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건축, 옆집의 건축 2023.8

2023. 8. 17. 20:29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within a everyday, the architecture of the next door

 

 

 

건축사사무소 옆집의 사무실 실내 © 김정숙

 

사무소를 개소하다
회사를 잘 다니고 있던 나는 늦은 나이에 결혼해 임신을 했다. 아이가 생겨 기뻤지만, 초산에 고령이기까지 해서 입덧이 심해지며 황급히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몇 주를 쉬고 나서 상태가 호전되어 집 밖을 나가기 시작했으나, 놀아본 사람이 논다고 이런 생활도 금방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우리 집 근처에 서재를 하나 얻자!”대뜸 말해놓고 보니 ‘서재’라는 단어 선택은 매우 탁월했다. 왜냐하면, 나는 책을 좋아하지 않지만 남편은 책에 대한 물욕이 많으니 말이다. 우리는 다정히 손을 잡고 우리들의 서재를 찾아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철없는 부부다. 우리는 머지않아 저렴한 사무실을 찾아 계약을 했고, 사업자등록도 했고, 나는 출산을 했다. 

 

 

<사진 1> © 김정숙
<사진 2> © 김정숙
<사진 3> © 김정숙



셋이 있었다
이후 백일동안 아이와 함께 겨울을 났다. 이듬해부터는 아이를 등에 업고 사무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애를 보면서 뭐를 하겠다고” 하시면서 경춘선을 타고 올라와 아이를 봐주시기 시작했다. 당시, 약 50제곱미터(15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내 책상 하나가 벽에 붙어 있고, 가운데 바닥에는 쿠션매트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그 주위에서 외할머니가 끄는 자동차 손수레에 앉아 빙글빙글 돌다가 세상모르게 잠이 들었다.<사진 1> 나는 그런 아이에게 근태가 좀 불량해도 출석률이 좋다며 통 크게 부장자리를 내어 주었다.<사진 2> 그러고는 그게 뭐라고 뿌듯해 했다. 아이도 좋아(?)했다. 그렇게 셋이 사무실에서 지냈다. 
애초에 사무실을 개소하면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고, 그 답은 설계공모였다. 그래서 적당한 규모의 설계공모 세 개를 찾았다. 엄마와 아이를 차에 태우고 드라이브 겸 발주청에 가서 등록을 하고 현장설명회에 참석했고, 그동안 엄마와 아이는 주차장에서 놀고 있었다.<사진 3> 그러고는 사무실에 돌아와 작업을 시작해 보니, 역시 쉽지 않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실시 위주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새로 시작하면서 세 개는 무리였다. “엄마, 나 2개만 하려고” 가볍게 말을 건넸더니, 엄마가 정색을 하신다. “아니, 다 해야지. 어쨌든 등록한 거는 다 해. 이 건물이야? 멋있네, 해! 아이는 내~가 볼 테니까, 너는 세 개 다 해!” 이처럼 단호한 엄마의 응원과 강요로 나는 세 개의 설계공모에 모두 참여해야만 했다. 그 후로 엄마와 언니가 번갈아 사무실에 와서 아이를 봐주었고, 나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3개월을 꽉 채워 보냈다. 드디어 끝이 났다. “하… 엄마, 나 이제 쉬어야 해! 나도 쉴 테니까 엄마도 쉬어. 당분간 올라오지 마!” 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그 세 개 중에 하나가 당선이 됐다.
세상에! 나에게 이러한 행운이?! 내 인생 최대의 천운을 맞았다. 이로써, 나는 당선 프로젝트 이후로 설계용역이나 기획용역의 수의계약 기회를 얻었고, 공공건축가로서의 활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지금까지 해오는 프로젝트 중에는 이 프로젝트 덕분에 가능했던 것들이 많다. 눈물겹도록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당시의 나는 뜻밖의 큰 성과가 그렇게 고마운 줄 몰랐다. 나 혼자 사무실에서 사부작사부작 설계공모를 준비할 때와는 다르게 일이 너무 커져 버린 것에서 오는 당황스러움과 걱정 때문이었다. 그제야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업무에 도움을 청하면서 사무소 개소를 알리게 되었다.



새삼스럽게 느낀다
실무를 하면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다양한 건축 경력을 쌓았고, 동시에 일에 대한 성취감과 자신감도 함께 쌓아왔다. 대학원에서는 건축을 사유하고 가치를 공유하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건축사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러는 동안 나에게는 많은 선후배 동료들의 도움과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나를 대견해 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다. 단순한 선택들이었지만, 실은 이처럼 무수히 많은 것들이 녹아 있는 것이다.



건축사사무소 옆집
그래서 나의 사무실과 내 건축에는 ‘나’라는 개인이 투영된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혼자 있지 않다. 그러므로 나와 관계하는 모든 것들을 직시한다. 이렇듯, 나로부터 시작하는 사사로움과 소소함, 자연스러움 속에서 독특한 정체성을 찾아내려 한다. 즉, ‘일상성’이 내가 지향하는 건축적 가치이다. 그리고, 그렇게 건축으로서 옆집이 있다.

 

 

 

 

글. 김정숙 Kim, Jeongsuk 건축사사무소 옆집

 

 

김정숙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옆집

 

강남대학교와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공부를 했다. 국내와 해외(CIS)국가에서 건축설계 실무경험을 했다. 건축사사무소 옆집의 대표이며, 건축사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고자 한다. 현재 포천시와 양주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archinextdoo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