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퇴계동 행정복지센터 떠있는 박스 2025.4

2025. 4. 30. 10:3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Toegye-dong Community Center Floating Box

 

 

 

 

떠있는 박스 
처음 방문한 사람은 건축물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도 고개를 돌려 다시 보고 간다. 공모전 심사 당시 보았던 떠 있는 긴 박스의 단순한 지오메트리에 대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현실에서 느껴지는 감흥은 여전히 생생했다. 중력이 사라짐에 잠시 현기증이 온다. 유리와 은빛으로 반사되는 금속 루버 재료의 디테일은 박스의 무게를 줄이는 듯하다. IT기업 사옥도 아니고, 거대한 재단에서 운영하는 갤러리도 아니다. 유럽도 아니고, 서울도 아닌 춘천의 퇴계동 행정복지센터다. 옥외 주차장에서 박스의 천장 면으로 인도되는 방향을 따라가면 입구로 인도된다. 1층 내부로 들어가면 로비와 민원실의 구성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 떠 있는 박스의 존재감은 계단을 올라가 긴 경사로와 평행한 긴 복도의 중간에서 다시 시작된다. 3개 층 높이의 박스가 읽혀지는 수직적 개방감과 아울러 전면 유리를 통한 강한 빛은 하얀색 트러스 구조들 사이로 여과되어 사선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구조의 투명성을 드러낸다. 트러스는 지면에서 박스를 띄우기 위한 필수적인 구조로, 말 그대로 ‘박스 구조’로 해석하는 역할을 한다. 모양이 아니라 진짜 박스인 셈이다. 기둥과 보의 구조에 익숙한 일반 공간과는 구조적으로 구별됨을 인지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열린 박스 
공공건축에, 지방 도시의 행정복지센터에 이러한 공간이 왜 필요한지의 질문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는 뉴욕 컬럼비아대학의 러너홀(Learner Hall. 1999)에서 이와 유사한 공간을 제안했다. 거대한 공간을 채우는 램프의 동선은 건물의 기능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다양한 이벤트와 활동들로 채워지는 사회적 공간이며, 또한 투명한 외피는 램프에서의 이벤트들을 외부로 투사하기도 하고, 반대로 도시의 장면을 시각적으로 들여오기도 하는 장치라고 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떠 있는 박스는 조각품이 아닌 공동체의 활동들을 알리고, 마을을 조망하는 사회적 소통 장치로 이해될 수 있다. 설계를 진행한 장인수 건축사의 ‘프로그램의 불확정성’, 도시의 산책자(Flâneur)에 대한 생각은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긴 박스의 구조를 구현하기 위한 매스를 감고 있는 트러스 구조와 40미터 길이의 캐노피의 진동을 잡기 위한 TMD(Tuned Mass Damper) 제진장치 등 기술에 대한 노력은 베르나르 추미 이전에 영국의 아키텍트 세드릭 프라이스(Cedric Price)를 연상시킨다. 그는 새로운 기술과 예술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다. 실현되지 못했지만 자주 언급되는 그의 대표작인 펀 팰리스(Fun Palace. 1961)와 후에 그에게 영향을 받은 렌조 피아노(Renzo Piano)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의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1977)가 주는 기술과 건축의 관계다.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간과 사회를 개혁하려는 자세와, 한편으로 기술적인 이미지 자체가 의미를 갖게 된 사례는 오늘까지도 건축의 주요한 하나의 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펀 팰리스는 엘리트가 아닌 노동자 계층을 대상으로 열린 문화공간을 제공하려는 취지가 있었는데, 새로운 기술을 활용함에 특정 계층을 위한 공간이 아닌 일반 사람들을 위한 혁신적인 공간 개념을 제안함에 더욱 의미를 가진다. 퇴계동 행정복지센터의 떠있는 박스는 시민들에게 시각적·물리적으로 열린 박스다.



도시에서의 박스
도시적 관점에서 건축이 주변 도시 패브릭의 상황을 존중하며, 연속된 경관의 일부가 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모든 건축이 떠 있을 필요는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위치의 특별한 건축 프로그램에 한해서 허용되는 건축이라면 블록의 코너가 좋을 것이며, 너무 붐비거나 외지지도 않으며 오고 가는 차량에서 보이는, 그리고 춘천을 방문하는 기차의 속도가 늦춰지는 곳에서 보이는 곳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시민 모두를 위한 공동체의 공간이면 좋을 것이다. 부지의 위치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모텔 등 어수선한 상황에서 주변 건물과의 ‘다름’이 오히려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코너와 연결된 작은 광장도 좋은 외부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 심긴 나무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관리가 꾸준히 되면 좋을 듯하고, 옥외 주차장도 광장이 되면 더욱 좋을 듯하다. 


  
박스 사용법
공공건축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성패의 절반이 설계와 시공에 달려있다면,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있다. 필자가 설계에 참여한 ‘성동 책마루’는 좋은 사례로 생각된다. 구청 로비 공간에 대규모의 도서관 겸 카페가 들어선 후 성동구청은 로비라는 공용공간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운영시간을 주말 포함 저녁 9시로 연장했다. 퇴근 시간을 반납한 구청 직원들의 수고는 너무 많은 이용자라는 힘든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관리와 운영에 있어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퇴계동 행정복지센터 2층의 외부 발코니와 최상층의 도서관을 연결하는 경사로를 따라 걸을 때 커피 머신 소리와 커피잔 내려놓는 소리, 주민들의 담소가 들리면 좋을 듯하다. 조만간 카페가 만들어지고 상층의 도서관과 연계되길 바란다. 갤러리도 좋겠지만, 전시 기획에 큐레이터와 설계한 건축사가 관여하여 전시물과 공간이 조율된 전시가 되기를 제안한다. 
엄청난 스케일의 구조에서부터 M-바를 활용한 입면 재료의 선정까지, 부족한 예산과 지난한 건축의 과정을 통해 들어올려진 박스는 공공의 박스로, 시민들의 문화공간이자 교육공간이자 놀이터로 잘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힘들게 만들어진 건축이 제대로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최근 빌딩통합시스템 수업의 건축물 답사가 있었다. 긴 경사로가 학생들로 가득 채워지게 될 때 공간이 의도가 비로소 드러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스를 닫으며
로비에서 전입신고를 하러 온 듯한 외국인이 공간을 둘러보는 것을 보았다. 춘천 행정복지센터의 건축적 의미는 ‘마을 공동체를 위한 선한 의지를 구현하려는 새로운 공공건축의 시도’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외부에 있다. 로비에서 문을 닫고 나온 후 잠시 공간을 감상하게 된다. 그곳은 옥외 주차장 일부를 덮고 있는 떠 있는 박스 하부 40미터 캐노피의 하부 공간이다. 도시와 연결된 다리를 건너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2014) 2층 입구에서 도시를 조망하는 경험과 흡사하다. 동대문 의류도매 빌딩들의 입면을 배경으로 연속된 30미터 캐노피 하부가 만드는 거꾸로 된 랜드스케이프의 느낌이다. 중력에서 자유로워진, 그리고 잠시 일상의 생각에서 자유로워진 느낌을 준다. 퇴계동 행정복지센터에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 공간이 많다. 

 

 

 

글. 김현준  Kim, Hyunjun 국립 강원대학교 교수

 

 

김현준 교수·국립강원대학교 건축학과·영국건축사(ARB)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 런던 AA스쿨 디플로마 과정을 졸업하였으며, SOM London, Tony Meadows Associates, Gensler, 경영위치에서 실무를 했다. 강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6기 위원이었다. 공유와 공동체 공간을 위상학(topology)으로 접근하는 실험에 관심을 두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은혜공동체협동조합주택(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 ‘성동책마루, 성수책마루(대한민국공공건축상)’, ‘판교 P하우스(경기도건축문화상)’ 등이 있다.
hyunjunkim@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