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성과 대비의 아름다움 2025.2

2025. 2. 28. 09:10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The Beauty of Simplicity and Contrast

 

 

 

무엇이 아름다운 것일까?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에는 어떠한 요소가 있길래 아름답다고 여길까? 꽃은 왜 아름다울까? 나뭇잎은 왜 아름다울까? 호랑이와 늑대, 상어와 독수리 같은 동물에 대해서도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 무시무시한 맹수들을 보고 왜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일까? 저녁노을을 볼 때도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느낀다. 드라마틱한 구름의 변화와 울창한 숲, 연달아 이어지는 산들, 깎아지른 절벽에서 쏟아지는 폭포, 밤하늘에서 쏟아질 것처럼 반짝이는 별과 같은 자연현상을 볼 때도 아름답다고 느낀다. 균형 잡힌 운동선수의 몸, 관객을 사로잡는 영화배우의 얼굴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대상은 너무나 다양하다. 그렇게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그 무수히 많은 대상과 현상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나는 늘 그것이 궁금하다. 이런 대상들은 원래 그 안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뇌가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초기 인류도 그런 대상을 볼 때 아름답다고 느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가 발달하기 전 초기 인류는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개념을 만든 뒤에야 비로소 개념이 지식하는 대상(그것이 구체적인 것이든 추상적인 것이든)을 인지한다. 산을 ‘산’이라고 개념화하기 전에는 산을 보아도 산이라고 알지 못한다. 그저 높이 솟은 거대한 자연물이 눈앞에 있을 뿐이다. ‘아름답다’는 개념 역시 그 언어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어떤 대상을 보아도 아름답다고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느낌만은 있었을 것이다. 그 느낌이란 사람의 마음에 만족감이나 즐거움을 주는 그런 느낌이다. 또는 놀랍고 신기함을 주는 그런 느낌도 있었을 것이다. 엄청난 힘을 지닌 동물을 보면서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고, 사람이 가진 것보다 막강한 힘을 지닌 동물을 보고 그것을 토템, 즉 신성함을 지닌 상징물로 삼았을 것이다.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떤 힘을 지닌 존재, 하늘이나 대지, 태양, 강, 바다, 바람 등에 신이 있다고 믿고 하늘의 신, 대지의 여신, 태양의 신 등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그 대상을 이해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에 대한 느낌은 그것을 숭배하는 태도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신이라는 개념이 탄생한다. 오늘날 신을 믿는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는 그런 대상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의 개념은 어떤 느낌에서 생겨났을까? 그것은 어쩌면 신과 반대되는 느낌에서 왔을 것 같다. 그것은 ‘이해할 수 있다’, ‘쉽다’, ‘명쾌하다’ 같은 느낌이다. 그리하여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다. 감질나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분 좋게 보이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뚜렷하게 말이다. 나는 그렇게 명쾌하게 잘 보이는 대상이 가진 모양을 ‘단순성’과 ‘대비’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하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그것은 복잡한 것을 볼 때 느끼는 것과 정 반대다. 복잡한 것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사람은 언제나 어떤 대상을 볼 때, 또는 어떤 공간에 들어갔을 때 그것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해는 그의 생존율을 높이기 때문이다. 대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보고 있는 그 대상이 나에게 이로운 존재인지 해로운 존재인지 알 수 없고, 그것을 알 수 없다면 내 삶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생존하고 더 잘 살고자 이 세상을, 그리고 내가 만나는 그 무수한 대상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것이 본능이다. 하지만 복잡한 대상은 이해가 어렵다.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이란 바로 두려움과 불쾌함이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청소되지 않은 너저분할 거실의 꼴을 볼 때 곧바로 불쾌감을 표현한다. “집에 있으면서 청소도 안 하고 뭐 한 거야?” 복잡한 대상은 그것이 작은 물건이든 거대한 도시이든 사람을 혼란하게 만들 것이다. 혼란은 ‘이해할 수 없음’을 뜻하므로 불쾌한 감정을 일으킨다. 복잡함이란 무질서이므로 질서가 없는 상태를 사람들은 견딜 수 없어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다는 그 현실이 불쾌한 감정을 유발한다.

 

 

<사진 1> 아이폰 1, 2007년 / <사진 2> 아이폰 4, 2010년 / <사진 3> 아이폰 12, 2020년


반면에 단순한 것은 일단 이해했냐 안 했냐에 앞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고 즐거움을 준다. 디자이너들이 컴퓨터를 디자인하든 건축물을 만들든 왜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들여 단순하게 하려고 할까? 그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명쾌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보라. 스마트폰은 정말 엄청나게 복잡하고 난해한 물건이다. 그 속에는 엄청나게 까다로운 기능들이 무수히 많이 담겨 있다. 현대인들은 그게 뭐 어렵냐고 하겠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그 기능을 따라가기 힘들다. 나도 한때에는 회사에서 부장님한테 컴퓨터를 알려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점점 컴맹이 돼가는 것 같다. 그 정도로 스마트폰은 기능이 많아지고 복잡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외관은 어떤가? “나를 다루는 건 아주 쉬워요. 누구나 할 수 있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아주 단순한 외관으로 복잡함을 전부 숨기고 있는 것이다. 아이폰의 첫 번째 모델을 디자인한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조너선 아이브는 이렇게 말했다. “단순함은 제품을 제압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아이폰 디자인은 시간이 흐르면서 끊임없이 더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라운드 형태를 각이 진 형태로 바꾸었고, 유일하게 남아 있던 버튼을 없앴다.<사진 1, 2, 3> 

제품이든 공간이든 뭔가를 단순하게 만들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든다. 그렇게 큰 에너지를 들여서 만든 단순한 대상을 사용하는 사람은 에너지를 덜 들인다. 단순한 대상은 이해가 쉽기 때문에 에너지가 덜 들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만약 내가 집에서 청소를 열심히 해서 거실이 단순해지고 질서가 생긴 뒤에 아내가 들어온다면, 아내는 거실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고 기분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에너지가 덜 들어서 대상을 이해하기 쉬울 때 사람은 즐거움을 느낀다. 즐거운 느낌을 주는 그 대상을 사람들은 아름답고 판단하는 것이다. 단순함, 다시 말해 질서가 높은 상태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 아름다움은 늘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단순한 사물은 기술력 없이는 도달하지 못한다. 

 

 

<사진 4> 삼성 냉장고 지펠, 2000년대 초 / <사진 5>삼성 비스포크 냉장고, 2019년 첫 출시

애플 아이폰이 커다란 성취를 이룬 뒤 거의 모든 전자제품들은 단순함을 향해 질주했다. TV는 단순한 사각형으로 환원했다. 한국의 냉장고는 20세기 전반기까지만 해도 꽃무늬로 복잡하게 장식하는 걸 좋아했다.<사진 4> 지금은 어떤가. LG든 삼성이든 극도로 단순한 형태를 지향한다.<사진 5> 그런 단순한 직육면체의 냉장고나 에어컨을 보면서 사람들은 꽃무늬 장식에서 느끼지 못하는 기술력을 느꼈다. 기술력은 대단히 정교하고 단순한 사물을 만든다.

 

<사진 6> 극락조의 일종인 은계 수컷은 화려하고 암컷은 수수하다. ⓒ Henry Koh
<사진 7> 극락조의 화려한 깃털은 푸른 잎과 대비되어 금방 알 수 있다. ⓒ markaharper1
<사진 8> <파리지앵 거리 장면>, 장 베로, 1885년경

단순함과 함께 이해하기 쉽고 명쾌하다는 느낌을 주는 두 번째 요소는 대비다. 대비가 아주 중요한 대표적인 동물이 있다. 인도네시아 정글에 서식하는 극락조다. 극락조는 한결같이 수컷이 화려하고 암컷은 수수하다.<사진 6> 화려한 외양은 포식자에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고 도망가기에도 거추장스럽다. 하지만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번식을 해야 하므로 암컷 앞에서 화려한 외관을 뽐낸다. 특히 깃털의 색상이 무척이나 화려하다. 이런 화려한 색은 암컷을 부르는 데 적합하다. 푸른색 정글 속에서 붉은색이나 노란색 계열, 또는 파란색 깃털을 가진 극락조 수컷들은 눈 속에 떨어진 핏자국만큼이나 정글에서 극적인 대비를 보여준다.<사진 7> 암컷을 유혹하는 강력한 디자인은 바로 대비인 것이다. 19세기 유럽에서 포스터가 탄생했을 때 포스터 디자이너들은 채색석판화 기술로 화려한 색의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그런 포스터는 회색 계열의 단조로운 도시 건축물에서 상당한 대비를 일으켜 사람들의 눈을 자극했을 것이다.<사진 8> 

 

<사진 9> 물푸레나무 꽃은 벌과 나비를 이용할 필요가 없으므로 대비가 없다. ⓒ Jean-Pol GRANDMONT

꽃이 화려한 색을 가진 이유도 번식 기간에 벌과 나비, 파리, 그리고 사람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으므로 스스로 번식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벌과 나비, 파리와 같은 섹스 대리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식물은 먼저 자신이 번식 기간이라는 걸 알려야 한다. 바로 꽃을 피우고 그 잎을 푸른색 나뭇잎과 대비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섹스 대리자들은 화려한, 다시 말해 대비가 강한 꽃잎을 보고 식물이 번식기간임을 인지한다. 게다가 꽃은 섹스 대리의 보상으로 꿀을 제공하기 때문에 기꺼이 그 역할을 한다. 꽃이 화려한 이유는 벌과 나비를 부르기 위한 것이다. 벌과 나비에게 아름답다는 개념이 있을 리 없다. 그 곤충들은 단지 강렬한 색상 대비를 보고 꽃을 찾는 것이다. 사람만이 그러한 대비를 아름다움이라고 개념화했다. 본질은 대비, 즉 무대 위의 연예인처럼 자신을 다른 생명체에게 잘 보여준다는 데 있다. 반면에 대비가 없는 꽃도 있다. 벼과식물이나 물푸레나무의 꽃은 대비가 없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사진 9> 이 식물들은 벌과 나비를 이용하지 않고 바람에 의지해 번식을 하기 때문이다. 벌과 나비, 사람을 이용할 필요가 없으므로 화려한 대비를 뽐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바람을 이용해 번식을 하는 식물의 꽃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때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는 판단의 기준은 대비의 부족이다. 

 

<사진 10>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한 장면. 대비가 주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사진 11> 뉴욕 스카이라인

사람들은 역광 사진을 대체로 아름답다고 여긴다. 솜씨 좋은 인물 사진가는 언제나 조명은 피사체의 머리 뒤에 둔다. 역광에서 인물의 머리 윤곽선을 선명하게 만들어주어서 그 대상을 좀 더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지평선이 펼쳐지고 그 지평선 위로 나무나 집, 또는 사람이 지나가는 모습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하늘은 밝고 지평선 위에 솟아 있는 나무나 건물, 사람은 뚜렷한 대비로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사진 10> 도시의 스카이라인 사진도 마찬가지로 대비가 있어서 보기 좋다.<사진 11>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호하지 않고 분명하며 따라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상태를 사람들은 좋아한다. 왜냐하면 뭔가를 알았다고 하는 순간 뇌에서 도파민이 분출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해와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이해와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뇌가 도파민이라는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대상이 주는 느낌이다. 아름답다고 여기는 대상은 대비가 강한 꽃이나 사진처럼 우리에게 ‘알았다’, ‘이해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제품과 가구, 그래픽 디자인, 건축 디자인에서 그런 대비를 이용하려는 의도를 무수히 봐왔다. 그런 대비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그렇게 즐거운 느낌을 주는 대상을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개념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에는 절대적 기준이 존재하는가? 단순함의 정도에 따라 더 아름답고, 덜 아름다운 대상이 있을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상대적인가? 그 물음은 다음 달에 논해보겠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