친 사회 초년생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시리즈 영상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공) 작년의 너도 올해의 나도 참 수고했어, 우리!
함께) 잘하고 있어 너, 나. 수고했어 오늘도.

 

     일구)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일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첫 출근은 낯설고 어색해…
                모든 게 처음이야.
                회식도 업무의 연장.

 

     이공)   휴…
                네, 네 알겠습니다. 
                재택으로 몸은 편해도 역시 낯설고 어색해…
                혼이 나는 것도 낯설어. 
                언택트 회식은 재택의 연장.


     BGM 가사)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
                         힘든 일은 왜 한 번에 일어날까
                         나에게 실망한 하루 눈물이 보이기 싫어
                         의미 없이 밤하늘만 바라봐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빛이 있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삼성카드_19와 20사이/직장생활 편_바이럴 영상_2020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적는다. 하나를 끝내기 전에 다른 하나가 생겨난다. 대부분은 모니터 앞에 앉아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한 글자, 한 글자 빈칸을 메꾸어 나가야 하는 일이다. 일은 쌓이는데 눈은 자꾸 목록 아닌 창밖을 쳐다보고, 마음은 어디 먼 데를 그리워한다. 아니 그리운 곳은 어느 먼 곳이 아니라 다정한 포옹이다, 따뜻한 악수다. 웃는지 우는지 찡그리는지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마스크 없는 맨얼굴이고 뜨거운 숨결이다. 
아무리 그리워도 지금은 만날 수 없다. 그저 꾸역꾸역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한다. 처음 하는 일도 아닌데 낯설고 힘이 든다. 나이 탓이기도 하고 코비드19 바이러스 때문이기도 하다. 삼성카드의 사회 초년생들처럼 나도 하루 일과를 끝내고 붉은 술 한 잔을 따른다.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참 수고했어’라고 내 어깨를 내가 토닥이며 건배를 건넨다. 하루가 조용히 저문다.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 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 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 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 >(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