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의도 구현을 위한 ‘소통’의 중요성 2023.9

2023. 9. 14. 16:16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The Significance of 'Communication' in Achieving the Intended Design Purpose

 

 

 

 

친구의 연락
사무소를 오픈하고 몇 해 뒤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아파트에 살고 있던 친구는 근처 소유하고 있던 땅에 단독주택을 짓고자 했다. 설계를 맡길 건축사를 찾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주변에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다른 친구들도 몇 명을 만나본 듯했다. 막바지쯤 나도 친구를 만나게 됐다. 만나서 내가 주택을 진행하는 프로세스와 업무범위를 자세히 설명했고, 말미에는 다양한 건축사를 만나본 후 실력이 있고 소통이 잘 되는 사람과 설계를 시작하라고 당부했다. 솔직히 나에게 설계를 맡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규모 단독주택은 시공과정에서 설계자의 의도가 오롯이 구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네 부부는 고민하다가 결국 우리 사무소를 선택했고, 이렇게 약간의 부담을 안고 설계를 시작하게 되었다.

 


설계의 시작
친구는 맹지였던 땅을 수년간 개발하지 못하다가 입구 쪽에 있던 필지를 구입한 후 단독주택 설계를 시작하려고 했다. 주택을 설계할 때 항상 우리가 제공하는 체크리스트가 있는데, 그 첫 질문인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 채광과 프라이버시였다. 때문에 채광과 향, 건물의 진입 방향 등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설계가 시작됐다. 대지의 진입 방향은 남쪽이었는데, 남쪽이 대지에서 가장 높은 부분이고 북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면서 뷰가 탁 트여 있었다. 또한 남쪽 대지경계에는 3미터 높이의 옆집 옹벽이 높게 자리하고 있었다. 채광과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기에 상충되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이 집에 접근하는 동선과 진입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부부가 처음 생각하고 꿈꿔온 집의 이미지가 비교적 명확했기 때문에 그 로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계획안을 만들고 싶었다.

 

 

 

채광과 프라이버시
외부에서 건물로 진입할 때 현관과 거실이 들여다보이지 않아야 하지만, 건물을 너무 많이 가려 답답하지는 않아야 했다. 내부에서는 외부로 넓게 트인 통창을 통해 잘 꾸며진 정원이 보였으면 했다. 이 조건들을 고려해 생각한 대안은 낮은 담장이 중첩된 시크릿가든(비밀의 정원) 콘셉트였다. 남쪽의 옹벽에서 최대한 이격해 주택의 채광을 확보하면서도 서쪽 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진 듯한 정원 공간을 확보하고, 진입부에서는 건축물로의 동선이 일직선이 되지 않도록 시야를 가릴 만큼의 높낮이를 가진 담장 사이를 지그재그로 지날 수 있도록 했다. 담장과 담장 사이에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조경 식재들을 통해 벽을 통과하는 느낌이 아닌 안쪽에 숨겨진 정원을 찾아 걸어 들어가는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했다. 높다란 담장과 대문이 없어도 중첩된 담장에 의해 형성된 전이공간을 통해 초대되지 않은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분위기와 영역성을 가지도록 계획했다. 또한, 내부 공간 배치에서는 주방과 식당에서의 시야 확보가 관건이었다. 주방에서 거실이 트여있어 한눈에 보이면서도 요리를 하거나 식사할 때 음식 냄새가 거실로 가지 않도록 도어를 설치해야 했고, 주방에서도 예쁜 뷰(view)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아내가 자주 사용하는 주방에서 보는 뷰는 매우 중요했다. 내부에서 외부에 누가 드나드는지 보여야 했지만, 아름다운 뷰를 보고 싶은 것도 당연하므로, 중첩된 담장의 작은 정원은 그 모든 것을 절충할 전이공간이었다.



레벨
집의 기준 레벨도 매우 중요한데, 외부 바닥보다 1층 바닥을 약간 높였다. 1층 중앙에 있는 외부 데크는 살짝 걸터앉을 수 있을 만큼 마당보다 높였고, 바깥쪽 담장 높이를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1.8미터 정도로 계획했다. 안에서는 바깥이 시원하게 트여 보이지만, 외부에서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의도했다. 담장 안쪽으로 걸어가 들여다보면 나무 사이로 식사 공간과 주방이 살짝 올려다 보일 테지만, 집에 방문하는 손님이라면 반갑게 웃으며 눈인사로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주와 많은 대화를 통해 이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의 소통 콘셉트를 설명하고 결정했다. 문제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외부 공간의 요소 중 하나인 외부 레벨을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당의 레벨이 높아지는 바람에 현관으로 진입하는 석재 계단 디자인과 데크 높이와 디자인, 포인트 식재공간, 담장 높이와 시선의 레벨 등 처음 의도한 콘셉트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결국 외부 레벨이 조금 높아졌지만, 처음의 의도를 유지하기 위해 담장 높이를 조정하고 현관 단차부의 형태가 많이 바뀌게 되었다.

 


리딩누크
내부 공간과 관련해 이 집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리딩누크다. 아내는 안방에 혼자 책 읽을 공간(리딩누크)을 필요로 했다. 리딩누크는 두 다리를 뻗고 기대어 책을 읽을 수 있으면서도 양반다리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너비에, 불을 켜고 책을 읽을 때도 안방에서는 수면에 영향을 받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안방 문을 열었을 때 침대가 바로 보이지 않고 ‘윈도우픽처’가 보이는 작은 공간이 먼저 드러나도록 계획했다. 방문이 열려있을 때도 방이 들여다보이는 것이 아니라 복도에서 액자와 같은 창으로 계절이 보이게 된다. 이 리딩누크는 2층 자녀방에도 적용되었는데, 계획 진행 중에 자녀가 안방의 리딩누크를 보고 자신도 그런 공간을 가지고 싶다고 하여 자녀방 구성을 새롭게 한 부분이다. 곧 사춘기가 되는 자녀에게 아지트 같은 공간은 어찌 보면 필수이지 않을까?

 

 


거실
주택의 중심공간은 일반적으로 거실이다. 그러나 이 집의 거실 이야기를 비교적 나중에 하게 된 것은 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구성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공간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이므로 중요하다. 이 집의 거실은 처음 설계를 시작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남쪽의 채광과 북쪽의 뷰를 모두 만족하는 공용 공간이다. 이 대지의 북쪽은 낮아지는 경사면의 산지라 멀리 대장동까지 보이는 탁 트인 뷰가 강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실들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남쪽엔 채광창을 고창으로 계획하고, 북쪽으로는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 큰 창들을 계획했으나 거실은 남쪽의 개인 정원과 북쪽의 원경을 통창을 통해 모두 누릴 수 있도록 개방했다. 이곳에서는 음악 감상을 좋아하는 건축주와 가족들이 화목하게 쉼을 얻고 힐링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인허가
땅은 성장관리방안 내에 있는 산지였다. 현지 토목 설계회사와 협의했을 때 ‘성장관리방안 미수립지역’은 산지입지형으로 보게 되어 있어, 단독주택을 짓는데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단독주택을 설계하고 허가접수를 했을 때, 개발행위 담당부서에서는 미수립지역에 단독주택을 지을 수 없다고 했다. 협의를 통해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게 되었지만, 허가담당자의 주관에 따라 신축 가능 여부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원래는 바깥쪽 1.8미터 높이의 담장 부분에 낮은 대문을 만들고 그 안쪽도 모두 조경공간으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단독주택 필지 내에 차량의 회차공간을 확보하라는 개발행위 부서의 요구에 따라 대문이 사라지게 되었다. 낮은 대문과 함께 정원 공간도 줄어들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공사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시공사 선정과 시공사 선정 후 현장과 소통하는 과정이었다.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든지 마찬가지겠지만,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현장소장이 설계도면대로 시공하겠다는 의지와 건축사와의 원활한 소통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시공사 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건물을 짓고자 하는 모두가 알 것이다. 하지만 소규모 건축에 있어서 모두가 원하는 그런 시공사를 선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친구와 함께 여러 시공사 대표들을 만나고, 공사 중인 건물과 완공된 건물들을 함께 둘러본 후 시공사를 선정했다. 최선을 대해 시공사를 선택했으나, 의사소통이 많이 아쉬웠다. 일정관리 또한 원활하지 못했다. 작년 11월에 창호공사와 내부 목공하지틀 공사까지 진행됐는데, 건물 공사가 마무리되는데 8개월이 더 소요되었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공사를 마무리 중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현장소장의 가장 큰 강점인 인테리어 시공 품질도 일정 수준 이상은 확보되었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지인의 건물을 설계하면서 보다 큰 부담을 안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물론 지인이 아니더라도 모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한다. 건축주는 큰돈을 들여 평생의 로망을 실현하는 것이기에 건축사인 우리도 최선을 다하지만, 항상 조금씩 아쉬움이 남게 되는 것 같다. 설계의도와 달라진 부분에 대한 아쉬움과 속상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늘도 설계와 감리 과정, 시공사 선정, 현장소장과의 소통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중이다. 

 

 

 

 

 

글. 배상범 Bae, Sangbeom 페이퍼비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배상범 건축사 · 페이퍼비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페이퍼비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의 대표로 고객의 생각을 존중하고 디자인, 경제성, 시공품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일상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경험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유행을 따라가는 ‘멋진’ 건축보다는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잘된’ 건축을 만들고자 한다. 최근 프로젝트로는 P사 사옥, M사 사옥, 대전연구소, 화성카페, 상도동 메디컬빌딩, 서초동 근린생활시설, 논현동 다가구주택, 용인 단독주택 등이 있다.

sbb.pap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