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31. 11:1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The need to establish a fair reward for work felt at the Architecture Fair
“ 업무 대가 기준의 필요성 저가 덤핑 방지, 건축사의 격을 높이고, 건축 서비스 산업의 지속 가능성 도모 ”
건축박람회 참가와 그 한계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회사를 알리기 위해 건축박람회에 참가해 왔다. 6.6제곱미터 남짓한 부스에 그동안 설계한 건축 패널을 전시하고, 브로슈어와 리플릿, 명함 등을 준비해 비치해 뒀다. 아주 오래전부터 매년 방문하던 박람회였기에 처음 참가했을 때의 감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참가했고 그곳에서 강연도 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참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 건축사사무소가 저비용으로 인허가만 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 고정관념을 바꾸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곳에 참가할 당시만 해도 박람회에 참가하는 건축사사무소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의 작은 움직임이 나비효과를 발휘해 건물을 지을 때는 ‘설계’부터 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생각이 사람들에게 인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전시하며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나비효과는커녕 나의 날갯짓이 뭉개져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박람회에 가면 ○○건설회사 혹은 ○○하우징 같은 전원주택 또는 목조주택 전문 건설회사들이 대형 부스를 차려놓고 홍보를 한다. 나 역시 그런 곳을 방문해 구경하고, 그곳에서 파는 책자들을 사오기도 했다. 멋지게 디자인된 건물과 시공 방식을 보여주는 사진들. 그곳에서 얻는 정보는 일반인은 물론 학부생들에게도 유익하기에, 학교 강의를 할 때 박람회가 열리면 학생들에게 꼭 다녀오라고 권장했다. 다녀온 학생들에게는 나름의 가산점을 주기도 했다. 그곳에서 보고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하지만 그런 박람회에 자주 다녀오는 사람일수록 건물을 지으려면 시공회사부터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이 우려됐다. 정말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강연도 하고 부스에서 홍보도 해봤지만, 나의 작은 외침은 박람회의 소음 속에서 웅얼거림으로 사라져버렸다.
○○하우징 같은 곳에 가면 시공은 물론이고 설계와 감리까지 모두 책임진다고 돼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평당 얼마짜리 건물을 보고 계약하고 예산을 잡는다. 설계도, 감리도, 시공도 모두 평당 얼마면 해결되는 그런 곳이 바로 그 박람회다. 나도 그곳에서 상담을 받아봤다. 넌지시 설계비는 얼마냐고 물었더니, 자기네 설계팀이 있어서 다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허가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200만 원 정도 드는데 그것도 자기네가 다 알아서 해준다고 덧붙였다. 기가 막혔다. 200만 원짜리 인허가라니. 그들의 홍보 방법보다 200만 원을 받고 인허가를 하는 건축사사무소가 괘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그들이 얼마를 주고 설계를 하고 인허가를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예 근거 없는 비용은 아닐 터였다. 왜 우리의 가치가 그렇게 바닥을 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우리는 최저 설계비 기준이 없을까?
건축사 업무 대가 기준의 역사와 필요성
건축사법에 대가 기준이 명시돼 있던 시절이 있었다. 1963년 건축사법에 따라 건축사협회가 건설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대가 기준을 정하도록 규정됐으나, 1999년에 해당 조문이 삭제됐다. 2008년에는 공공 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 범위 및 대가기준이 제정됐다. 1999년에 해당 조문이 삭제된 이후로는 공공 발주사업에 대한 대가 기준만 존재하게 됐다. 건축사의 업무는 공공 발주보다 민간 발주가 더 많은 상황인데, 왜 민간 발주사업에 대한 대가기준은 없는 것일까?
독일과 일본은 공공과 민간이 사용하는 건축 설계 대가기준을 법제화했고, 영국의 경우 건축사협회에서 발행한 건축 설계 대가표를 제공한다. 미국의 경우 건축 설계 대가기준은 없으나 매년 대가 통계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공공 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 대가기준에서는 ‘기획 업무’, ‘계획 설계’, ‘중간 설계’, ‘실시설계’로 세분화하고, 건축물의 종류를 구분해 대가 요율을 산정해 놓았다. 그러나 민간 발주사업의 경우, 업무 대가기준이 없다 보니 계획 설계는 당연히 서비스처럼 제공되고, 종류별 구분이나 도서의 양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평’ 단가로 계약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박람회에 나오는 건설사와 거래하는 건축사사무소처럼 인허가를 200만 원이라는 금액에 하는 곳도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건축사협회는 의무가입 제도를 도입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건축사가 입회해 있는 상황을 활용하면, 해외의 사례처럼 건축 설계 대가기준을 제시하고 따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곡돼 있는 건축사 업무대가의 정상화가 절실하다.
우리는 이미 공공 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 범위 및 대가기준을 제정해 놓고 있다. 이 기준을 민간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면 공공과 민간의 업무 대가가 동일해지고, 설계 결과물의 수준도 공공에 납품하는 수준에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업무 대가뿐만 아니라, 공공과 민간의 설계 프로세스를 통일시킴으로써 건축 관련 분야의 질적 향상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법제화를 할 수 있을까? 많은 제도적 한계가 있겠지만, 몇 가지 방법을 고안해 봤다. 보증보험, 세금계산서, 그리고 세움터를 잘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설계의 종별, 난이도별로 보증보험을 체결하고, 그 영수증을 인허가 시 세움터에 첨부하게 하면 설계비 덤핑의 대부분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증보험에서 산정된 설계비 전액에 대해 세금계산서를 발부하고, 준공 접수 시 세금계산서를 세움터에 첨부하게 하면 설계비를 대가기준보다 낮게 받을 수 없지 않을까?
또한, 기획업무 및 계획 설계에 대한 대가를 받을 것을 협회 차원에서 꾸준히 홍보하고, 회원들에게 사무실에 비치할 수 있는 홍보물을 배부해 건축사와 건축주의 의식을 개선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사사무소는 건축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제공하는 직업이지, 규모·법규 검토 등을 무료로 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 스스로뿐만 아니라 건축주, 시행사, 시공사에게도 인식시켜야 한다.
업무 대가 기준이 마련된다면, 저가 덤핑 등으로 스스로의 격을 낮추는 건축사사무소도 사라질 것이고, 박람회에서 200만 원짜리 인허가를 하는 곳이 건축사사무소라는 인식도 사라지지 않을까. ‘업무 대가 = 인식 변화’가 될 수는 없겠지만, 변화의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업무 대가 기준을 통해 건축사의 업무가 공정하게 평가받고, 건축 서비스 산업이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글. 최인영 Choi, Inyoung (주)한돌 건축사사무소
최인영 건축사 · (주)한돌 건축사사무소 / 중앙대학교 건설대학원 GCCP 지도교수
중앙대 건축학 석사, 인하대 건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부터 한돌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주거·상업시설 설계·인테리어 디자인 등 다양한 작품 활동 중이다. 2017년 경기건축문화제 사용승인부문 동상, 시흥건축문화제 사용승인부문 대상을 수상(2회)했다. 경기도건축사회 건축사뉴스 편집위원, 경기건축가회 연구부회장을 역임하고, 시흥시도시재생 심의위원과 경기도교육청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으로 Secret-K(휴게음식점), 클레디크 오피스텔, 큰솔공원 어울림센터, 작가의 집, 수자원공사 홍보관 인테리어 등이 있다.
mybestlif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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