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담론①] 햇빛 공유, 일조권 다시 생각하기 2023.7

2023. 7. 24. 15:34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Sharing sunlight, rethinking the right to enjoy sunlight

 

 

부드럽게 내리쬐는 햇살은 인간에게 유익한 생리적 효과와 함께 정신적,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다. 햇빛은 개인의 재산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누릴 수 있는 공평한 권리이자 자연의 혜택이며,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해 비치는 그곳에서 비켜 서 달라(Yes, Stand out of my sunlight.)’라고 요청한 일화가 아니더라도 당신이 한옥 툇마루에 앉아 지붕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처마에 의해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마당을 보고 있다면 분명 복잡한 삶 속에서 잠깐의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국민소득 향상, 주거환경 개선 등 경제적인 도약과 함께 도시 과밀화, 고층화로 인해 햇빛 공유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대두되었다. 1971년 ‘주거지역 안에서 건축물을 건축하고자 할 때 건축물의 각 부분의 높이는 그 부분으로부터 인접 대지의 경계선까지의 수평거리의 1.5배에 진북방향은 8m, 기타 방향은 17m를 더한 높이를 초과할 수 없다’는 일조권 규정이 건축법 시행령에 신설되면서 법적 기준이 마련되었고, 제정 당시 일본의 북측 사선제한과 유사함이 보인다. 이후 몇 차례 변경을 통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틀이 유지되고 있다. ‘전용주거지역과 일반주거지역 안에서 건축하는 건축물의 각 부분을 정북 방향 인접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높이 9m 이하인 부분은 1.5m 이상, 높이 9m를 초과하는 부분은 당해 건축물 각 부분 높이의 1/2 이상을 인접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이격해야 한다’라는 규정이 현재 적용되고 있다.

 

 

1971년 일조권 규정
(일본) 북쪽 사선제한
현재 일조권 규정


건물을 보면 북쪽을 알 수 있다
나침반을 사용하지 않고 북쪽을 아는 방법은 북극성 위치를 찾거나 나뭇가지 방향, 나이테 두께를 이용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건물을 이용하여 북쪽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는데, 이는 일조권이 적용된 건물의 북쪽이 낮고 남쪽은 높은 계단식으로 지어지다 보니 나침반을 보지 않더라도 북쪽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용과 일반주거지역 소규모 대지에서 볼 수 있는 건물에서 9m를 초과하는 부분은 1/2이라는 높이제한이 적용되다 보니 이 부분에 층층이 베란다가 만들어진다. 자연스레 만들어진 외부공간을 멋진 테라스로 활용하면 좋을 텐데 실상은 조금이라도 수익을 더 올리고 싶은 마음 때문에 사용승인 이후 구조안전 확인없이 화재 안전성능도 확보하지 못한 채 불법 확장이 이루어진다.

서울특별시 의회가 2018년 발간한 ‘서울특별시 위반건축물 현황 및 발생 억제방안 연구’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서울에서 53,486건의 위반건축물이 적발되었고, 이를 시정한 건수는 18,883건(시정률 35.3%)이며 상업용이 50%, 기타 용도가 90%의 시정률을 보이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주거용 건축물인데 타 용도보다 낮은 26.8%의 시정률로 유형을 보면 발코니 확장, 일조권 위반이 전체의 93%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조권에 의해 만들어진 계단식 건축물 상부에 위반 건축이 이루어지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기울어진 하중, 우리가 사는 공간은 안전한가?
소규모 공동주택인 다세대 주택은 주택으로 사용되는 층이 4개 층 이하로 제한되고 자주식 주차가 원칙이다 보니 지상 1층은 주자창이 되고 그 위로 2층에서 5층까지 4개 층이 주거로 사용된다. 일조권에 의한 높이 제한이 완화되는 9m 이하 부분에 위치한 2, 3층이 용적률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건폐율이 허용되는 범위까지 면적을 사용하고 4층과 5층 부분이 정북 방향 이격거리를 띄우다 보면 건물 형태는 자연스레 계단식이 된다. 이렇게 건물의 북쪽이 낮고 남쪽이 높고 층수도 다르다 보니 기둥과 기초를 통해 지반에 전달되는 하중이 다를 수밖에 없고 지반 압밀로 인한 부동침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부동침하라고 하면 연약한 지반에서 허용지내력이 급격히 변화하는 부분에 건축물 하중이 부가될 때 발생하지만, 기초에 전달되는 하중의 크기가 현격하게 다른 경우에도 구조물 변형 및 균열과 함께 건축물 거동 변화에 따라 침하가 발생할 수 있다.

설계단계에서 미리 예상되는 하중 차이를 반영하여 구조적 안전성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가장 불리한 조건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건물 기초가 필요 이상으로 커져 대지 전체가 콘크리트로 덮이게 된다. 흙이 아닌 콘크리트 바닥과 도로 아스팔트 포장으로 덮인 지역은 우수 유출속도가 증가되면서 지하수위의 변화, 싱크홀 발생 등 지하 안전이 위협받게 된다. 건물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지반에 전달되는 하중이 일정해진다면 우리가 사는 공간이 보다 안전해질 것이다.

 


화재 안전과 도시공간 활용

 

불균등한 지반 하중과 베란다 독점
균등한 지반 하중과 발코니 공유


2021년 1월 20일 인접 대지와 떨어진 거리가 1.5m 이하에 위치한 유리창은 방화성능을 지닌 제품을 적용하도록 관련 법이 개정되었다. 화재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하지만 소규모 대지에 조그마한 건축물을 지으려는 서민에게 1.5m의 이격거리 확보와 1㎡에 100만 원을 상회하는 방화창 적용은 커다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빠듯한 예산에 공사비를 맞추다 보면 창 면적이 줄어들게 된다. 코로나19 등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환기가 강조되는 시점에 창 면적을 줄여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며, 어렵사리 창을 만든다고 해도 인접 대지 경계선에서 2m 이내 부분에 차면시설을 해야 하는 규정으로 인해 실제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제한적이다. 일조권도 좋지만 건폐율과 허용 높이를 감안하여 건축 가능 공간을 구체적으로 규정한다면 층마다 조그마한 발코니를 통해 햇살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현준 교수가 제시한 “서울의 평균 용적률은 160% 정도라고 한다. 반면 시내 전체가 저층인 프랑스 파리는 250%이다. 고층건물이 이렇게 많은 서울이 파리보다 용적률이 낮다는데 많은 사람이 의아해할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서울시는 자투리 공간으로 버려지는 땅이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건물을 지을 때 대지 경계선에서 띄워서 건물을 짓는다. 건물 사이를 띄어서 채광·통풍을 하겠다는 이유다. 그래서 쓸모없이 버려지는 땅이 건물 사이에 많다. 하지만 파리나 뉴욕 같은 도시는 건물끼리 옆으로 붙어 있다. 대신 빈 공간은 쓸모가 많은 중정이나 뒷마당으로 만들어져 있다”라는 도시 공간 활용에 대한 아이디어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미 많은 건축물이 50년 동안 북쪽에서 일정 거리를 띠는 일조권이 적용되다보니 중정보다는 대지 경계선에서 띄우는 거리를 조금 더 넓혀 그 사이를 중정처럼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되면 방화창 설치 대상 부분도 줄어들고 차면시설 제외에 따라 프라이버시 확보도 가능할 것이다.

 


일조권은 평등하다?

 

상업지역 일조권 제외에 따라 발생 가능한 음영 구간


거리를 걷다 보면 길 양옆 건축물의 높이가 확연히 다를 때가 있다. 2014년 지번 주소가 도로명 주소로 바뀌었지만 지역 구분은 여전히 법정 동이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지정되다 보니 같은 도로에 접해도 지역에 따라 건폐율, 용적률과 함께 일조권 등이 다르다. 예를 들어 공업지역과 상업지역, 주거지역이 교차하는 지점을 가정한다면 지역이 준공업지역으로 통일된 지역과 달리 용적률이 적고 일조권이 적용되는 주거지역은 다른 곳에 비해 건축물의 높이가 낮아지게 되고 상업지역 인접한 부분은 일조권에 대한 불평등이 발생한다. 즉, 상업지역에 의해 발생하는 그림자가 주거지역에 드리웠을 때 일조에 대한 권한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인데 2004년 이에 관한 질의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상업지역 내에 건축하는 건축물에 대하여 일조권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라는 회신을 하였다. 전면 도로 폭이 넓어 충분한 조망과 채광이 제공되는 상업지역 고층 건축물이 일조권의 적용이 되지 않는데 그로 인해 그림자 구간에 포함된 주거지역은 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경사지형에서도 일조권 적용이 북쪽에 인접한 토지의 높이와 가중평균을 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지을 수 있는 높이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북쪽에 위치한 인접대지가 2미터 높으면 가중 평균면이 1미터 높아지고 반대로 2미터 낮은 경우에는 일조권 적용 기준면이 1미터 낮아지게 된다. 즉, 높이차이가 없는 경우를 기준으로 설정한 9미터 완화구간이 실제적으로는 8미터 이하로 제한되는 구간이 나타나고 ‘반지하’라는 기형적인 주거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일조권 변화에 따른 거리 풍경 (제안)

 


미로 평면 vs 자유로운 평면
2022년 말 지어진 지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이 전체 건축물의 41%를 넘어섰고 지금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기존 건축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재건축에서 리모델링으로 전환되면서 구조 보강과 방수, 마감재 교체 등을 통해 본연의 기능이 유지·향상되고 있으며 노후화된 설비 배관과 전기 배선도 교체되고 있다. 별도 덕트 공간이 확보된 건물에서 교체가 가능한 반면 배관이 구조체 속에 매립된 경우라면 배선, 배관 교체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일부 교체를 하더라도 하자 발생에 대한 우려가 뒤따른다. 특히 계단식 다세대 주택은 외기와 면하는 부분에 발코니 확장이 수반된 방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화장실을 두다 보면 층마다 평면이 다르고 화장실 위치가 달라지게 된다. 거기다 수익성 확보를 위해 조그만 공간도 빠짐없이 계획하다 보면 평면이 미로처럼 꼬이게 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다 보니 배관 교체를 염두하지 않게 된다. 게다가 남쪽에 계단실과 승강기가 배치되면 평면은 선택의 폭이 더 좁아지게 된다. 만약 일조권을 빼고 생각한다면 계단실 위치는 남쪽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 둘 수 있게 되고 거주자와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자유롭고 개성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건물이 마음에 들다보니 오래 사용하기 위해 수직 덕트 공간도 마련하고 교체에 대한 대비도 미리 할 수 있으며, 4, 5층에 한정된 외부 공간은 누수에 대한 불안과 불법 증축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로워진다. 

 


일조권 세분화
일조권에 관한 연구자료를 참조하면서 “일조 관련 해외사례 및 기준상 직사광을 받을 일조권에 더해 그림자가 생기는 부분을 규율하는 일영권 등 환경권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통례지만 국내에서는 건축물 높이와 연계한 이격 거리만으로 일조권을 판단한다”라며 “과거 개발시대에 만든 건축법 체계는 결국 환경·주거권을 고려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하며 일조권 관련 건축기준 수술은 시간문제일 뿐, 필요하며 그 과정의 진통도 어차피 한 번은 감수해야 한다”라는 내용에 공감을 하면서도 우리가 누리는 햇빛을 정말로 공평하게 공유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에 일조권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지형도 다르고 도시화 정도가 다른 상태에서 하나의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안 맞는 부분이 보이고 일조권에 의해 획일화된 거리 풍경과 불법 확장이 일어난 위반 건축물을 보게 되면 다양한 조건에 대응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특정 건축물 양성화 대신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일조권을 마련하기 위해 다각적 검토와 폭 넓은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글. 정창호 Chung, Chang Ho (주)에코 건축사사무소

 

 

정창호  건축사 · (주)에코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주)우일종합건축사사무소와 (주)성림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쌓았다. 2010년 (주)에코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였으며, 신사동 빌딩으로 리모델링 협회 우수상, 남양주 공공디자인 우수상 등을 수상하였다. 경상북도 캄보디아 문화교류센터, 유원지식산업센터, 신한디엠빌딩 리모델링 등 도시·사회 관련 설계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대한건축사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malevich@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