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5. 09:09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Summer is short, Do not postpone your dreams, Live your present life!"
여름이 시작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여름과 겨울이 다가오면 겁부터 덜컥 난다. 이번 여름은 얼 마나 더우려나, 올 겨울은 또 얼마나 혹독하게 추우려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여름은 더 더워지고 겨울은 더 추워지는 것 같아서 한 계절 넘기는 것이 점점 더 힘들 어지고 있다. 여름의 전기요금과 겨울의 난방요금도 두 계절이 반갑지 않은 이유이다. 실제로 하루의 기온을 기준으로 헤아리는 여름과 겨울일수(日數)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니 두 계절이 유독 힘든 이유가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내게도 분명 여름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여름방학이 있는 달콤한 달력이 내 것이던 학생 때 나 휴가를 여름에만 써야 했던 입사 초년병 시절이 그랬다. 길고 지루한 기말고사가 시작되면 여름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차가운 나무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석유 냄새 풀풀 풍기는 신문을 읽던 여름. 저절로 눈 이 떠질 때까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앞마당에서 따 온 상추와 풋고추로 차린 늦은 아침을 먹던 여름. 온전히 내가 가고 싶은 휴가지를 골라 내 한 몸만 챙겨 떠나던 단출한 여름. 파도 소리를 반주 삼아 밤 늦도록 노래 부르던 여름… 그 때는 여름이 지금보다 짧았고, 뜨거워도 좋았다.
지금도 지구 다른 쪽에는 여름이 짧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러시아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나라 사람들은 여름이 오면 흥분한다고 한다. 아마도 겨울이 길었기 때문에 태양의 계절이 더 즐거울 것이다.
아래의 이미지는 여름을 맞아 흥분한 사람 중 한 명이 만들었을 것 같은 러시아의 인쇄광고다. 『아비오네로』(Avionero)라는 항공권 예약 사이트의 광고인데 파 리의 에펠탑이 다 보이지 않고 잘려서 보인다. 아름다운 바닷가의 모습도 문틈으로 보는 것 처럼 아주 조금 밖에 안 보인다.
여름이 3개월이나 된다고 휴가 계획을 미루고 있다가는 제 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여름을 보낼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비주얼에 담겨 있다. 항공편 예약 을 서두르라는 얘기다. 단 두 줄의 간결한 카피가 여름 휴가를 느긋하게 계획하려는 마음에 조급함의 불을 당긴다.
여름은 아주 짧아요
놓치지 마세요!
아비오네로_프로모션_인쇄광고_2018_카피
그림만 봐도 어디론가 휴가를 떠나고 싶게 만드는 광고도 있다.
2017년 인도네시아에서 런칭 된 『어드벤처 해먹』의 ‘달로 가는 티켓’(Ticket To The Moon) 캠페인이 바로 그것이다.
이 캠 페인은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나무 사이에 해먹을 매달고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습관에 착안 하여 멋진 경치를 배경으로 사용했다. 해변의 달, 협곡의 달, 사막의 달, 대초원의 달 모두 4편 으로 만들어졌는데 착시효과 때문에 아름다운 하늘에 걸린 초승달이 해먹처럼 보인다.어드 벤처 해먹에 누우면 아주 편안하고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카피 한 줄도 없 이 사진 한 장만으로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국민 1,105명을 대상으로 올해 하계휴 가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며칠 전 보도로 접했다. 응답자의 55.2%가 여름휴가를 계획 중이며 이 들 가운데 82.6%가 국내 여행을 생각한다고 응답했단다. 국내 여행 목적지 1순위는 32.1%의 강 원도가 차지했다.
이어 경남(12.7%), 경북(10.4%), 전남(9.9%), 경기(9.3%)가 순서대로 이어졌다. 휴가 기간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에 집중됐다. 특히 7월 말에서 8 월 초 가장 많은 이들이 휴가를 떠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7월 28일에 떠난다는 대답이 20.3% 로 가장 많았다.
전국의 거의 모든 학원이 7월 말에서 8월 초에 잠깐 방학을 하니 이 기간에 휴 가가 몰리는 것이다. 멀지 않아 해운대 해변을 가득 메운 파라솔 행렬과 강원도행 고속도로에 가득 찬 휴가 차량들이 뉴스에 나올 것이다.
그러나 휴가가 있어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름 휴가기간 동안 여행 등 특별한 계획이 없는 이들도 거의 절반에 달했다. 그들이 휴가 계획을 정하지 않 은 이유는 ▲여가시간 및 마음의 여유 부족(76.1%) ▲건강상의 이유(15.3%) ▲여행비용 부족 (12.1%) ▲돌봐야 할 가족(5.2%) 때문이라는 대답이었다. 시간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휴가를 포기하는 사람이 세 명 중 한 명은 되는 셈이다. 이 결과를 보고 2002년 온에어 된 후 지금도 인용되고 있는 현대카드 TVCM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가 떠올랐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림하고 열심히 출근하고 열심히 1년의 반을 달려온 사람들이 잠시 라도 그 ‘열심’을 떠나 게으른 며칠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6월 북유럽 에스토니아의 『노르디카』(Nordica)라는 항공사가 마이무 칼라(Maimu Kala) 라는 95살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홍보 영상을 만들어 선보였다. 그녀는 아흔 다섯 해를 사는 동 안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 세상의 다른 쪽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 하는 어린 마이무 에게 그녀의 엄마는 ‘여기도 보고 들을 것이 충분해. 일하러 가자!’고 말하곤 했다.
그 후 평생 을 고향에 살고 있는 마이무는 이제 지팡이를 짚어야 걸을 수 있는 할머니가 되었다. 마이무는 남편과 서로 의지하며 감자를 심고 화단을 가꾸는 변화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평생 고향에만 갇혀 있는 현실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다른 세상이 궁금하고 막 여섯 달이 된 손자도 보고 싶은데 불편한 다리로 어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질 기회가 왔다. 손자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이무를 위해 한 손녀가 코펜하겐행 비행기 티켓을 선물하고 그녀의 여행에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놀라며 기뻐하는 마이무! 그런데 그녀를 바라보는 남편의 표정은 밝지 않다. 같이 가자고 하니 집은 누가 돌보 냐고 손사래 치며 못 간다고 벌떡 일어서 나가버린다. 그러나 마이무는 지구 끝까지라도 가겠 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제 더 이상 꿈을 미루지 않겠다고 아흔 다섯 살이 되어 행동에 나선 것이다.
남편은 마이무를 차에 태우고 공항으로 향한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들판을 달려가는 자동차 위로 자막이 뜬다.
당신의 꿈을 미루지 마세요.
현재의 당신 삶을 사세요.
노르디카 항공_기업PR_홍보 영상_2018_카피(부분)
며칠 전, 여고 동창들과 2박 3일 일정으로 강릉엘 다녀왔다.
고등학교 2학년 설악산 수학여행 이후 거의 40여 년 만에 함께한 강원도 나들이었다. 강릉 역에 마중 나온 후배의 차에 타는 순 간 나훈아의 공(空)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들 나들이를 환영하는 웰컴 송으로 심혈을 기울여 선곡했다는 후배의 설명이었다. 난데없는 트로트 세례에 우리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곧 웃음을 그치고 무릎을 치며 가사에 공감했다. 나훈아는 특유의 구성진 목소리로 읊 조렸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지 않아도.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가 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 년도 힘든 것을 천 년을 살 것처럼…’
그렇다. 굳이 노르디카 항공의 광고를 보지 않더라도, 나훈아 노래의 가사를 듣지 못했더라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지금 나는 기적 같은 우연으로 지구라는 작은 별에 잠시 머물고 있다는 것을. 지구 반대편이 궁금하면 미루지 말고 당장 떠나야 한다는 것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나는 날마다 무럭무럭 늙고 있다는 것을!
여름은 짧다. 망설이지 말고 여름 속으로 성큼 한 걸음 내디뎌야겠다. 비행기 티켓이 없어도 갈 수 있는 곳에 해먹을 걸고 한없이 게으르게 구름을 보고 나무를 보고 새와 바람 소리를 들 어야겠다. 가버린 지난 날에 대한 미련은 거두고, 오지 않은 미래일랑 미래에 맡기고! 바로 지 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야겠다.
노르디카_홍보 영상_2018_비메오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 카피라이터 ┃ (주)프랜티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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