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공공시설물의 한계와 극복 2023.10

2023. 10. 31. 11:28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Limitations of public facilities and overcoming them

 

 

 

<예천스타디움 증축> 전경 © 윤동규

 

이재혁 건축사와는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로, 지면이나 현장을 통해서 건축을 대하는 그의 성품과 태도를 어느 정도 알고 지내던 사이다. 그는 건축을 대단한 이념이나 화려한 수사로 접근하지 않고 재료의 물성에 대한 치밀한 탐구와 소박한 수법을 통해 공간과 형태를 구현하는 진솔한 건축인이다. 그래서 그의 건축에서는 디테일에 치중한 느낌보다 풋풋한 날것의 진솔함과 친절함이 엿보인다. 특히 목구조 건축 설계에 탁월한 경험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친환경의 가치와 중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는 건축사이다. 아마도 이 비평을 맡게 된 인연에는 나무 건축을 통한 그와의 공감대가 있었을 것이다.

예천스타디움(구.예천 공설운동장)은 1996년에 완공된 건물이니 25년 만에 증축 공사가 이루어졌다. 증축 전에는 최소한의 시설만을 갖고 있었으나 2022년 U20 육상경기선수권대회를 유치하게 되면서 국제 경기에 맞는 시설을 갖춰야만 했다. 기존 콘크리트구조 건축물의 증축은 물론 장애인 시설의 설치도 필요했다. 본부석의 구조도 바꾸어야 하며 본부석 상부의 캐노피 면적도 두 배 가까이 확장해야 하는 복합적인 구조변경과 시설 증축을 진행하게 되었다. 설계자 입장에서는 이곳저곳 생각할 곳이 많은 난해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결과물은 기존 예천스타디움의 전체적인 구조인 콘크리트구조에 막구조를 위한 철골구조와 목조 부재가 조화를 이룬 하이브리드 건축물로 재탄생했다. 다양한 시설과 운영 능력으로 이미 육상경기의 메카로 자리 잡은 예천군이 한걸음 더 도약할 준비를 하게 된 것이다.
 
이재혁 건축사에 의하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설계공모로 나온 프로젝트로 사업의 성격과 공모지침의 범위가 불확실하기도 해서 건축사들의 관심을 얻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고 한다. 공모로 당선된다는 것은 마치 확률 낮은 슬롯머신 당첨처럼 어렵다. 그럼에도 건축사들에게는 피하기 힘든 고행과 수련의 과정이다. 공모의 과정을 보면 제안 수준에 기대어 투자하기에는 상처가 너무 큰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다. 늘 제안의 물량이나 수준, 심사자의 명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모를 시행하는 공직자들의 공모 운영 노하우는 결과물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공모로 당선된 제안을 성공된 시공으로 끌고 가려면 공무원들의 후속적인 관심과 전문가적인 조율이 뒤따라야 한다.

공모 이후 짧은 일정 속에 실시설계가 마무리되었다. 대개의 공공시설물이 그러하듯 지역의 시공사가 입찰로 선정되어 일을 수행하게 된다. 콘크리트나 일반적인 공법은 경험치가 있어서 수행에 무리가 없으나, 부분적이나마 목조를 다루기에는 무리가 많아 목구조 전문회사에 하도급을 줄 수밖에 없다. 다행히 발주처와 원청자의 이해로 건물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설계자가 제안한 중목구조 전문사인 수피아건축이 참여해 중목구조의 핵심 과제인 접합과 구조해석을 마치고 제작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콘크리트에 덧대어지는 세라믹 판넬과 목구조 캐노피의 색조조화, 그리고 재료가 가진 속성에 유사성을 느낄 수 있게 한 방향성이 좋아 보였다. 무기질 재료인 세라믹 판넬은 환경친화적 재료의 사용이 중요한 요즘 같은 시기에 더욱 각광받고 있다. 건축사에 의하면 판넬의 원재료뿐 아니라 오픈조인트의 시공방법도 선정의 이유였다고 한다. 목구조에 사용된 자재는 유럽산 스프러스 집성목이다. 스프러스의 부드러운 성질로 인해 건축자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구조적인 치수안정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이재혁 건축사는 새로이 증축되는 부분에 사용된 재료를 적절히 배치해 색상의 조화와 유사성을 만들어냈다. 
리모델링의 어려움은 예상치 못한 철거 과정에서 자주 드러난다. 어떨 때는 원공사의 문제점을 떠안고 가야 할 때도 있으며, 만지다 보면 새로운 욕심을 꼭 부려야 하는 지점을 만나기도 한다. 이 현장도 다를 바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강화된 단열기준과 BF의 문제는 리모델링의 한계를 끝도 없이 몰고 가는 난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늘 예산 문제가 발생한다. 예천스타디움을 보며 이재혁 건축사의 경험치를 통한 설득으로 여러 난제를 풀어낸 성과품이란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막구조 업체와 목구조 업체 간 협업 중재를 위해 시공 중에도 회의와 협력을 요청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고 한다. 중간자로서의 역할은 쉽지 않았으리라 예상한다. 일반적으로는 막구조에서 목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전체 재료와 느낌을 정해진 예산과 공사 기간 내에 살리는 것은 무리가 되었겠지만, 입면을 이루는 가장 매력적 요소인 목구조 캐노피의 절제된 조형미와 목구조의 날렵한 이미지를 더해준 철과의 조합은 마치 새의 날개처럼 날렵한 조형미를 구축한다. 일반적인 막구조와는 차별화된 공법을 택해 실험적인 역량을 보여준 건축사의 노력은 전체 조형의 중심을 잡으며 시선을 모으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막구조에서 중요한 구조적 역할을 하는 빔 부재를 목재로 사용한 점은 목재 사용에 자신 있는 건축사임을 잘 드러내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좋은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재량권과 시간, 그리고 자본의 후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행히 예천 공무원에게 재량권은 어느 정도 얻었으나, 곧이어 있을 U20 육상경기선수권대회의 일정이나 예산의 문제, 공사비 상승으로 인해 더 이상의 윤허는 없었다니 아쉬운 일이다. 본부석을 중심으로 보태지는 증축의 평면은 의도대로 잘 이어졌으나, 마감의 조화와 완성도에 있어 아쉬움이 있었으리라 예상된다. 

특히 건축의 마무리는 세세한 디테일이 소중한데, 예산 문제로 많은 부분이 축소되거나 기성재로 대체되고 마지막에 설치되는 과도한 크기의 사인물 등에서 건축사의 역량을 발휘할 여건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설계의도 구현, 혹은 감리야말로 진정한 설계의 연장선임에도 불구하고 건축사의 순정적 열정은 외면당하고 형식이 중요한 마무리로 이어지는 현실은 어떤 방식으로든 개선되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열정은 또 다음 기회로 바통을 넘긴다. 
아마도 이렇게 실험적인 건축을 결국 실행하고야 마는 건축사라면 작은 규모의 건축에 만족하지 않고 복합 구조를 활용한 대공간의 설계에 도전할 것을 기대한다. 

“오랜만에 공모를 진행하고 관과 협력해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짧은 작업 기간과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점 등에서 많은 오류가 생겼습니다. 특히 내역 작업에서의 오류는 설계자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네요.(웃음) 그래도 처음부터 계획했던 목재 부재를 마지막까지 지켜냈던 것은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발주처에서는 목재를 사용한다는 점에 큰 저항이 없었습니다. 추후에는 좀 더 큰 규모의 대공간을 작업해 보길 기대합니다.” 
<이재혁 건축사 인터뷰>

 

 

 

글. 최삼영 Choi, Samyoung (주)가와 종합건축사사무소 · 진주시 총괄계획가

 

 

최삼영 건축사 · (주)가와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1958년 경남 출신으로 1985년 공간연구소를 시작으로 1994년 (주)가와 종합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3년 와세다대학원 객원연구원을 지냈으며, 2019년부터 진주시 총괄계획가를 겸하고 있다. 친환경 건축을 위한 실천으로 목구조 건축을 연구·실행하고 있으며 중소규모 공공시설물의 건축에 참여하고 있다.

kawa199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