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매는 책가방, 평소보다 하늘이 커 보였습니다” 2018.03

2022. 11. 30. 23:07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The new backpack to put on, the sky looked bigger than usual"

우리 둘째는 만 네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정확하게는 만 다섯 살에서 네 달 모자라는 56개월에 초등학생이 되었다. 날마다 소풍날처럼 햇살이 환하던 남반구에 살 때의 일이다. 그 나라의 초등학교는 0학년인 킨더가튼부터 6학년까지 7년제였고, 만 다섯 살이 되는 해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학기가 시작하는 2월에 만 다섯 살이 채 되지 않았더라도 그 해 7월 이전에 다섯 살이 될 예정이면 입학이 가능했다. 많은 엄마들이 만 다섯 살이 지날 때까지 1년을 더 기다렸다가 학교에 보내는 선택을 하는데, 나는 둘째를 일찍 학교에 보냈다. 프리스쿨 비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프리스쿨은 하루 6시간 비용이 35천원 정도. 만약 1주일에 5일을 보낸다면 한 달에 100만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나는 무상교육인 초등학교 0학년이 실제로 유치원 과정인지라 일찍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2 1일이 첫 등교일이었을 게다. 입학식은 따로 없었다. 차에서 내려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선생님에게 아이를 데려다 주었다. 초록색 교복을 입은 100여 명쯤 되는 아이들이 반 별로 담임 선생님의 인솔 아래 교실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새내기들은 등교 첫 날부터 한 시간의 에누리도 없이 꼬박 6시간을 학교에서 지내야 했다. 그 나라에서는 0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인 12학년까지 모든 학교의 수업시간이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로 똑같았다. 저학년이라고 짧게 수업하는 예외가 없었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멀어져 가는 아이들을 지켜 보았다. 영어를 거의 못 하는 아이가 하루를 어떻게 지낼지 걱정이 앞섰다. 싸가지고 간 점심 도시락과 간식은 제대로 먹었을지, 화장실에는 잘 갔을지, 낮잠 시간도 없는 여섯 시간을 알아 듣지도 못하는 언어 속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아이가 학교에 있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후 3시가 되기 전에 학교 운동장으로 다시 가서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담임들이 반 아이들을 인솔해 나와서 데리러 온 부모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한 뒤 하교를 허락했다. 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뒤돌아서 걸어오던 아이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힘들었으니 엄마가 오라는 신호였다. 내가 달려가자 아이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우리 아들 잘 지냈어? 많이 힘들었어?”

“엉엉… 못 걷겠어요.”

나는 아이를 들쳐 업었다. 등에 업힌 아이가 가뿐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가벼운 아이를 품에서 뚝 떼어 낯선 학교에 혼자 종일 두었구나,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일본의 한 광고 안에서 그 때의 내 아이와 똑 같은 표정을 한 꼬마를 발견했다.

 

소니 핸디캠_TVCM_2005_주인공 소년

 

광고 영상 속에서 이 소년은 교복에 모자까지 쓰고 타박타박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 등에 매달린 책가방이 발걸음에 따라 털렁털렁 흔들린다. 화면의 70퍼센트는 파란 하늘이다. 그 하늘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노란 병아리 색깔 모자를 쓴 유치원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지나간다. 앞만 보고 걷던 아이가 뒤를 돌아본다. 아이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 카메라. 아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원망스러운 표정이다. 입을 삐쭉거리고 코를 훌쩍이면서 건너편을 바라다 본다. 건너편에서는 엄마가 아이의 첫 등교 모습을 캠코더로 찍고 있다. 엄마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있다. 훌쩍 자라 학교에 가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가기 싫어하는 모습에 마음 아프기도 한 표정이다.

 

소니 핸디캠_TVCM_2005_스토리보드

 

서정적인 느낌의 BGM 위로 엄마의 목소리가 흐른다.

 

     NA)      처음 매는 책가방,

                 평소보다 하늘이 커 보였습니다.

     (소니 핸디캠_TVCM_2005_카피 일부)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엄마 마음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초등학교 입학식을 소재로 삼은 비슷한 광고가 있었다. 2003년 만들어진 푸르덴셜생명의 신문광고이다. 활짝 웃는 초등학생 여자 아이의 얼굴 위로 엄마의 마음을 담은 편지가 보인다.

 

푸르덴셜생명_신문광고_2003_이미지

 

    기억나니? 너의 입학식

    아무 것도 모르는 너는 코를 훌쩍거리며

    엄마 옷자락을 잡고 놓질 않았지.

    올망졸망 서있는 아이들 속에 너를 떼어놓고 저 멀리 서있으려니

    엄만 글쎄 눈물까지 나더라…

    왜 그랬을까?

    어느덧 초등학생이 된 우리 딸, 멋진 숙녀로 자랄 때까지,

    적어도 엄마 아빠보다 더 너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옆에서 지켜줘야 할 텐데…

    (푸르덴셜생명_신문광고_2003_카피 일부)

 

어디 엄마뿐이랴. 아빠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때는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같은 해 제작된 푸르덴셜생명의 TVCM은 그런 아빠의 마음을 광고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광고 영상을 들여다 보자. 1973 3월 입학기념이라고 적혀있는 흑백사진 속에는 이름표를 가슴에 단 아이가 엄마, 아빠 사이에 서있다. 사진 찍는 일이 자주 없던 시절이라 가족 모두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있다. 이름표 뒤에 매달린 흰 손수건, 70년대의 옷차림과 머리 모양이 지금의 눈으로 보면 촌스럽기도 하다.

세월이 흘러 그 액자 속의 아이가 아빠가 되어 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나이가 되었다. 아빠가 된 소년은 액자 속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읽는다. 30년 전에 쓰여진 그 편지 속에서 이제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는 아버지는 입학하는 아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 자식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일이 서툴렀던 옛날의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쓴 편지다. 그 편지를 읽는 아들의 표정에 감사와 감동이 어린다.

 

푸르덴셜생명_TVCM_2003_스토리보드

 

    편지글)  걱정 마라 아들아!

                  아빠보다 더 멋진 남자로 클 때까지

                  아빠가 널 꼭 지켜줄게.

    NA)       당신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금, 러브카드를 쓰세요

                 푸르덴셜생명

    (푸르덴셜생명_TVCM_2003_카피)

 

전국 대부분의 초고등 학교가 3 2일 입학식을 했다. 특히 초등학교 신입생을 둔 부모라면 8칸 공책을 사고, 줄이 없는 연습장도 샀을 것이다. 가지런히 깎은 연필과 지우개로 필통을 채우고, 색연필과 36색 크레파스도 준비했을 게다. 가방을 싸고 실내화를 챙기고, 부모도 아이도 조금은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입학식 날 아침을 맞이했겠다. 엄마의 손을 놓고 혼자 제가 속한 반을 찾아 가면서 아이는 자꾸 뒤돌아 보고, 엄마는 안쓰러움을 감추고 어서 가라 손짓을 하고그렇게 엄마와 아이는 집보다 큰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다. 입학식 날의 하늘은 더 넓어 보이고, 바람은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등교 첫 날 주저 앉아 울던 내 둘째는 4년 전 꽃샘바람 불던 날, 환하게 웃으면 대학 입학식에 참석했다. 재롱이 어여뻐 훌쩍 커버리는 게 아까웠던 아이가 어른의 세계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이제 더 이상 뒤돌아 보지 않게 된 아이는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걷고 있다.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곳으로 힘차게 달려가는 아이를, 이제는 반대로 엄마인 내가 자꾸 뒤돌아 보라고 부른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고 엄마는 나이 들어, 자꾸 뒤돌아 보는 사람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TToDwkZpY4 
(소니 핸디캠_TVCM_2005_유튜브링크)

http://www.ad.co.kr/ad/tv/show.cjsp?ukey=1347051
(푸르덴셜생명_TVCM_2003_광고정보센터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주)프랜티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