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1. 14:00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reating architecture, environment, and the future ③ The romance of Paris begins at a street cafe
제인 제이콥스의 책을 읽고, 얀 겔의 다큐를 보면 인간을 관찰해야 건축과 도시에 대한 이해가 커짐을 깨닫게 된다. 그런 생각을 갖고 파리를 기억해 보면 아주 로맨틱하고 예쁜 도시라는 이미지가 중심을 차지한다.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이터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도 거리를 향해 놓인 카페가 큰 역할을 한다.<사진 1> 그렇다면 왜 이들은 먼지 날리는 거리에 의자를 두고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실까? 비단 파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이런 풍경을 많이 볼 수 있다. 관찰해 보면 이들은 단지 음료를 마시려는 목적이 아니라, 누군가와 대화하고 교제하는 과정으로 음료를 마시는 것이고, 그것이 커피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집이 아니고 거리의 카페일까?
막연한 추론으로는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면서도 타인과 교류를 위한 공간으로 카페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한다. 왜 집이 아닌 외부공간에서 사교의 공간을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카페에서 커피나 음료를 마시면서 교류를 하는데, 이런 공간은 주거공간 내에도 충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밖에 이런 공간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과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된 후에 자신의 공간, 영역으로 초대한다. 집, 즉 주거는 지극히 사적 영역이다. 물론 집이 커진다면 사적 영역도 어느 정도 단계별로 구분할 수 있다. 귀족이나 부유한 계층으로 갈수록 집이 커지면서 특정 공간을 이런 사교적 공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서구의 맨션이라 불리는 상류층의 공간을 보면 호텔 연회장이 따로 없을 정도로 거대한 사교적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사교가 중요한 정치와 비즈니스의 과정이기 때문에 자기의 영역 안에 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공간을 자신의 집에 만든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양한 기능별, 역할별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중산층이나 서민들은 둘 중 하나만 가능하다. 지극히 사적인 자기 집을 노출하든가, 외부에서 만나든가. 당연히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사적 공간보다는 집 바깥에서 서로의 접점 공간을 찾게 되고, 카페는 그 접점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이런 측면에서 보면 건축의 여러 가지 기능 공간 중에 집이 아닌 곳 중 카페는 온전히 사교를 위한 곳임을 알 수 있다. 비단 서구인들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집도 절도, 회사도 술집도 아닌, 건전하게 타인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카페의 등장은 전통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던 시절 아시아 대부분의 도시에 등장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고리타분한 다방이든 세련된 카페든 말이다. 물론 퇴폐적 분위기로 술과 동석하는 이성이 존재하는 곳 말고…. 이런 공간의 특성 덕에 카페는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존재했다. 유명한 프랑스의 사르트르와 보브아르가 카페에서 토론하고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카페는 단지 대화하고 교류하는 것 이상으로, 문화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지난 테러로 몸살을 앓았을 때도 프랑스에서는 카페의 존재를 드러내는 ‘#Je Suis En Terrasse(#나는 테라스에 있다)’는 SNS 캠페인이 있었을까? 우리나라도 시인 이상이 카페(물론 이름은 다방 제비였지만)를 만들어 수많은 당대의 문인들과 교류했다. 예술가들이 대화하고 토론하는 만남의 장소였다. 그만큼 카페는 독특한 성격의 공간이다.
사교를 위한 공간, 사교적 소비공간, 도시의 장치가 되다
카페에 집중하는 이유는 단순한 기능 이상으로 도시에서 장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타인과 교류하고 만나는, 이른바 사교를 위한 공간으로 존재한다. 인간의 생리적 기능이 목적이지도 않고, 생존의 목적도 아니다. 오롯이 인간의 사회성을 기반으로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공간이다. 흥미롭다.
파리의 카페가 거리에 등장한 또 다른 배경으로는 좁아터진 집이 원인일 수도 있다. 도시의 역사를 공부해 보면, 일찍이 도시화가 진행된 파리는 그야말로 계급 공간의 치열한 실증적 증명임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서민이라 불리는, 시골에서 상경한 하층 계급의 공간은 난방도 안 되고, 가장 힘들게 올라가는 지붕 꼭대기에 있던가 아니면 지하의 부엌데기 공간이었다. 산업화된 가난한 월급쟁이들의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한숨의 여유를 가질 만한 공간이 집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던 것이다. 파리만 그럴까? 산업화된 대부분의 도시들이 다 그렇다. 뉴욕도 마찬가지다. 서울? 당연하다.
서울은 이들 중에서도 더욱 강렬한 자본주의와 만나 오랫동안 새로운 사교 공간으로 카페를 등장시켜 왔다. 지금의 586 세대가 돌을 던지던 독재시대에, 기성세대들이 한숨을 내쉬던 젊은이들의 공간이 카페였다. 커다란 소파와 개방적인 분위기의 공간들, 영화에나 나옴직한 매력적인 조명과 인테리어. 1980년대 아파트나 주택들을 상기해 보면 보통의 젊은이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사치의 공간이 바로 카페였다. 카페에서 뭘 하는가?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그냥 지인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공간일 뿐이다. 파리의 집이 해결해 주지 못한 사교의 공간을 카페가 담당한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대가 바뀌면서 브랜드의 공간으로 대체되었지만, 이젠 한 술 더 떠 사무실과 도서관의 기능까지 확보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도시의 어트랙션 역할까지 한다. 2010년 당시 KT 전화국 전환에 대한 자문을 하면서 조사 차 인터뷰를 진행했던 충남 서산에서의 기억이 아주 강렬하다. 유아 자녀를 둔 주부의 한 마디는 상업공간 이상으로서의 스타벅스의 위상을 깨닫게 했다. “스타벅스의 커피 한 잔은 저처럼 시골 주부에겐 휴가 이상의 사치스러운 만족감을 줍니다. 마치 워킹우먼이 된 듯하고, 서울 도시에 있는 느낌입니다.” 브랜드 이미지 하나가 이런 만족감을 준다니…. 이를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한, 이해할 만한 일이다.
코로나 펜데믹 시점부터 최근까지 우리나라 교외지역의 메가카페(Mega Cafe)열풍을 보면 기이할 정도다. 더구나 미술관이나 어떤 건축도 만들어내지 못했던 건축 자체의 다양한 형태적 시도와 실험들이 메가카페로 현실화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상황이다. 하지만 파리의 도시에 있는 카페와 좁디좁은 도지주거, 그리고 빈틈없이 짜인 계획도시로 구성된 우리나라 신도시들의 작고 비좁은 아파트들과 교외의 메가카페들을 연상해 본다면 두 도시의 공통된 내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일상의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심리적 대안 공간으로 이런 카페가 선택되는 것은 아닐까? 건축과 도시의 주류에서 다루지 않았던 상업공간이 갖는, 특히 카페가 갖는 이런 사회적 심리적 역할에 충분히 주목해야 한다.<사진 2>
리처드 로저스의 책에서도 카페가 갖는 도시적 기능을 언급하고 있다. 카페가 있는 가로는 활성화되고, 야간의 치안이 좋아진다. 얀 겔은 이런 카페의 기능에 주목해서 호주 멜버른 다운타운에 오픈 카페를 시정책으로 제안했고, 구도심 활성화에 엄청난 자극제가 되었다. 분명히, 카페는 단순한 상업적 공간 이상의 다양한 의미가 존재한다.
사교적 공간, 그리고 도시에서 놀이의 가치와 의미
카페의 상업적 이미지가 강해서 설명이 불편하다면, 공공의 시설로 도시에서의 사교 공간이자 놀이의 공간을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왜냐면 놀이 역시 사교적 기능에 존재하는 또 다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맥락에서 ‘놀이 공간’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레크리에이션 활동이나 놀이를 위해 특별히 설계되고 지정된 지역 또는 환경을 의미한다. 놀이 공간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여가, 신체 활동과 사회적 상호 작용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카페는 당연하고, 아예 도심 놀이 공간을 만들어서 즐겁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 니스의 도심 한가운데 보행광장(?)에는 거대한 각종 시설들이 있다.<사진 3> 다양한 모양의 분수대와 흥미진진한 놀이시설들은 어린아이들을 위한 장치이며 시설들이지만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장치들이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이런 시설들은 일만 하는 나라에서 온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한마디로 종로 한복판, 테헤란로 한 복판에 온갖 놀이 장치들이 있는 셈이니 말이다. 뉴욕 맨해튼의 도심 틈바구니마다 존재하는 포켓 공원들과 시설들 역시 마찬가지다. 독일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한다는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경우는 일광욕 시설 등 수많은 휴식과 놀이의 인프라 디자인이 존재한다. 만약 물이 흐르는 천변이라면 당연히 수변 공간을 따라 다양한 장치들과 시설들을 만들고 있다. 딱히 어떤 목적과 기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라고 만든 각종 유희적 시설들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도시에는 생활의 재충전, 또는 생활의 쾌적함을 위한 감성적이고 유희적 공간 구성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요소들이 도시에서 이런 기능을 담당하고 있을까? 우선 소득과 유휴 시간이 증가하면 최우선으로 요구하는 것이 공원이나 간단한 레크리에이션 공간들이다. 종류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공원 또는 정원 : 녹지 공간, 나무, 잔디가 있는 공공장소이며 종종 놀이터, 스포츠 시설, 산책로 및 피크닉 장소. 공원과 정원은 조깅, 자전거 타기, 팀 스포츠, 어린이 놀이와 같은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는 곳.<사진 4>
놀이터 : 어린이 놀이를 위해 특별히 설계된 구조물과 장비가 있는 지정된 구역. 놀이터에는 종종 그네, 미끄럼틀, 등반 구조물, 샌드박스 및 신체 활동과 상상 놀이를 촉진하는 기타 상호 작용 기능 포함.
운동장 및 코트 : 축구, 농구, 테니스, 야구, 배구와 같은 특정 스포츠 및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위해 설계된 야외 공간.
스케이트 공원 : 경사로, 레일 및 스케이트보드, 인라인 스케이트 및 BMX 자전거 타기를 위해 설계된 기타 기능을 갖춘 특수 구역.
광장 또는 공공 광장 : 종종 사회적 상호 작용과 이벤트 및 공연을 위한 모임 장소 역할을 하는 도시 지역 내의 열린 공간.
물놀이 공간 : 일부 도시에는 더운 날씨에 아이들이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재미있고 상호작용적인 방법을 제공하는 물놀이 공원이나 스플래시 패드.
놀이 공간의 구체적인 디자인과 이용 가능성은 도시 계획, 예산, 지역사회의 필요와 같은 요인에 따라 도시마다 다를 수 있다. 도시는 거주자의 관심과 선호도에 맞는 다양한 놀이 공간을 만들고 신체 활동, 사회적 참여 및 전반적인 웰빙을 촉진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사교적 공간의 역할들
도시의 사교적 활동 공간은 거주자 간의 사회적 상호 작용, 참여 또는 커뮤니티 구축을 촉진하도록 설계된 장소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연결되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모임 장소 역할을 한다. 도시의 사회적 공간과 관련된 기능과 의미는 다양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몇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커뮤니티 구축 : 사교적 공간은 주민들이 상호 작용하고 커뮤니티 감각을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그들은 사회적 결속을 장려하고 도시에 살고 있는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 사이에서 소속감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사회적 상호 작용 : 이 공간은 사교 활동, 새로운 사람 만나기, 우정 형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은 대화, 아이디어 교환 또는 문화적 이해를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해 개인 간의 사회적 연결을 촉진한다.
사교적인 공간은 종종 공원, 공공 광장 또는 커뮤니티 센터와 같은 레크리에이션 시설을 제공한다. 여가 활동, 스포츠, 피크닉 또는 단순히 야외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여 거주자의 전반적인 웰빙과 삶의 질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사교적인 공간은 문화 행사, 축제, 공연 및 전시회를 위한 장소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들은 지역의 재능, 전통 및 예술적 표현을 보여주고 문화적 다양성을 촉진하며 도시 구조를 풍요롭게 하기 위한 플랫폼을 형성하기도 한다.<사진 5>
특히 사교적인 공간은 종종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주변 지역의 경제 활동을 자극하며 경제적 활력을 형성한다. 레스토랑, 카페, 상점 또는 시장의 중심지가 되어 지역 비즈니스를 위한 기회를 창출하고 도시의 경제적 활력에 기여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도시의 사교적 공간은 사회적 상호 작용을 촉진하고 공동체 의식을 조성하며 도시 지역의 전반적인 거주성을 향상시키는 데 필수적이다. 도시의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구조에 기여하여 사람들이 함께 모여 도시 환경을 형성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런 공간들은 여러 가지 형식으로 구성되는데, 야외 카페 및 레스토랑(보도 카페, 옥상 바, 야외 식사 공간)을 통해 사람들을 주변 도시 환경에 몰입하게 한다. 이러한 공간은 종종 사회화, 사람 관찰 혹은 도시 분위기와의 연결을 촉진한다. 도시에서, 일상의 영역에서는 제인 제이콥스가 주목했듯이 보행자 거리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도시의 특정 거리 또는 지정된 보행자 구역은 걷기와 사교를 우선시하도록 계획된다. 최근에는 가로에서의 사교활동이 도시의 활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생활가로(Living Street)라고 하는데, 야외 좌석, 노점상, 공공 예술 설치물, 거리 공연을 특징으로 하여 활기차고 포용적인 커뮤니티 분위기를 만들어 거리의 거실화를 지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류의 영역과 행사를 매개로 구성되기도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보이지 않는 형식이다. 동네 텃밭(?)과 지역 농산물 시장으로 말해야 할지 모르지만, ‘Community Gardens and Farmers Markets’도 중요한 이벤트와 시설로 존재한다. 이 공간은 공동체 의식, 지속 가능성 및 지역 경제를 촉진한다. 커뮤니티 가든은 개인이 이웃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게 해주며, 파머스 마켓은 현지에서 생산된 신선한 제품을 구매하고 농부 및 장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사진 6>
이렇듯 상업적 사교적 공간과 관련된 사회적 가치와 의미는 다양할 수 있지만 종종 커뮤니티, 인간관계 및 문화 교류를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은 소속감, 다양성과 포용성을 촉진하여 사교, 협업 및 공유 경험을 위한 기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결과적으로 도시에서 이런 사교적 특성이 강한 공간과 이벤트들은 개인의 전반적인 복지를 향상시키고 지역 경제에 기여하며 도시의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반영할 수 있다.
오늘날 도시의 규모가 확대되고 집중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도, 아이러니하게 거대 도시 안에서 지엽적으로 세분화되고 지역화되는 사회적 특성, 사교적 활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도시가 커질수록 커지는 규모의 단일화 특성보다는 다양한 특성이 분화되고 강해진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공통 커뮤니티, 공통 관심사 또는 의식, 경제적 유사성과 활동성, 문화적 동질성과 교류 등이 이합집산을 거쳐서 특정 장소에 특화되기 시작한다. 굉장히 모순적인 현상이다. 나라가 아닌 특정 도시로 집중되면서도 그 안에서 세분화되는 특이한 현상을 만나게 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성장에 집중하고, 새로운 기능을 해결하기에 급급한 공간 전략과 공급이 중심이었다. 도시 설계나 건축도 당연히 그 흐름에 있다. 문제는 생산성과 성장 중심의 사회가 안정화되고, 유휴시간의 증가와 자발적 비생산 구조에 몸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 건축사·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영화속 건축이야기(1999)』, 건축사가 쓴 최초의 경영서적 『스페이스마케팅(2007)』, 『하트마크(2016)』 등의 저서가 있다. 1998년 부터 다수의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작업 활동 중이다.
ncslab@ncsarchit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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