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2023.12

2023. 12. 30. 09:4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It was right then, and wrong now

 

 

 

 

2년 전 이맘때쯤인 것 같다. 주택을 짓고 마무리도 안 된 집으로 이사했던 때가.
사실 4~5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집을 지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방 사람인 나와 아내는 은평구에서 7년을 살고, 아이가 두 살이 되던 무렵 조금 더 나은 주거환경과 사무환경을 찾아 올림픽공원 근처로 사무소를 옮겼다. 비용도 줄일 겸 마음 맞는 친구들 몇몇과 함께 사무소를 나눠 쓰기로 하고 우리 가족은 하남으로 이사했다. 직원도 생겼고 사무소도 어느 정도 성장하고 있던 그때 막연하게 꿈만 꾸던 집을 지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건축을 하는 많은 사람이 자기 집을 짓는 꿈을 꿀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덕분인지 도심의 밀도는 내가 살기에는 영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던 차였다. 당시 거주 중이던 하남에서 양평이 가깝고 놀러 가기도 좋아 주말이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드라이브 겸 양평으로 땅을 보러 다녔다. 그렇게 재미 삼아 다니던 것이 어느새 예산을 짜고 땅을 매입하고 집을 지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향이 좋지 않아서, 우리 예산을 한참 넘어서 등등의 이유로 수십 개의 땅을 보고서야 겨우 마음에 드는 땅을 찾았다. 땅을 사고 떨리는 마음으로 등기를 하고 설계를 하며 그해 겨울을 참 즐겁게 보냈다. 일을 하다가 여유가 나면 설계를 하고 모형을 만들어 집에 들고 왔다.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시작하면 이제 갓 말이 트이기 시작한 아이가 끼어들었다. “이건 모야, 저건 모야” 하던 아이와 깔깔거리며 집을 그려 나갔다. 그렇게 도면과 모형으로만 있던 땅을 측량하고, 고르고, 자재가 들어오고 1층이 올라가던 그쯤 아내와 서로 마주 보며 실감했다. ‘정말로 우리가 집을 짓는구나.’

그렇게 우리 가족의 첫 집이 완공되었다.
어찌어찌 이사는 했지만 여전히 남은 잔손질 때문에 아내와 아이는 당분간 처가에 가 있었다. 혼자서 집과 사무실을 오가며 일주일쯤 페인트도 칠하고 우편함도 만들었다. 엄두가 나지 않는 몇 가지 일들은 바쁘다는 핑계와 귀찮음으로 인해 여전히 마무리가 안 되어 있었지만, 우리 가족이 살기에는 지나치게 풍족한 작은 집이 되었다. 돈은 없었지만 조경은 꼭 하고 싶어서 조경 선생님께 부탁해 이런저런 나무와 풀을 심었다. 조경은 시간이 보약이라 빈약했던 첫해를 지나 사계절을 온전히 보내고 나니 지금은 솎아내야 할 정도로 풍성한 정원이 되었다. 
집을 짓고 이곳에 살며 온전히 두 해를 겪어낸 지금, 돌아보니 아쉬운 것들이 느껴진다. 
‘다락을 만들걸. 내 작업실은 별동으로 할걸. 화장실 마감은 저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그런데 또 한편으로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 보면, 그건 아니었을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실수도 했지만 결국 나름 최선의 결론을 내렸다. 그때의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괴로운 순간도 있었지만 그 과정은 꽤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의 아쉬움은 지금의 아쉬움일 뿐, 그때 나의 아쉬움은 아니다. 물론 지금 똑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영화 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선택을.

 


주택을 짓고, 주택 의뢰를 받고, 주택 설계를 하다 보니 다행히 그때의 아쉬움을 달랠 기회가 주어진다. 그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보면 그리 많은 요구사항이 있지는 않다. 따뜻하고 비가 새지 않는 집, 볕이 잘 드는 집, 아이를 위한 방과 남편과 아내를 위한 작은 취미방, 반려견을 돌볼 수 있는 아늑한 마당처럼 사람이 사는데 당연한 것들을 자신의 삶에 채워 넣고 싶어 한다. 다행히 내 집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에 그들의 집은 조금 더 나은 집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좋은 집이라는 단어 속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거기에 집주인의 삶이 덧대어져 완전한 집이 된다. 그렇게 한 가족의 우주가 온전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 집에 처음 와서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겨우 올라가던 아이는 이제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며 뛰어다닌다. 집을 짓고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인터넷으로 공유하던 아내는 그 이야기를 한데 묶어 첫 책을 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반문하던 30대, 아내와 편의점 노상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마흔쯤에는 우리 각자의 희망 하나쯤은 이뤄보자 했던 것이 어느새 그렇게 현실로 와닿아 있었다.

이제 우리 가족은 이 집에서 또 다른 꿈을 꾼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을 하며 좋은 사무소를 만들고 싶다는 꿈, 두 번째 책을 내고 싶다는 꿈, 곤충 박사가 되고 싶다는 꿈……. 앞으로도 여전히 거절당하고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면 지난 10년이 그랬듯 앞으로의 10년도 단단하게 다져질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글. 박성일 Park, Sungil 선아키텍처 건축사사무소

 

 

박성일 건축사 · 선아키텍처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스튜디오 에이엔엠에서 실무를 쌓았다. 2017년 선아키텍처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여 원주시 그림책 도서관, 여성가족 행복복합센터, 문막 복합문화센터에 당선하였다. 주택, 근린생활시설부터 공공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과 용도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정제된 건축의 아름다움을 작업에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2년부터 문호리에 집을 짓고 아내, 아이와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있다.

sunarchitect@naver.com · sunarchitectur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