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최고의 계약입니다” 2018.05

2022. 12. 1. 11:07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Time is the best contract"

 

5 1일 현재 남한과 북한의 시간은 30분의 차이가 있다. 남한은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 표준시인 동경시를 사용한다. 북한은 광복 70주년인 2015 8 15일부터 한반도 중앙부를 지나는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표준시간을 정한 평양시를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이 오후 12시라면 평양은 아직 오전 11 30분이다. 남북한의 표준시가 다르다는 사실을 나는 며칠 전 남북정상회담 뉴스를 보고 알았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 남측 지역평화의 집대기실에도 서울시간과 평양시간을 가리키는 시계 2개가 걸려있었고, 이를 본 김정은 위원장이가슴이 아팠다며 표준시간을 남측에 맞추겠다고 문 대통령에게 약속했다는 것이다.

협정세계시(UTC)보다 9시간 빠른 대한민국의 표준시는 일본 표준시와 같은 시간대이다. 사실 1908 4 1일 대한제국이 표준시를 처음 시행할 때는 한반도의 중앙을 지나는 동경 127.5 (UTC+08:30)를 기준으로 표준시를 정하였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인 1912 1 1일 조선총독부가 동경 135(UTC+09:00) 기준인 일본 표준시에 맞춰 우리나라의 표준시를 변경하였다. 독립 후 1954 3월 이승만 정부가 동경 127.5도 기준으로 되돌렸다가 1961 8 10일 박정희 군사정부가 동경 135도 기준으로 다시 변경하여 오늘까지 쓰고 있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표준시의 정통성은 어쩌면 평양시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북한이 선뜻 표준시를 남한에 맞추어 바꾸겠다고 하니 숨겨진 속셈이 무엇이든 통 큰 양보요 결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의 집에 걸린 시계                                                        사진출처 : 연합뉴스

 

표준시 통일을 전하는 뉴스와 평화의 집에 걸린 벽시계 사진을 보고시간은 사랑이라는 슬로건으로 2012년 제작된 홍콩의 티투스(Solvil et Titus) 시계 광고가 생각났다. 광고에는결혼계약등록원이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결혼만 있고 이혼은 없는 세상에서 일을 한다. 대신 사람들은 결혼할 때 결혼기간을 선택할 수 있다. 기간이 다 되면 계약을 연장할 수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에는 없는 제도이지만 광고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계약결혼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4분이나 이어지는 영상의 초반에는 결혼계약을 등록하러 온 커플들이 등장한다. 모두들 행복한 표정들이다.

그 중에는 나이든 아름다운 부인과 헌신적인 남편이 있다. 이 노부부는 함께 오래 살았고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데도 매 번 1년 단위로만 계약을 연장한다. 10, 20년 계약하지 않는 것일까? 부인이 치매에 걸려 시간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매 년 청혼을 하고 결혼계약서에 서명을 함으로써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에게 1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을 선물하는 것이다.

 

티투스 시계_TVCM_2012_스토리보드①

 

광고 속의 결혼계약등록원은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계약기간을 가지고 다투고 또 작은 일로 결혼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도 불화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런 의구심 때문에 그는 여자 친구와의 결혼계약을 망설인다. 여자 친구는 결혼하자고 결혼계약서를 내미는데 나중에 이야기 하자며 대답을 미루고 출근하고 만다.  그런데 바로 그 날, 1년씩만 계약하던 노부부가 결혼계약서의 기간을 쓰는 칸에 100년을 써 넣고 사인을 한다. 결혼계약등록원이 남편에게 이유를 물었다. 부인의 상태가 악화되어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의사의 선 고를 들었는데 다음 생에도 부인과 함께 하고 싶어서 100년을 계약한다는 것이 남편의 대답이다.

 

티투스 시계_TVCM_2012_스토리보드②

 

시한부를 선고 받았지만 100년을 더 함께 하기로 계약하고 봄볕을 받으며 행복해 하는 노부부를 보며 우리의 주인공은 여자 친구에게 시계를 선물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모든 일을 제쳐두고 여자친구에게 달려간다. 함께 있겠다는 대답을 하기 위해서. 그러나 남자가 도착하는 순간, 그의 미지근한 반응에 상처 받았던 여자 친구는 짐을 꾸려 택시를 타고 막 떠나고 있다. 택시는 떠나고 남자는 필사적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지만 택시를 따라잡지 못한다. 실망해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남자. 걷다가 뒤돌아 보니 택시를 돌려서 되돌아온 여자 친구가 서있다. 그리고 감동의 포옹에 이어지는 카피 한 줄.

 

“시간이 최고의 계약입니다.”

 

시간은 힘이 세다. 꼭 긴 시간만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찰나에 가까운 1초의 시간 동안에도 우주를 움직일만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30여 년 전 일본의 세이코 시계는 그 1초라는 짧은 시간의 힘을 광고로 만들어 보여주었다.

 

티투스 시계_TVCM_2012_스토리보드③

 

   처음 뵙겠습니다.

   이 1초의 말 때문에 평생의 설렘을 느낄 수도 있다.

   감사합니다.

   이 1초의 말 때문에 사람의 상냥함을 알 수도 있다.

   힘 내!

   이 1초의 말 때문에 용기가 되살아날 수도 있다.

   축하합니다.

   이 1초의 말 때문에 행복이 넘칠 수도 있다.

   미안해요.

   이 1초의 말 때문에 사람의 약한 면을 볼 수도 있다.

   안녕…

   이 1초의 말이 평생의 이별이 될 때도 있다.

   1초에 기뻐하고 1초에 운다.

   일생 동안 열심히, 1초.

   (일본 세이코_TVCM_1985/2008_카피)

 

이 광고는 1984년에 제작 된 라디오 CM TV광고로 만든 것이다. 1초에 대해 말하는 카피에 맞추어 교실, 도서관, 미술실 등 학교 안의 다양한 장소가 정지화면으로 보여진다. 이 광고는 1985년 연말가는 해 오는 해에서 단 한 번만 방송되었다고 한다.

 

일본 세이코_TVCM_1985_스토리보드

 

1985년 연말에 단 한 번 방송되었던 세이코 시계의 광고는 2008년 다시 리메이크 되었다. 광고 카피를 결혼식 연설이나 학교 수업에 쓰고 싶다는 문의가 종종 와서 동일한 카피에 완전히 새로운 영상, 음악, 나레이션을 얹어 현대의 CM으로 다시 만들었다고 세이코는 밝히고 있다. 이 두 번째 CM 2008 6 10 일 시()의 기념일에 단 한 번 방송되었다고 한다. 

 

일본 세이코_TVCM_2008_스토리보드

 

한동안 나는 일과 가사, 육아까지 바쁜 날들을 보내느라 늘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나의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유한한 시간을 함께 나누는 것은 큰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어떤 비싼 물건보다 시간을 내게 내어주는 사람이 귀하게 여겨진다. 기꺼이 북한의 시간을 남한에 맞추어 내어준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에서 티투스 시계가 이야기한시간은 최고의 계약이고시간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떠올리는 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그래도 흐뭇한 뉴스임에는 틀림없다.

불행했던 한국전쟁이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로 멈추고 65년이 흘렀다. 지난 65년 동안 남과 북은 불신을 키웠고 이해나 배려보다는 오해와 분노를 상대방에게 퍼부었다. 그 많은 상처가 한 순간에 다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의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오고 가는 그 1초의 시간은 우리에게 평화와 희망의 설렘과 감동을 주기에 결코 짧지 않았다.

대학 동창들은 3년 뒤 버스를 대절하여 금강산 비로봉 능선을 종주하는 산행을 하자고 공지를 띄웠다. 이 농담 같은 계획에 하루 만에 60여 명이 가겠다고 신청을 했다. 금강산에서 그치지 말고 기차 타고 평양을 지나 베를린까지 가자는 말이 기분 좋게 오고 간다. 옥류관 냉면 대신 시내에서라도 냉면을 먹자고 단체 문자방이 소란하다. 역사책에 기록될 시간을 살고 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금의 기대가 현실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시간은 걸릴지 모르겠지만, 아침에 서울을 떠나 평양에서 냉면으로 점심을 먹고 신의주에서 저녁을 먹는 꿈 같은 일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어린 시절 소풍처럼 그 날이 기다려진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길지 않기를 바란다.

 

 

) 이 글을 마친 며칠 후인 5 5 0시를 기해 북한이 한국보다 30분 느렸던 자체 표준시평양시간 30분 앞당기면서 남북한의 표준시가 다시 같아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aYFP7zvSklM
(티투스 시계_TVCM_2012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yFejf6D97m8
(일본 세이코_TVCM_1985_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22&v=OJjgepzOUSA
(일본 세이코_TVCM_2008_유튜브 링크)

 

 

.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프랜티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