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5. 09:08ㆍ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Sarangbang and Cave painting
곰방대 쩐 내와 땀 냄새가 진동하고 천장에는 쥐오줌 얼룩이 번져가는 방. 윗목에 볏가마 가 쌓여있고 시절에 따라 수확한 곡식이 먼저 들어와 며칠씩 묵어가는 곳, 행랑채 대문에 딸린 방이기도 하고 광이기도 하던 곳, 문이 집 안과 집 밖으로도 나 있어 대문을 통하지 않고도 곧바로 외부로 이어지는 방. 마음먹기에 따라 방주인이 가족의 일원이 되기도 하 고 때로는 슬쩍 뒤로 빠져도 되는 그런 자유로운 방, 집안으로 난 문을 열면 앞마당이고 바로 안채인데 나는 열일곱 살 되던 해까지 안방에서 5인 남녀 가족공동체 일원으로 온갖 불편한 진실들을 다 끌어안고 뒹굴다가 사랑방으로 독립했다. 방주인이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여름은 무덥고 겨울이면 밖의 온도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그게 무슨 방일까마는, 나는 그 곳에서 최초의 단독자인 나와 조우했다. 열일곱 살, 몸은 튼튼하다 못해 터질 듯 부풀어 올랐고 내면은 검은 털이 돋기 시작한 험한 짐승처럼 어둑했다. 힘이 넘쳐 그르치는 일들 이 많았으나 아버지는 그 힘을 들판으로 돌려 내 힘이 초록으로 번져가게 하는 법을 가르 쳤다. 그리고 사랑방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 속에선 어떤 알 수 없는 언어들이 들끓 었는데, 그 넘치는 문자를 나는 노트와 벽과 방바닥에 수없이 덧대어 휘갈겨 썼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깥문으로 드는 창호햇살에 지난밤의 문자들이 드러났지만 나는 그것을 곱씹 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나도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것은 마치 오랜 훗날 몇 세기 이 후에 언어체계가 다른 문학이라는 발견자에 의해 발굴 되어야하는 상징처럼 난해했다.
가끔 빗방울이 파초를 두드리는 소리처럼 처마에 잇대어 달아낸 함석 차양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자다 말고 일어나 맛나게 받아먹었다. 한밤중 바깥문을 열고 벽에 기대 앉아 바 라보는 사각형의 문틀에 사선으로 꽉 차서 내리는 비의 각도는 서러웠다. 나는 그때 비를 피해 동굴에 호젓하게 앉아 토기를 빚다 말고 동굴 밖 사선으로 내리는 비를 넋 놓고다보는 선사시대 사람 같은 심정이었을까, 문득 밀려오는 어떤 막막한 그리움이나 외로 움에 무심코 물고기 뼈로 그어 내린 무늬, 그냥 주룩주룩 수직으로 내리는 비가 아니라, 바람에 스치며 기우는 비의 각도, 어쩌면 사람이 그린 최초의 감정선, 나는 지금도 빗살무 늬토기의 빗살문양을 서러움으로 읽는다. 나는 그때 그렇게 누렇게 바랜 꽃무늬 벽지 위 에 그 서러운 빗살무늬를 수없이 새겨 넣었다. 마치 선사시대 사람이 최초로 남긴 동굴벽 화처럼.
나만의 공간인 사랑방은 갈수록 은밀했다. 집 안으로 난 문은 늘 닫힌 채 문고리가 걸려 있었다. 내 몸은 일찍이 어릴 때부터 노동으로 만들어져서 친구들보다 훨씬 먼저 아이의 비릿한 동정을 지나 설익은 어른의 입구에 다다랐고 늘 치기 어린 기운이 넘쳐 늘 미열에 시달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많이 아팠던 것 같다. 더 정확하게는 그 미열이 몸에 서 기인하는 것인지 마음에서 발화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늘 집 안보다 집 밖을 동경했다. 밖의 작은 기척에도 창호지 뚫린 구멍으로 밖을 내다봤다. 밤늦게 술에 취해 비 틀거리며 지나가는 이웃동네 사람, 뜰 앞에서 몸을 잔뜩 움츠리고 뭔가 오래 망설이는 생 쥐를 먹이로 길들여 같이 놀기도 하고 더러 오갈 데 없는 거지 일가족들을 위해 뜰 앞에 짚단을 깔아주는 날도 있었다. 그들이 밤새 속삭이는 소리는 칼바람 부는 벼랑 끝에 내몰 린 짐승처럼 비장했으나 새벽녘이면 체념처럼 나직해졌다. 얼어 죽지는 않을까, 멀리 병 점역에서 낮게 깔려 들려오는 기적소리가 그들의 한숨소리를 싣고 남녘을 향해 달리는 밤이었다.
나의 문학은 일찍이 문자를 모를 때부터 어린 내 가슴을 향해 밀려오는 어떤 뜨거움 같은 것이었다. 그 뒤죽박죽의 감정을 최초로 벽화의 형태로 새긴 곳, 일찍이 나를 키운 건 산 과 들과 냇물도 있었거니와 열악한 집안 환경으로 인한 어린 노동과 돌아가신 누님이 남 긴 몇 권의 난해한 시집과 치기와 그리고 그런 것들을 품고 혼자 들어앉은 사랑방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내 안의 음습한 욕망의 습지를 걷다가 문득 개활지를 만나 뛰기도 하고 다 시 문득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광활한 시공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곤 하였다. 꿈을 깨고 현실로 돌아오면 생쥐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색연필을 갉아 먹던 방, 한밤에 오지 않는 비 를 기다리던 방, 분기탱천한 몸을 어쩌지 못해 얼른 몸을 다 써버리고 싶었던 방, 나중에 는 그런 몸조차 어디 내다버리고 싶었던, 그 방에서 늘 밖을 동경하고 먼 곳을 동경하던 나는 비로소 스무 살 되던 해에 집을 떠나 내 안의 그 먼 곳에 안착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의 문학은 문자 이전의 동굴 벽에 그린 그림처럼 사랑방 벽에 수없이 덧쓴 의 미 이전의 기호에 대한 발견이자 재구성이다.
글. 이덕규 Lee, Deokkyu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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