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덕 ‘e편한세상 어반브릿지’ 23개 유닛으로 서로 다른 거주자들의 삶 존중" 건축사 전이서, 윤정현 2025.2

2025. 2. 28. 10:25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Godeok ‘Seoul e-pyunhansesang Urban Bridge’ Respecting the lives of different residents in 23 units

 

 

지난 1월 7일 오후, (주)전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에서 ‘서울 e편한세상 어반브릿지’를 설계에 참여한 두 건축사사무소의 대표를 만났다. 왼쪽부터 전이서 건축사(주.전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윤정현 사장(前 대표, 주.시아플랜 건축사사무소).

강동구에 위치한 서울 e편한세상 어반브릿지는 서울시와 SH공사가 민간 사업자 공모 방식으로 진행한 공동주택이다. 이 프로젝트는 2019년 설계 시작부터 2024년 준공까지 설계자, 사업주, 시공사가 긴밀히 협력하며 완성한 결과물로, 거주자의 삶을 존중하는 철학이 곳곳에 담겨 있다. 이 아파트는 연결의 공동체, 차이의 복합체, 스마트 반응체라는 세 가지 공동체 콘셉트를 중심으로 설계됐다. 담장을 없애고 건물 주동의 배치를 통해 전체를 하나로 느슨하게 묶으면서도 자연스러운 경계를 형성했다. 또한 23개의 유닛 설계를 통해 서로 비슷한 생활 패턴을 가진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 프로젝트를 설계한 전이서 건축사(주.전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와 윤정현 前 (주)시아플랜건축사사무소 대표를 만나 그들이 어떻게 이러한 아이디어를 실현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 학생들을 가르치며 맺은 두 대표의 인연
   중·대형&아뜰리에 건축사사무소 협업…
   각자의 강점이 갖는 시너지 효과로
   새로운 건축적 시도 나올 수 있어

박정연_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두 분께서 처음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와 더불어 두 사무소가 협업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전이서_2010년 한양대에서 같은 학년 강의를 맡으면서 처음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작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윤정현 박사님은 시아플랜 건축사사무소 대표로 활동하고 계셨습니다. 학생들을 함께 지도하며 크리틱을 진행하다 보니, 외부에서 만날 때보다 서로의 건축적 생각과 접근 방식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윤정현_학생들과 함께 아카데미에서 교류하며 전이서 건축사님의 견고한 철학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특히 저와 다른 실무적 경험을 통해 제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을 채울 수 있었고, 서로에게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뢰와 믿음이 쌓였지만, 사실 중견 회사와 아뜰리에 사무소의 작업 결합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몇 차례 함께 작업을 시도하며 공공 프로젝트와 문화 프로젝트에서 큰 시너지를 느꼈고, 계속해서 함께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고덕강일 1블록 프로젝트에서 협업하여 3등이라는 결과를 얻었고, 이번 10블록 프로젝트에서는 사업주도 함께 작업해보길 권유해 전이서 건축사님과 다시 한번 도전했습니다.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결과를 내보자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해 설계공모에 참여했으며,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전이서_저는 중·대형 사무소 간의 협업보다 중·대형 사무소와 아뜰리에 간의 협업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대형 사무소는 그들만의 강점이 있고, 아뜰리에도 마찬가지로 독특한 강점을 지니고 있지만 약점도 존재합니다. 이때 서로의 역할에 대한 존중과 절대적인 신뢰가 뒷받침된다면 정말 훌륭한 프로젝트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작업 당시 제가 처음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시아플랜의 반응은 “공동주택을 이렇게 설계한다고요?”라는 의아함이었습니다. 시아플랜은 고급 공동주택을 많이 작업해 온 만큼 방대한 데이터가 축적돼 있었고, 그래서 기존 형식에 더 가까운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저는 공동주택의 사회적 역할에 초점을 맞춰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혼자서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공동주택 설계로 풀어내기 어려웠지만, 시아플랜이 오랜 노하우를 통해 이를 훌륭히 구현해 줬습니다.
좋은 의도도 시스템적으로 뒷받침돼야 현실화할 수 있는데, 이번 프로젝트는 그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러한 협업은 퀄리티를 높이고 새로운 건축적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대형 사무소와 아뜰리에 사무소가 조화를 이뤄 협력하는 방식을 적극 권장하고 싶습니다.

윤정현_e편한세상 어반브릿지는 민간사업자 공모로 진행됐지만 일반적인 방식의 건축이 아니라 서울시가 SH와 처음으로 시도한 완전한 설계공모 형식의 독특한 발주 형태로 진행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러한 특이한 발주 방식 덕분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주거단지나 일반적인 아파트와는 다른 구조적 특성을 갖춘 새로운 주거 설계를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발주 당시 제안요청서에는 소셜 스마트시티 구현과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유형의 주거를 설계하겠다는 개념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형 회사들의 전형적인 방식으로는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면 기존 방식을 깨야 하고, 충돌을 통해 나온 부산물들을 잘 정리해야 비로소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공모 단계에서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고, 기존 공동주택의 틀을 벗어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직원들조차 공동주택이 아닌 것 같다고 느낄 정도의 안을 사업주에게 제시하며 어렵게 설득했습니다.
설계공모로 진행된 프로젝트라도 공사비 등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계획이 크게 변경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프로젝트는 기존 계약 관계를 따르는 방식과 달리 발주 형식을 변경한 첫 시범 사례였습니다. 특별건축계획을 적용한 몇 블록의 사례 중 하나로, 사업주가 우리를 신뢰했기에 초기 개념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전이서 건축사님과도 협력하며 변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효과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쉽게도 이 프로젝트 이후 이러한 발주 방식이 다시 시도되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주)전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전이서 건축사


# ‘연결의 공동체·차이의 복합체·스마트 반응체’ 콘셉트 살려
    담 없이 주동으로 만든 주민·마을 간 느슨한 경계
    공동주택의 공동성과 개별성 모두 담아

박정연_이 작품은 하나의 마을처럼 느껴지면서도 저층, 중층, 고층이 조화를 이루고, 특색 있는 중정, 길, 브릿지, 외부 공간들이 형성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러한 공간들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환상형이든 타워형이든 배치와 시선의 교차 등 여러 측면에서 겪으신 고민과 경험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윤정현_우리가 구상한 공동체는 세 가지 주요 콘셉트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첫 번째는 단지 내부뿐 아니라 도시 스케일에서의 연결을 고려한 ‘연결의 공동체’입니다. 두 번째는 도시, 블록, 그리고 일상과의 관계를 중시한 ‘차이의 복합체’입니다. 마지막으로 소셜 스마트시티 구현이라는 상위 개념을 반영한 ‘스마트 반응체’입니다. 이 세 가지 형식이 결합된 건물로 계획됐습니다.
이러한 콘셉트를 초기 단계에서 설계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세 가지 콘셉트가 모두 유지됐다는 점이 특히 놀랍습니다. 23가지 유형의 유닛 설계, 높은 공사 난이도, 공사비와 관련된 사업주의 우려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사업주가 이를 이해하고 신뢰를 보내준 덕분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전이서_프로젝트의 주요 부분을 설명드리면, 고덕강일 사이트에서 저희가 담당한 10블록은 인근 1·2·3지구와 네트워크를 연결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었습니다. 바이크 네트워크, 도서관, 생태공원 등 단지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지구와 어떻게 연결성을 구현할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을 단지 안으로 어떻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할지가 첫 번째로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더해 동쪽으로 인접한 하남시와 연결하는 공공보행통로와 공원을 어떻게 조성할지에 대한 저희의 제안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주동으로 구성되며 필요한 밀도를 해결하는 방식이 중요한데,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타워형이든 환상형이든 저층, 중층, 고층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링키지 빌리지(Linkage Village)’라는 프로세스를 적용했습니다. 이 프로세스의 핵심은 각 유닛이 저층을 형성하며 작은 마당과 통로를 만들어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유입시키고, 중층과 타워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입체적인 주동을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이 방식은 담이 없어도 심리적으로 자연스러운 경계를 형성합니다. 사람들은 큰 제약 없이 공간에 접근할 수 있지만, 어느 이상으로는 들어가지 않게 되는 느슨한 경계가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주민과 마을 간에 열린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독립성과 소속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다이어그램 1>

<다이어그램 1> 차이의 복합체가 만드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


담을 없애는 대신 건물 주동 자체가 단지를 하나의 공동체로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작은 마당과 통로로 입체적인 주동을 형성해, 각기 다른 단지가 하나로 합쳐진 것처럼 느껴지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설계를 통해 주민들이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윤정현_이 프로젝트는 프라이빗과 퍼블릭이라는 양측의 요소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획기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거대한 박스 형태의 배치를 통해 공동성을 강조했지만, 공동주택은 단순히 공동성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개별성도 함께 갖춰야 합니다. 이번 설계는 이 두 가지 요소를 절묘하게 혼합한 형태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묶기 위해 강력한 제스처를 적용했으며, 그 과정에서 개별적인 영역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 커뮤니티 시설의 전략적 배치와 23개의 다양한 유닛, 
   서로 다른 거주자들의 삶의 패턴 존중
   모두가 협력해 가능했던 새로운 시도, 제도적 연속성 희망

전이서_또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집중한 부분은 사회적 역할 속에서의 공동성과 개인의 생활 패턴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는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설계돼 유닛이 동일하고 반복적인 형태를 띠지만, 요즘은 어린이집, 체육시설, 노인 시설 등 커뮤니티 시설의 배치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네 개의 타워를 중심으로 컬처, 레저, 웰빙, 교육 같은 커뮤니티 시설을 각각 배치했습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시설들을 상가에 한데 묶어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전체 단지를 연결하는 주요 지점에 커뮤니티 시설을 전략적으로 배치했습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생활 패턴에 따라 자연스럽게 교차하고, 비슷한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다이어그램 2>

<다이어그램 2> 스마트시티는 ‘공유’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주동 하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주동과 도시가 어떻게 만나는지와 더불어 공동체 안에서 개인이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통해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실제로 오픈하우스에서 주민들은 “일반 아파트 같지 않고 마치 리조트에 온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고, 단지 곳곳의 공간들이 편안한 스케일로 느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각 주거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시선의 풍경이 방향마다 다르게 설계되었습니다. 주민들이 “저 길을 따라가면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자연스럽게 공간을 탐험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저는 개인들이 자기만의 장소를 발견하기를 바랐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길,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의 동선, 퇴근 후 귀가하는 개인들의 경로가 생활 패턴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고려해, 이러한 각각의 생활 패턴을 존중하며 자연스럽게 교차할 수 있는 공간 단면을 구상했습니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일반적으로 인동간격에 문제가 없고 대부분 남향으로 설계돼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남향을 바라보기 때문에 특정 부분에 그늘이 생기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을 트인 구조와 높이에 따라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감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예를 들어, 10층에는 텃밭을 배치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약 600세대 규모로, 크지 않으면서도 작지도 않은 이 단지는 마치 특별한 동네에 사는 듯한 느낌을 주고자 했습니다.

윤정현_이런 다양성을 구현하려면 유닛에도 다양한 타입을 적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주 입장에서는 타입이 많아질수록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이를 조율하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초기에는 40개 타입으로 계획했지만,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23개 타입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런 결정을 받아들여주신 사업주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박정연_사전에 계획된 방식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분양성을 고려해야 하는 서울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공동주택은 필연적으로 양면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한편으로는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주거 물량을 공급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아파트와 차별화된 시도를 요구받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적 시도는 때로 입면 등이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이곳은 유럽의 중소도시나 마을 같은 포근하면서도 다양한 분위기를 풍기며,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아파트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큽니다.

전이서_여러 타입이 복합적으로 결합되는 과정에서 자칫하면 좋은 공간이 아니라 버려지는 공간이 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입면의 모든 부분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도시에서 공동주택이 가지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제가 가장 주목한 것은 거주민 개개인의 삶이었습니다. 각자의 삶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일부 복도를 통해 전체 단지를 순회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기존 복도형 아파트처럼 보이지 않게 하고,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차별화가 아니라 사람들이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거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마당을 작은 단위로 나누고 중앙에는 더 큰 공간을 배치하는 등 마당의 스케일을 세심하게 조정했습니다. 너무 크거나 작아서도 안 되기에 걱정되고, 또 이런 형태는 기존의 아파트와는 다른 접근 방식이었기 때문에 주민들의 반응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물이 완성되고 골조가 드러났을 때, 내심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주민들 역시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셨고, 이를 통해 한 단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정현_현실과 이상이 약 3:7 비율로 구현됐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특히 구조 작업 중 콘크리트 공사에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사업주의 이익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지만, 세상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이를 실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이 고덕강일 10블록 사례는 우리나라 건축문화를 발전시키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대림에서도 새로운 아파트 브랜드를 만들어냈는데, 이것이야말로 건축의 힘이라고 봅니다. 시도해보니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시공사가 움직이면서 새로운 부산물이 만들어졌고, 이는 새로운 건축적 시도가 불러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건축 전문가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습니다.

전이서_이 프로젝트는 5년에 걸쳐 함께했던 시아플랜과 시공 현장의 시공팀을 비롯한 모든 분들의 협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 하나라도 협력하지 않았다면 이런 프로젝트는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프리미엄 아파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독창적이고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윤정현_이런 장점들을 재생산하려면 좋은 제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서울시 내 주요 입지에 민간사업자 공모 형식으로 진행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많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사업자 주도로 진행되면 건축의 질을 담보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공의 주도로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건축 생산 시스템이 변화하고,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사례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서울시는 특별계획구역을 지정하며 새로운 유형의 시도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특히 공공 주도의 발주 형태를 통해 공공성을 강조하고, 건축 전문가들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습니다. 이를 통해 시공사나 사업주 주도형 시장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접근 방식과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연_말씀하신 것처럼 제도가 꾸준히 유지되고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곳에 실제로 살아본 입주민들 사이에서 확연히 다르다는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만큼, 이러한 사례들이 사회적 인식으로도 이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사업 주체 역시 설계하는 건축사의 입장에서 균형을 찾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건축물은 커뮤니티 시설이 잘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집으로 가는 길에 다양한 풍경을 담은 선택적인 동선까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세심한 고려가 돋보입니다. 앞으로 이처럼 섬세한 배려와 설계가 반영된 공동주택들이 더 많이 생기길 기대합니다.

전이서_사업주 입장에서도 이번 프로젝트가 처음이라 더욱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번 노하우를 얻게 되면, 이전처럼 많은 투자를 하지 않고도 충분히 가능해질 겁니다. 저희가 작업한 블록을 방문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공동주택은 타입에 따라 건물의 외형이 결정되기 때문에 소위 외형이 ‘에스테틱’한 미학적 건물로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부를 깊이 들여다보면, 이 건물이 공동주택을 어떻게 풀어내고자 했는지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공동주택에 대한 건축계의 시각도 조금 달라지길 바랍니다. 공동주택이 거주민의 삶과 철학을 담아낼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이라는 점을 더 많이 인식했으면 합니다.

 

(주)시아플랜 건축사사무소 윤정현 사장


# 어려운 시기일수록 협력해 제도 개선 등 발전 토대 마련해야
   관심 갖고 힘 보태면 운신 폭도 넓어질 것
  
박정연_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주신다면?

윤정현_현재 건축계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으며, 그 어려움이 점점 가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기일수록 건축계가 서로 협력하며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새로운 발주 형태를 통해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사례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 관련 제도를 발전시키고 개선하려는 공동의 노력을 지속한다면, 미래 지향적인 건축을 실현할 수 있는 튼튼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이서_중·대형사와 아뜰리에 사무소가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넘어, 각자가 가진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주로 다루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는 제도적인 부분이 간과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건축과 영역의 확장을 생각한다면, 제도와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제도적 기반이 있어야 건축이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공공 프로젝트를 하든 하지 않든, 건축의 자유도를 높이고 활동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과 관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정책 변화만을 요구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든 것은 제도를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탄탄한 제도적 바탕이 마련돼야 민간 영역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인터뷰 전이서 건축사 · 윤정현 사장 Chun Yseo · Yoon, Jeonghyun (주)전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 (주)시아플랜 건축사사무소

대담 박정연 편집국장

글 육혜민 기자

사진 박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