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마을영화와 드라마의 마을, 우각로(牛角路) 문화마을 2021.12

2023. 2. 14. 09:12아티클 | Article/포토에세이 | Photo Essay

Disappearing village Ugakro Culture Village, a village of movies and dramas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억 

도원역 2번 출구로 나와 동신슈퍼를 거쳐 가파른 언덕길을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우각로 문화마을(숭의1·3동).
우각로는 휘어진 소의 뿔처럼 생겼다 해서 지어진 이름으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1·2·3동 지역을 통행하는 주도로와 주택가 골목을 관통하며 주변의 우각로 번지길들과 연결된 전형적인 미로형 도로다. 우각로 골목 사이사이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작은 골목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이곳은 1920년대 중반 신작로가 생겨나기 전까지 개항장에서 서울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과 지방에서 올라와 공장 일을 하던 직원들이 모여 살았고 마을의 상징인 전도관이 들어선 이후에는 교회 신도들이 이주해와서 살기도 했던 마을이다. 
여러 번의 재개발 시도가 무산되어 재생 사업 등으로 문화마을로 변화되고 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의 배경이 되기도 한 마을이었지만, 재개발 추진 15년 만에 69,000제곱미터에 1,705가구의 아파트 관리처분계획을 인가받았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이주는 거의 완료되어 내년부터 철거 후 대림산업에서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아무도 없는 마을을 걸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한 거리와 좁은 골목길, 그들이 살았던 공간들, 오랜 시간 영업했던 흔적이 남은 가게들의 모습 속에서 기억으로 남겨진 그들의 삶의 흔적들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엿보게 한다. 

 

 

우각로마을

 

레트로 감성(retro sensitivity)을 자극하는 색감의 마을
2004년부터 시작된 재개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면서 주민들이 떠나가며 생겨난 빈집과 공터가 도시의 흉물이 되어갈 때, 2011년부터 남은 주민과 젊은 지역 예술가들이 힘을 합쳐 공방과 목공소, 게스트하우스, 작은 도서관, 마을극장 등을 만들고 도예공방, 체험활동, 문화예술교육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전개하며 회색빛의 낡은 모습을 탈피한 화려한 색깔의 외벽 도색과 스토리가 있는 골목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런 변화로 독특한 문화마을로 소개되고, 다시 마을은 또 다른 모습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미디어를 통한 소개로 방문객들이 늘고 다양한 상업적 시설이 들어와 인천의 명소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가파른 언덕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 자리한 1970~1980년대의 풍경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레트로 감성을 자극했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색 바랜 페인팅을 통해 마을의 애환이 느껴진다.

 

도심의 섬 _ 사라지는 마을은 도심의 섬으로 살다가 소멸하고, 그곳은 또 다른 섬을 만든다.  

영화와 드라마의 마을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그대를 사랑합니다>, 드라마 <보이스>, <미세스 캅>, <나의 아저씨>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된 마을의 경사진 언덕길과 동네 골목과 공간들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면 이야기 속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오름길
마을의 경사진 길들을 따라 올라가면 수많은 시간 가쁜 숨을 내쉬며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성채(城砦)
우각로 문화마을 위에는 성채와 같은 거대한 흰색의 건물이 서 있다. 마을이 그 건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듯한 모습이다. ‘전도관’이라 불리는 이단 종교의 건물이다. 1957년 10월에 지어진 전도관은 한때 인천의 랜드마크였다. 원래는 선교사이자 의사였던, 초대 주한 미국 공사를 지낸 알렌이 1890년에 지은 여름 별장이 있었던 곳이었다. 1978년 전도관이 떠나고 1987년에 이단 종교 예수중심교회가 들어왔다가 떠난 이곳은 오랫동안 낡고 비어있었지만, 마을의 그 어디에서도 보이는 그 형체만으로도 여전히 마을의 상징이 되고 있었다.

우각로(牛角路)     서수남

지퍼를 내리면
맑은 노동을 기원하는 냇물이
신축성 좋은 걸음을 옮긴다

날렵한 손목에 얹힌 테스트 문항
동그라미 하나를 못 넘어서
습관까지 내려놓은 채
돌베개를 베고 누운 표백제 같은 여자
꽃잎을 띄운 물에
봄밤 같은 긴 금을 그어가며 길이를 가늠했을까

어느 하루도 잘라내지 못한 시간의 얼룩이 
뜰채에 낚인 나비가 되어
후진 기어를 더듬을 때
이상하지, 빌려 읽은 책은
통장에 잠시 머물렀다 빠져나간 월급같이
날아가 버렸다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