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해 소원은 날라리 소시민 2022.1

2023. 2. 15. 09:05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My New Year's wish is an outdoorsy petite bourgeoisie (ordinary citizen)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첫눈이었다. 얼마 만에 맞는 탐스러운 첫눈인지! 길이 미끄럽고, 차가 밀릴 것이라는 걱정보다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놀이터에 아이들이 나와 눈사람을 만들었다. 21세기의 아이들도 기원전부터 내렸던 눈을 맞으며 깔깔 호호 괜히 웃고 뛰었다.
우산을 쓰고 집을 나섰다. 넘어질까 뒤뚱뒤뚱 걸으면서도 마스크 속 입이 벙긋거렸다. 마침 내 첫 회사의 선후배들과 약속이 있었다. 금상첨화, 그 회사가 있던 공평동 근처 인사동이었다. 30여 년 전 신입사원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곳, 오랜만에 만난 우리 네 여인은 그때도 있었던 식당을 찾아 된장찌개를 먹었다. 그리고 인사동답게 전통찻집의 쌍화차를 마셨다. 
일행 중 막내는 미국에 살고 있다. 10년 전 키 크고 잘 생긴 남편이 세상을 뜬 후 혼자서 씩씩하게 다섯 아이를 키우고 있다. 늦둥이 열 살짜리 딸 위로 넷은 대학을 졸업하고 모두 착실히 제 앞가림을 하고 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후배의 이야기를 듣다가 아이들 사진을 청해서 보았다. 카톡을 찾아 보여주는데 아들의 카톡 아이디가 ‘부자아들♥착한의사와이프’였다.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이게 뭐야?”
“아 이거? 우리 아들 소원이 부자가 되는 거래. 그리고 와이프는 전문직이면서 아이도 같이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래서?”
“그 소원 이루어지라고 화살기도 하는 마음으로 내가 정한 아이디야.”
“하하 그럴 수도 있어?”
“나만 보는 내 카톡이니까 상대방 아이디를 내가 원하는 대로 고쳐서 적는 거야.”
“그럼 딸 아이디는?”
“딸 아이디는 ‘키180♥전문직멋진남자’야.”
“어머 야 신박하다, 나도 우리 애들 아이디 내가 바라는 대로 고쳐야겠다.”
“호호 난 효딩이라고 입력했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다시 써야지!”
모두 낄낄대며 후배의 아이디어에 무릎을 쳤다. 미국에서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런 아이디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짐작이 들었다. 말에는 힘이 있다, 하물며 어미가 자식을 위해 바치는 기도에는 더 큰 힘이 있지 않을까? 다섯 아이를 기른 후배를 비롯해 첫눈 오는 날의 일행은 모두 ‘엄마’였다. 아들과 딸을 업어 기른, 지금도 등에 ‘자식’이라는 짐을 업고 있는…. 
여기, 평생 자식을 ‘어부바’하고 있는 엄마의 기원을 닮은 광고 한 편이 있다.


Na)          조금 나아졌으면
                꿈이 이루어졌으면
                일이 잘 풀렸으면 
                내일도 웃었으면
                모두 건강했으면
                행운의 일곱 글자를 불러 보세요.
자막)       어부 어부 어부바
Na)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좋은 금융을 부르는 주문,


평생 어부바 신협.


정말 그럴 것 같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엄마 등에 업혀 있으면 좋은 일만 생길 것 같다. 엄마가 등 뒤로 돌린 손으로 엉덩이를 투덕이며 ‘네 꿈이 이루어질 거야’라고 말하면 뭐든지 다 그대로 될 것 같다. 

 

신협_기업PR:행운의 7글자 편_TVCM_2020


새해가 밝았다. 아득하게 느껴졌던 2022년이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2022년이 되면 안식년을 가지겠다고 몇 년 전 아이들에게 얘기했었다. 안식년은 재충전을 위해 생활비를 받으며 쉬는 것이니, 너희들이 엄마의 안식년 월급을 대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두 녀석 다 못 들은 척 대답은 안 하고 웃기만 하더라. 에휴… 내 아이들의 카톡 아이디를 ‘용돈송금효자’로 고치든지 무슨 수를 내야겠다. 사실 막상 2022년이 되니 안식년은 안 해도 좋으니 코로나 바이러스만 사라지면 좋겠다. 나도 남도 모두 건강하게 하루에 하나씩 작지만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22년 전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때 전파를 탄 신년 광고를 하나 찾아보았다. 다양한 보통 사람들이 새해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의 소원이 지금보다 소박하고 유쾌하게 느껴지는 건 나이 탓일까? 

자막)        새천년 새희망
남1)         (배영철 29세 회사원)장가 가서 손주 안겨 드릴게요!
여1)         (노안나 35세 주부)애기 아빠 사업,
남2)         (임혁 38세 약사)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남3)         (최찬혁 25세 종업원)2억만 벌었으면 좋겠어요. 
여2)         (방연경 22세 대학생)장학금 한번 받고 싶어요.
남4)         (왕종만 61세)손주 놈들 용돈 주고 싶지.
여아)        (유선형 6살)과자 안 사먹고요.
남아)        (권홍모 5살)저금해요.
여3)         (김종금 35세 주부)여보 화이팅!
이계진)    새천년 새희망 모두 이루십시오.
                새마을 금고가 있습니다.
자막)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은행-
                새마을 금고

 

새마을금고_기업PR_TVCM_2000


새해의 희망 말고 신년의 결심을 보여주는 광고도 있다. 그런데 새해 맞이 결심이라는 게 아주 평범하다. 서툰 꼬마 태권도 선수의 결심은 ‘스포츠맨이 되자’이고, 전철을 기다리며 춤추는 아이들의 결심은 ‘중2가 되자’이다. 재미있고 유쾌하다. 결심이 꼭 이루어질 것처럼 만만해 보인다. 

자막) 2017
         시인이 되자
         아침형 인간이 되자
         혹은 올빼미가 되자
         프로 방콕러가 되자
         중2가 되자
         탐험가가 되자
         스포츠맨이 되자
         슈퍼 대디가 되자
         사랑꾼이 되자
         진짜 아재가 되자
         병아리가 되자
         2017년의 나 갤럭시와 함께

 

삼성 갤럭시_새해 편_TVCM_2016


해가 바뀌어도 절대 새해 결심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한지 오래다. 결심하고 지키지 못해서 실망하느니 아예 안 하는 게 낫다는 불량한 생각 탓이다. 딱히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진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광고를 보니 용기가 난다. 하기 쉬운 결심 하나를 해볼까 솔깃해진다. 매일 하늘 쳐다보기, 엄마에게 자주 전화하기, 하루에 5페이지 책 읽기, 한 시간 일찍 일어나기, 12시 전에 침대에 눕기, 남 얘기 안 하기, 가끔 멍때리기… 이런 것이라면 어느 것을 골라도 많이 어렵진 않을 것 같다.
거창한 결심은 나보다 훨씬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맡기자. 새해에 나는 그저 쉬운 결심을 지키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조용하고 느린 매일을 사는 ‘날라리 소시민’이 되기로 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cMGlkBhKNJo

신협_기업PR:행운의 7글자 편_TVCM_2020_유튜브 링크

https://play.tvcf.co.kr/14007

새마을금고_기업PR_TVCM_2000_tvcf 링크

https://play.tvcf.co.kr/621325

삼성 갤럭시_새해 편_TVCM_2016_ tvcf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 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 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 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 >(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