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장소 지하 벙커의 작은 창 2018.06

2022. 12. 2. 18:05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A Small Window in an Underground Bunker

 

우리를 보호해주기로 한 반군조직의 차량에 갈아탔다. 트렁크에는 온갖 총기류가 그득했 고, 운전석의 좌우에는 소총이 놓여있어 언제든 빼어들 수 있었다. 글로브박스에는 수류 탄이 들어있는데 차가 움직일 때마다 굴러다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잠시라도 지체하 면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계속 다급하게 움직여야 했다.

구호 활동을 위해 시리아에 들어왔던 두 명의 이탈리아 여성들이 바로 어제 납치됐다고 했다. 대규모의 교전이 벌어지고 보호세력은 대부분 사살된 후, 외국인만 납치해 간다고 했다. 내전 중인 시리아에 들어오는 외국인은 IS에 가담하기 위해 오는 이들이 대다수이 고, 그밖의 소수는 사회활동가 아니면 미디어 쪽 사람들이다. 그 어떤 쪽이 됐든 여러모로 활용할 여지가 많고, 따라서 그들 입장에서는 모두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보호를 맡은 반군세력은 우리 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시간이 이틀 뿐이라고 몇 번이 나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그 한계 시간이 지나면, IS 혹은 또다른 무장세력들에게 우리의 존재가 드러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들이 어떤 행동을 개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동하는 차량도 수시로 교체되었고, 목적지도 정확하게 지정하지 않고 이동했다. 한 장 소에서 머무는 시간은 최소한으로 줄여야만 했다. 타겟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첫날밤, 숙소로 정해진 곳은 짓다 만 건물의 지하 공간이었다. 앞으로 그 지역 사람들의 대피소이자 아이들의 임시학교가 될 곳이라 했다. 폭발이나 총격 그리고 납치의 위험으 로부터 그나마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촬영팀은 모두 네 명. 연출자인 나, 카메라맨, 그리고 조연출과 시리아인 출연자로 이루어 져 있었다. 다들 입으로는 괜찮다 말했지만 얼굴에 가득차 있는 불안감은 숨길 수 없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다시 짐을 싸서 어딘지 모르는 장소로 다시 이동을 해야 했다. 우리의 정체와 위치가 드러나 인질로 잡히게 되면, 그 이후는 오직 끔찍한 일들만 남아 있 을 뿐이다. 그 중에서 그나마 제일 나은 정도라봤자 인질 협상을 통해 풀려나는 것인데, 외국인 한명의 몸값이 평균 칠팔십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모두 합해 수백억의 비용 지불 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마는, 만약에 풀려난다 해도 한국 땅에서 고개 들고 살아가기는 힘들 것이었다. 몸값으로 거액을 벌어들이는 방법 말고도, IS 쪽에서 활용할 여지는 많다 고 했다. 그들의 선전용 비디오에 등장해 목이 잘려나갈 수도 있고, 아니면 폭약이 장치된 재킷을 입고 자살폭탄으로 이용될 수도 있었다. 천장에 맞닿은 작은 창문을 보며 언제든 폭발물이나 파편 또는 총탄이 들이닥칠 수 있다 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경우, 어떤 자리가 가장 안전할지 각자 이런 저런 가정을 해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개개인의 안전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과연 무얼 촬영하고 어떤 내용을 담을 수 있 는지도 고민해야만 했다. 생존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불안감 그리고 프로로서 해야만 할 일에 대한 의무감이 커다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독히 더운 날씨 탓에 자꾸만 뜨거워지는 몸과 수많은 불안들이 뒤엉킨 채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 어둡던 지하 공간이 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모습을 보았 다. 그 어떤 불안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두꺼운 철문을 열고 불안과 혼란이 뒤섞인 세상으로 나가기 전까지 아무 일도 없을 것 같 다는 위안이 방 안 가득히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도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 때문이었 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미완성 건물의 지하에, 가득 햇빛이 차오르고 있었다.

 

* 이 글은 2014년에 방송된 KBS 파노라마 ‘시리아, 압둘 와합의 귀향’의 취재를 위해 시리아 에 방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글. 연왕모 Yeon Wangmo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