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31. 11:0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To receive recognition for the value of the process
“ 업무대가 정상화를 위해 과정의 가치에 사회적 공감 필요 공간을 매개로 더 많은 이들의 현재와 맞닿는 이야기 전해야 ”
건축의 복합성과 비용산정의 난해함
설계비를 산출할 때면 매번 번민에 빠진다. 현실적인 운영비, 예측되는 변수에 대한 위험부담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워낙 사전에 큰돈이 드니 건축주 입장에서는 선뜻 수긍하기가 어렵다. 고심 끝에 제시하면 돌아오는 답은 십중팔구는 ‘비싸다’는 것이다.
설계용역비 산정기준을 갖추기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협회 누리집을 통해 공사비를 통한 설계비 산정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협의가 조금이나마 수월해져 감사하게 잘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을 강제하는 것에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모든 프로젝트마다 다양한 조건과 입장과 복합적인 상황이 다를 터인데 이를 세분화해서 수치화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리모델링의 경우 단순 면적이나 공사비로 산출된 업무대가보다 실질적으로는 더 많은 품이 들 텐데 이를 일괄적으로 적용하기는 부작용이 크다. 기준보다 더 많은 품이 드는 용역에서는 기준이 오히려 제약이 된다. 용역비 지정이 사회적 합의 없이 이루어진다면 적정한 설계대가의 요구가 업계의 암묵적 담합으로 인식될 여지가 있다.
시장가격과 현실과의 괴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은 시장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이런 관점에서 설계대가는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는 균형가격으로 볼 수 있다. 고도성장 시기 우리는 도시를 세워냈다. 모든 것을 그저 빨리 만들어내야 했던 그 시기를 거치며 질적 성장과 가치를 논하는 방법은 미뤄두었다. 일이 넘쳐나던 그 시기 건축사는 유망직종이었고 전성기를 지나며 점차 힘을 잃어갔다.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고 금리까지 오르며 지을 일은 줄어드는데 자격자는 늘고 있다. 많은 부분이 전산화되면서 예전만큼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젊은 건축사들은 이 게임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자칫 치킨게임으로 흐르기 쉬운 구조이다. 균형가격에 의한 설계대가는 현실적인 운영비와 괴리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건축사의 업무를 건물을 짓기 위한 행정적 행위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면 시장은 극히 제한적이다. 업역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쓸데없는 일을 늘리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공간에 관한 모든 영역이자 그 모든 과정이고 건축사는 이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자격을 얻고 수행하는 이들이다. 하나의 건축물이 지어지기까지 많은 이의 노고가 들어간다. 기획부터 설계공모를 거쳐 각종 자문과 심의, 감리와 설계의도구현, 이 과정에 대한 대가의 정상화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이 모든 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결국 제대로 된 비용을 위해 먼저 우리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과정의 효용과 비용
대량생산된 기성품을 사는 것에 익숙해진 지금, 맞춤품인 건축의 과정에 대한 노고를 먼저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물건을 만들기 전 이를 구상하기 위한 비용을 먼저 요구하는 유일한 업종이 아닐까. 무언가를 그려내기 이전에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에 이르는 큰 비용을 실체 없이 요구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무것도 없이는 계약조차 할 수 없으니 결국 불확실한 상황에서 먼저 그림을 그리는 소위 ‘가설계’라는 악순환이 전개된다. 공짜로 계획안을 받아보는 것이 관행이 되어 다들 쉽게 요구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완공된 건축물 만을 상품으로 본다면 그 과정에 드는 수고에 대한 비용은 줄일수록 현명한 소비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과정의 무수한 고민과 노력은 사라지고 무의미해진다. 사실 우리의 업무는 경제적 관점에서도 이득인 경우가 많다. 규모 대비 2/3 수준의 예산 안에서 공사비를 조율해내 완성한 공공건축이 호평을 받았던 경우도, 차별화된 전략으로 지어진 공동주택이 주변 시세를 상회하며 완판되어 사업적으로 성공한 일도 과정의 노력이 이룬 것이다.
겪어보기 전에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을 가지는 건축주는 많이 없었다. 그러기에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살면서 거치는 공간들이 건축이라는 행위와 무관할 수 없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건축사의 업역을 접할 기회조차 없고 명칭조차 정확하게 아는 이가 흔치 않은 현실이다. 건축주의 입장을 경험하는 이는 극히 소수이고 많은 이들은 이미 지어진 집을 구매할 뿐이다. 국민 절반 이상의 주거형태가 아파트인 나라에서 시공사 이름을 걸고 짓는 표준타입의 유닛에 사는 사람들에게 건축사라는 존재는 살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이일 뿐이다. 물론 아파트에도 많은 이들의 노고가 들어가지만 그에 대한 가치를 의식하기는 어려운 구조이다.
가치소비의 시대, 가치의 인정
사회적 인식을 따지자면 지금은 건축산업 전반의 위기이다. 작금의 현실에서 건축문화와 설계과정의 가치를 논할 수 있을까. 건설산업 관련해서 부정적인 뉴스들이 도배된다. 그걸 지켜보는 답답함은 대중을 향해 전문가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의 부재였다. 건축설계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부터 지향하는 바를 공유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가는 과정인데 믿지를 못하고 불신이 쌓여간다.
건축, 공간, 도시, 우리가 만드는 가치들과 관련 없는 이는 없다. 가장 보편적인 가치를 다루기에 건축사는 건축주, 그리고 이를 넘어 대중과 소통하며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시대가 달라졌다. 유튜브를 보면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대학 시절 신선한 관점의 강의로 인기였던 교수님이 유튜브를 개설했는데 구독자가 100만 명이 넘었다. 신간이 나오면 베스트셀러다. 어쩌면 대중이 먼저 이에 목말라 있었는지도 모른다.
장래에 기대되는 효용의 가치를 따져 가격이 결정된다. 결국 가치를 인정받아야 제대로 된 비용을 받는다. 시장은 가치 있는 것(실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더 큰 가격을 매기고 있다. 한 끼에 수십만 원을 지불하고 오마카세를 즐기고, 명품 구매를 위해 오픈런을 뛴다. 현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람들이 가치소비를 인정한다는 거다. 소비자가 느끼는 가격의 적정을 얘기하기 위해 그들이 느끼는 가치를 실제 업역 수준으로 키워야 한다. 좋은 결과물과 과정의 고민이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좋은 가치를 남기는지 피부로 느껴져야 한다.
일상적 언어로 전하는 공간의 힘
대중과 소통을 한다면 이를 다루는 매개는 공간이어야 할진대 가장 많은 이들이 접하는 지점이자 의미를 전달하기에 좋은 접점은 공공건축일 거다. 하나의 공공건축물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의 노고가 들어가는지, 의미 있는 사회적 담론들이 오가는지, 그 과정의 이야기가 모두에 전달되었으면 한다. 설계공모 심사의 과정과 결과물들을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건축사들 사이에서 담론이 공유되는 지점들이 보인다. 이런 부분이 대중에 확장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방식은 건축의 고고한 벽을 넘어 일상적이었으면 한다. 건축사들만의 벽을 깨고 현재의 콘텐츠와 미디어와 연계되고 공간과 연계된 다양한 분야와의 콜라보를 통해 알려지길 원한다. 우리의 결과물은 공간을 다루기에, 그러기에 너무 좋은 일이고 사실 그러기 위한 일이었다. 의도하고 고민한 이의 노고가 드러나기를, 그것이 삶을 얼마나 다채롭게 하는지, 얼마나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어내는지 많은 이들이 의식하게 되길 바란다.
우리 동네에 들어서는 시설에 관심을 가지고 어떠하길 바라는지 이야기하고 그런 장소를 경험한 이들이 많아져서 결국은 좋은 공간의 기억을 지닌 건축주를 많이 만나게 되길 꿈꾼다. 공간의 힘을 믿고 젊은 무명의 건축사의 제안을 가장 경청하고 존중하던 건축주는 어린 시절 세계적인 건축사가 설계한 집에서 유년을 보낸 이었다.
건축의 긴 과정을 함께 하기 위해 적절한 비용 산정이 절실하다. 삶을 위한 생각을 전개하고, 이를 위한 그림을 그려가고, 그 지난한 과정을 조율하기 위해 우리의 역할을 되찾고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조회수와 좋아요가 돈이 되는 세상이다. 관심과 공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공론화되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수록 힘이 실린다. 어쩌면 이를 통해 공공건축 예산의 현실화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범접하기 어려운 고고한 건축담론은 살짝 내려두고 더 많은 이들의 현재와 맞닿기를. 그래서 결과는 더 실질적이고 직접적이고 효과적이길 바란다.
글. 최지안 Choi, Jian 건축사사무소 이안서우
최지안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이안서우
최지안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경험한 후 2015년부터 이종철과 함께 건축사사무소 이안서우를 개소하여 활동하고 있다. 건축주와의 만남부터 시공까지 모든 과정을 중시하며,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건축에 가치를 두고 이를 찾아가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간과 공공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며,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 부문(2022)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eanseow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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