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편견 속에서 건축사로 살아가기 2023.11

2023. 11. 30. 09:3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Living as an architect amidst misconceptions and biases

 

 

 

 

 

개소 후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바라보는 건축사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을 편하게 기록해 보고자 한다.

설계는 내가 했지!
어느 여름날 대수선과 인테리어 설계를 함께하고자 하는 클라이언트를 만났고, 기쁜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계약하고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미팅에서 자신이 가진 예산, 상상하는 외관의 모습, 내부의 모습 설명과 함께 참고 사진들과 실내 구획까지 손수 그려서 가지고 왔다. 예산은 부족하지만 의욕이 넘치는 클라이언트와 계약을 해서, 잘 다듬는다면 만족할 만한 결과물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회의를 진행할 때마다 처음에 이야기한 예산을 본인 스스로 늘리면서 공사 범위를 서서히 늘려갔고, 최종적으로 디자인을 정리하고 나니 결국에는 예산이 엄청나게 증가된 상황이었다. 회의 때 예산 증가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며, 공사 범위를 증가시키더니 나중에 결과물이 나오고 나서는 공사비가 과대하게 산정되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에는 자신이 사진이나 내부 구획 등 그림을 다 그렸다며 설계비에 대한 분쟁까지 이어졌다. 처음에 그려 온 구획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았다. 회의 기록과 여러 곳의 시공사 견적을 수령한 이후에야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우리가 도면에 그리는 ‘선’에는 다양한 건축적 정보와 예산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선의 조합을 통해 공간의 형태, 재료, 디테일에 담긴 세밀한 공간의 느낌, 시공 예산까지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의 눈에는 연습장에 그려진 선처럼 단순한 그림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

설계비가 비싸네요!
우리가 하는 설계는 무형의 가치가 담긴 산물이다. 공간의 품질과 느낌을 도면과 선으로 표현하고, 실제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건물을 만들기 위한 단순한 서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행정 처리를 위한 서류 정도로 인식하고 접근하다 보니 지불하는 비용에 대해서도 아깝게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계약 전에 상담을 하다 보면, 인허가 단계까지의 기준으로 설계비용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 설계는 많은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지고, 사업의 시행만을 놓고 보면 인허가가 포함된 중간 설계 과정이 중요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공간의 품질과 가치는 인허가 후에 이루어지는 실시설계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게 된다. 마감의 디테일과 시공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실시설계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도 이러한 부분이 다 결정된 후에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대부분의 소규모 현장에서는 이러한 마감의 디테일과 시공의 품질을 시공사의 영역으로 넘겨서 진행하고 설계를 진행한 건축사의 참여가 저조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건축사의 역할이 인허가과정에 집중되면서 실시설계에 대한 가치와 업무에 대한 비용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건축사 하면 돈 많이 벌지요?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 엄청난 돈을 버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심한 경우에는 건축사를 ‘대동강 물을 파는 사기꾼’처럼 인식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 것 같다.
건축 관련법은 건축법 이외에도 너무 많고, 법의 해석이나 적용도 지역마다 다르게 적용된다. 정치적 이슈의 영향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법도 많고, 강화되는 경우도 많다. 새로운 심의 과정이 생기기도 하고 이로 인해 추가적인 업무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디테일과 자재에 대한 선택과 고민 등을 통해 공간의 품질까지 올리려고 하면 기본 업무 이외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또한, 설계 과정에서 다양한 관계기술자들의 협업을 필요로 한다. 구조, 기계, 전기, 토목, 조경, 각종 인증업체들과 협의해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합리적인 방향으로 설계를 이끌어 가야 한다. 협력업체들의 비용을 처리하고 나면, 건축사가 갖는 비용은 업무의 양과 책임에 비해서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설계 중 발생하는 오류나 하자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건축사가 가지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대가의 기준은 아직도 낮은 것 같다.


집을 지으려면 부동산에 가야지!
건축 상담을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축사사무소에 오기 전에 공인중개사사무소를 먼저 방문한다. 이유를 물어보면 집을 지으려면 부동산을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공인중개사는 중간에서 부동산을 중개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집을 지을 때도 부동산을 가서 물어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는 것 같다. 건축사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도 동떨어져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처음 사무실을 개소하면서 1층에 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알려보고자 노력한 적이 있다. 지금은 불가피하게 사무실이 2층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개인적으로는 1층에 위치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1층에 있을 때는 지금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건축 상담이 아닌 수리, 시공까지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이 사무실 문을 두드렸었다. 건축사사무소에서 방문을 고치거나 도배를 새로 하거나 장판을 시공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간단한 물음에도 건축사사무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설명하면서 이전 현장에서 시공을 했던 팀들을 소개했던 적이 많다. 건축사사무소가 조금 더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서, 건축이라는 행위가 자본이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 일상에서 소소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설계한 집은 비싸다!
클라이언트들 중에 아직도 건축사를 통해서 설계를 한 집은 시공비가 비싸다는 편견을 가지신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반은 틀린 말이기도 하고 반은 맞는 말이기도 하다. 시공비는 누가 설계를 했다고 해서 비싸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사가 설계하면 시공비가 올라가기는 한다. 법규에 맞고 성능이 적정한 자재들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설계를 해서 비싸지기보다는, 어떤 자재를 사용했느냐와 그 자재의 품질이나 성능이 어떤지에 따라서 시공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재의 품질과 성능보다 예산에 맞춰서 시공하는 것은 시공사가 더 잘 할지도 모른다. 비용이 높아지면 자재의 품질을 떨어뜨리거나, 디테일을 신경 쓰지 않고 시공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정한 자재인지 성능이 부족하지 않은지에 대한 검토는 클라이언트 본인이 건축업을 하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공간에 대한 디테일한 부분들은 자재와 시공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구분하기가 더 어렵다. 완성되고 나서야 결과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완성된 이후에는 다시 재시공하기도 힘들고, 비용도 더 많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글. 이선재  Lee, Sunjae 건축사사무소 그리드

 

 

이선재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그리드

 

2016년 ‘건축사사무소 그리드’를 설립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축적해 온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건축이 가져야 하는 가치를 고민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일상 속에서 만들어 낸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특별한 순간을 갖기를 바란다. 주요 작업으로는 STREET FS 사옥, 능동 작은집, 양지마을구립어린이집 등이 있다. 현재 청주시공공건축가, 서울특별시 집수리 전문관, 서울특별시 교육청 꿈담건축가, 한국어촌어항공단 공공건축심의위원회 위원,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신진건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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