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 댕댕이와 함께한 자가격리 일주일 2022.5

2023. 2. 19. 09:04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One-week self-quarantine with cats and dogs

 

뱅글뱅글 돌아가는 빌딩 회전문에서 50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마주친다. 각자 다른 칸에 들어가 있어서 마주 보진 않지만 서로를 알아보는 표정이다. 아주 오래전 헤어진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빌딩 밖으로 나간 남자는 승용차를 타고 떠나고, 빌딩 안에 남은 여자는 아련한 표정으로 남자를 돌아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자의 혼잣말.   

          “참 많이 변한 당신… 멋지게 사셨군요.”

2005년 전파를 탄 현대자동차 그랜저의 광고이다. 비싼 그랜저를 타는 것이 잘 살았다는 증거인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광고다. 2009년 그랜저는 한발 더 나아가 물질만능주의를 표현한 광고 사례로 비난받기도 했던 카피를 공중파에 실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오늘을 말해줍니다.


그랜저_TVCM_2009


시기가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여서 과시성 소비를 부추긴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공감은 안 가는데 세상 돌아가는 인심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더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광고였다. 
그런데 근래의 그랜저 광고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성공’을 이야기하고 있다. ‘함께하는 리더가 되는 것이 곧 이 시대의 새로운 성공’이라고 말하며 따뜻하고 인간적인 리더상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1회용기 사용을 피하기 위해 텀블러는 물론 조각 케이크 닮을 그릇까지 가지고 다니는 상무님, 부하의 말을 끈기 있게 들어주는 상사, ‘착한 사람’이 되는 게 꿈이라는 아들의 말에 정지선을 반듯하게 지키는 아빠 등이 2021년 그랜저 광고의 주인공들이다. 그중 한 편을 들여다보자. 
결재를 받으러 온 부하 직원이 상사의 휴대전화 화면을 보고 아이에게 강아지 동생이 생겼냐고 묻는다. 상사의 대답은 어린 강아지를 새로 데려온 것이 아니라, 추운 겨울 길에서 헤매는 늙은 유기견을 입양해 키우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린 강아지 키우는 것보다 손이 많이 가는 늙은 개를 돌보는 임원의 행동은 그랜저가 지향하는 단호하지만 따뜻한 리더의 모습을 상징하는 장치이다. 

사원)          소연이 동생 생겼네요?
임원)          동생 아니고 언니.
사원)          (강아지 사진을 다시 보며)헉!
임원)          엄청 추운 날이었는데 집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더라고.
사원)          근데 나이 많은 강아지들 은근 챙길 거 많다고 하던데…
임원)          그렇다고 그냥 둬?
                  힘들어도 챙겨야지.
자막)          내비게이션 연동, 터널 진입 시 자동 외기 차단
                  2020 성공에 관하여
                  GRANDEUR
                  HYUNDAI


“엄마, 두 달만 집에 고양이 데리고 있을게요. 아는 형이 키우던 건데 알레르기 때문에 도저히 계속 키울 수가 없다고 해서 제가 받았어요. 저 곧 자취할 방 얻을 테니 그때까지만 참아주세요.”
둘째 아드님이 먼치킨이라는 품종의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고양이를 따라 우주선처럼 생긴 전동 배변통과 커다란 캣타워, 다양한 고양이 장난감이 따라왔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굳이 따지면 막연하게 무서워했다. 둘째가 고양이 폭탄을 던지기 전까지는 고양이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두 달만 참으라던 아드님은 고양이를 남겨두고 혼자만 집을 떠났다.  
고양이가 집에 온 지 두어 달 후. 퇴근해 현관문을 여는데 막 닫히는 큰 아드님의 방문 사이로 이상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시커먼 강아지였다. 기가 막혀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고양이는 되고 강아지는 왜 안 돼요?”
“최소한 데려오기 전에 허락은 받았어야 하는 거 아냐?”
“빨리 데려가지 않으면 그냥 안락사 시킨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도대체 엄마를 뭘로 생각하면 이렇게 네 멋대로 굴어?”
“엄마 이 눈을 보고도 화를 낼 수 있어요?”
큰 아들은 보더콜리의 까맣고 순한 눈을 내 얼굴에 들이대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훌쩍 태평양 건너 출장을 떠났다. 
두 아드님이 각자의 폭탄을 던진 채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나는 오미크론의 공격을 받아 자가격리하는 신세가 되었다. 혼자 격리되었다면 재택근무를 즐거워하며 병마(?)와 싸울 수 있었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냥이는 쉬지 않고 종일 울었다. 댕댕이는 하루에 서너 번 응가와 쉬를 하고, 잠깐 방심하면 벽지에 더해 문틀까지 물어뜯었다. 하필 털갈이 중이어서 배설물을 치우고 기진맥진해 겨우 숨을 좀 돌리려고 하면 온몸을 흔드는 털뿌리기 신공으로 집안 구석구석에 털눈(?)을 날렸다. 내 새끼들 다 키워 이제 좀 편해지려나 했는데 졸지에 강쥐와 냥이의 노예로 전락한 신세가 되었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마음 속의 다른 내가 충동질했다. 하지만 엄마 평생의 ‘슈퍼 갑’인 아드님들에게는 감히 투덜댈 수도 없는 노릇! 겨우 애들이 보지 않는 이 칼럼에 부당함을 고자질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유기견을 입양해 돌보는 그랜저 광고가 눈에 띄었다. 
‘그렇다고 그냥 둬? 힘들어도 챙겨야지.’
이 카피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주 간단한 두 줄이 지금의 내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나와 인연을 맺은 생명들이니 힘들어도 그냥 챙길 수밖에 없다고 체념한 나의 마음을…
피할 수 없으니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격리가 끝나는 날 나는 동네 동물병원에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예약했다. 우리 고양이는 만날 수 없는 짝을 찾아 목놓아 우는 괴로움을 더 이상 겪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애꿎게 같이 갇혀 있던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 봄볕 속을 걸었다. 일주일 만에 자유롭게 집밖을 돌아다니는 기쁨을 강아지와 함께 만끽했다.

 

 

 

 

 

https://play.tvcf.co.kr/9762

그랜저_TVCM_2005_tvcf링크

 

https://play.tvcf.co.kr/32202

그랜저_TVCM_2009_tvcf링크

 

https://play.tvcf.co.kr/813912

그랜저_TVCM: 2021 성공에 관하여 유기견 입양편_2020_tvcf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 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 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 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 >(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