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한 부분을 만드는 일 2024.7

2024. 7. 31. 09:3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Making a part of the Earth

 

 

 

독립하기 전에 다녔던 회사 실무 5년 차에 담당했던 프로젝트 일화이다. 어느 회사의 사옥 신축 프로젝트였다. 1년여에 걸쳐 계획설계부터 실시설계까지 전담했고, BIM 모델 속을 수백 번 돌아다니면서 꼼꼼하게 설계했다고 생각했다. 자신 있게 납품했고, 상주하며 현장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착공식 후 지하와 기초공사를 위한 터파기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인부들의 고함소리와 중장비의 엔진 소리, 파낸 것을 와르르 쏟아내는 소리가 들렸고 정신을 깨우는 매연 냄새가 났다. 파헤쳐서 벌겋게 드러난 지구의 한 부분을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대로 설계했겠지? 최선의 안이었겠지?’ 수십억짜리 건물의 공사가 내가 그린 도면을 따라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건축 행위의 무게를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다.

어느 날 TV에서 경제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어느 도시에 전설적인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가 한 대 생겼는데 시장, 재벌, 음악인 중 누구에게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맡길 것인가를 질문하는 내용이었고, 재화 가치의 최대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건축에 대입해 보았다. 어느 도시에 수백억짜리 공공시설을 지을 계획인데 누구에게 설계를 맡길 것인가? 설계자를 선정하기 위해 설계공모를 진행한다. 여러 회사에서 몇 주 간 고생하며 많은 대안을 검토할 것이고, 최선이라 생각되는 다양한 안들이 제출된다. 합의를 통해 선정된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한다. 주어진 조건에서 가장 우수한 안, 다큐멘터리 내용에 따르면 최대의 가치를 찾아낸 안이 뽑힐 것이고, 수개월의 설계 기간과 시공 기간을 거쳐서 건물이 만들어질 것이며 결국 지구의 한 부분으로 남겨져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사용할 것이다.
설계공모로 설계안을 뽑는 것은 익숙한 내용인데, 과연 설계안이 가진 최대의 가치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본다. 확신하건대 이는 명료한 몇 개의 문장으로 정의되는 게 아닐 것이다. 원자 궤도의 개념도처럼 확률이 높은 어렴풋한 영역과 범위 정도의 이미지로 설명되지 않을까. 설계의 과정에서 하게 되는 수많은 고민과 선택의 과정을 추적하면서 좀 더 접근해 보겠다.

설계과정에서는 매 단계와 순간마다 선택과 판단을 한다. 주변 맥락을 의식해서 건물을 어떤 자세로 놓을지, 주변 상황을 어떻게 유리하게 활용할 것인지, 레벨을 어떻게 계획해서 공사비를 절감하고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들 것인지, 건물을 어느 방향으로 배치할 것인지, 요구하는 최대 면적과 공사비, 법적 제약과 줄다리기하면서 공간적 개념을 어떻게 녹여낼 것인지, 합리적인 평면을 계획하는 동시에 어떤 근사한 공간을 만들 것인지, 현장 상황과 공사비와 용도를 고려했을 때 최선의 구조형식이 무엇일지, 마감재료로 뭘 고를 것이며 그 재료에 어울리는 표현법과 디테일은 무엇일지, 창문의 크기와 높이, 개폐 방향은 어떻게 하고 어떤 분위기의 빛을 들일 것인지, 난간은 무슨 재료로 어떻게 고정할 것인지, 냉난방과 환기는 어떻게 하며 스위치와 콘센트는 어디에 둘 것인지… 코앞에 보이는 줄눈의 색상과 크기부터 하늘에서 보이는 건물의 모습까지. 마우스 휠로 확대하고 축소하며 보는 캐드화면의 거의 모든 범위와 단계마다 고민하고 선택한다. 검토가치가 낮은 생각을 걸러내더라도, 가능한 대안을 조합한다면 거의 무한에 가까울 것이다. 무한의 가능성 속에서 선택한 가치의 묶음이 균형 잡히고 설득력이 있어 대다수 사람이 공감한다면 그것이 최대의 가치이자 최선의 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수한 대안을 현실적으로 다 검증할 수 없기에 정답이란 없을 것이고 오직 최선의 안만이 존재할 것이다. 무한의 가능성 속에서 최선의 가치 묶음을 찾아내는 것이 건축사가 하는 일이라고 정의해 본다. 

건축의 무게는 사용된 물질의 무게만이 아니라 생각한다. 어떤 시설을 만들어서 사회를 보다 윤택하게 만들고픈 염원과 사람들 간의 합의, 수백억의 돈을 마련하는데 드는 노력, 짓기 위해 지구로부터 빌려오는 수만 톤, 입방미터의 물질과 수백 노동자의 노동력, 지어진 뒤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간 사용할 사람들의 안전, 편리함, 만족감… 지칭하기 힘든 모든 유형의 것, 무형의 것들의 응결체가 건축이고 건축은 그 모든 것의 무게를 짊어진다. 건축사는 유무형의 자원을 가지고 지구의 한 부분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사회의 대표 선수인 것이다. 인간이 만드는 것 중 가장 크고 무거운 일일 텐데 가벼운 논리만으로 결정되는 경우를 보면 그 기회비용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건축사는 그 무게를 의식해서 노력하지 않을 수 없고, 사회는 그 노력을 합당하게 인정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거창한 말을 꺼낸 시점에서 과연 나 스스로는 잘 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나름 노력한다 생각하지만 역시나 생존이 급한지라 제한된 시간과 자원 속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모습을 보며 아직 멀었다고 크게 반성한다. 사회의 분위기는 어떠한지 물어본다. 경기가 위축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결과 경쟁은 첨예해졌고 제살 깎는 경쟁 이야기가 들린다. 날이 갈수록 규제는 촘촘해지고 절차는 늘어난다. 실수와 방심이 쌓이고 드러나면서 권한도 잘려나간다. 설계공모 참가를 고민하게 하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수도권 대규모 프로젝트와 지역 소형 프로젝트의 기획력, 발주처의 의식, 시공자 및 협력업체의 수준, 설계비의 편차를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하고 건축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과 이해도 또한 그렇게 느껴진다. 건축의 부동산적 가치만을 따지는 분위기, 건축사가 왜 필요한지 모르고 건물은 시공자든 누군가에 의해 그저 지어질 것이라는 인식, 설계비는 무한정 타협할 수 있는 것이라 여기고 심지어 설계를 공짜로 해줄 수 없냐는 인식도 여전히 있는 것 같아 힘이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보인다. 10여 년 전 실무를 시작할 때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와 비교해 보면 불필요한 관행은 일부 없어졌고, 절차는 개선되었으며 건축사에 대한 대우와 건축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 나아지는 것 같다. 1년에 1센티미터도 못 움직이는 지각판처럼 더디긴 하지만 말이다. 더 나은 건축 환경을 만들려는 집단과 개인의 의지가 있고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천천히,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 옅은 희망이 느껴진다. 10년 뒤 후배와 나 스스로가 더 좋은 분위기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나도 그 의지에 동참할 것을 다짐한다.

마음껏 벌려놓은 꿈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고민하며 사무실 작은 싱크대에서 컵을 씻는데, 마침 보이는 건축사 윤리선언서의 첫 번째 선언문이 새삼 와닿는다. “건축사는 지구환경을 보존하고, 사회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한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앞에서 논의한 것과 비슷한 내용이 첫 번째 선언문인 것이 반갑다. 내가 하는 일은 지구의 한 부분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라는 확신과 멋진 기분으로 글을 마친다.

 

 

 

 

글·사진. 박도현 Park, Dohyun 박도현 건축사사무소

 

 

박도현 건축사 · 박도현건축사사무소

 

대구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 건축사(KIRA)이자 공학석사이다.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 피그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하며 BIM 전문경험, 다양한 규모 프로젝트의 설계부터 감리까지 경험하고 2020년 개소했다. 익숙한 것,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특별함이 싹트는 기작을 연구하면서 작업에 반영하고자 노력 중이다. 지구와 환경, 문화와 인류문명에 관련된 다양한 일에 관심이 많다.

 

dhp@dhpa.co.kr · http://www.dhp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