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상, 그 만만한 이름 속의 한없는 무거움 2025.5

2025. 5. 31. 09:2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Pritzker Architecture Prize, the infinite weight behind its easy name

 

 

 

 

프리츠커상 수상자에게 수여되는 청동 메달 © 2025 The Hyatt Foundation

 

2025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중국의 리우지아쿤(劉家琨)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양 문화권에서 수상을 했다는 소식에 한결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촌이 땅을 샀을 때의 느낌도 든다. 일각에서는 프리츠커상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한다. 유튜브 활동을 열심히 하는 국내의 유명 건축사도 프리츠커상을 ‘못 받는다고 아쉬워할 필요 없는’ 정도의 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 그리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건축의 객관성이라는 차원에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에서 우리가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에 아쉬움이 있다. 건축에 대한 객관적 평가, 특히 우리의 건축설계가 그만큼 깜냥이 안 된다고 평가받는 것 같아서 더 그렇다.

프리츠커상은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8회를 수상했다. 일본은 2010년에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공동 수상을 했기 때문에 9명이다. 수상자로는 미국보다 1명이 더 많다. 중국도 이번에 리우 지아쿤이 받게 됨으로써 2012년 왕슈에 이어 두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사실 횟수가 중요하지는 않다. 우리 건축도 수준이 상당히 올라왔고, 건축계의 내실이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일본과 중국이 받은 프리츠커상에 대한 내막을 좀 알아보면 타산지석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이 기회에 우리의 현대건축사까지 포함하여 개인적인 의견을 적어 본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전후 재건기를 거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패망한 국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국가 정체성 세우기가 시급했다. 일본의 이 국가적인 정체성 찾기에는 작가와 예술가, 건축사들을 총망라한 사회 전체의 전방위적인 노력이 가해졌을 것임을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건축계도 그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의 건축계는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았다. 그 결과 메타볼리즘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고, 이는 영국의 아키그램, 젊은 건축 전문가들의 모임인 팀 텐과 함께 그 당시 세계적인 건축 운동으로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일본 건축이 정체성에 대한 토론을 치열하게 거쳤다는 것이다.

더해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를 피해 일본으로 들어온 브루노 타우트나 바우하우스의 초대 교장이자 하버드대학 디자인학부 학장을 역임했던 발터 그로피우스, 요른 웃존 등의 서구 모더니스트들에 의한 일본의 ‘발견’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4대 거장의 하나인 미국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젊은 시절 일본을 방문하고 받은 영향으로 유기적인 건축을 하게 되었다는 것도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물론 일본의 전통 건축이 한국이나 중국의 전통 건축보다 우수하다는 생각보다는 중국과 한국에 비해 일본의 전통 건축이 먼저 서양인의 눈에 띈 것이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이렇게 일본의 건축은 대내외적인 환경으로 내실은 물론 세계적인 위상까지 확보했고, 그 결과물 중의 하나가 프리츠커상 8회 수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어쩌면 정점을 지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중국의 상황은 일본과 완전히 다르다. 1966년부터 1976년간의 문화대혁명 기간에 중국의 전통과 문화는 스스로에게 엄청난 파괴를 당했다. 남이 빼앗으려는 것은 지키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100년이라도 지킬 수 있지만, 스스로 버리는 데는 하루도 안 걸린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사회에서 수준 높은 문화가 태어나기란 쉽지 않은 환경이다. 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중에는 돌연변이도 있게 마련인가 보다. 
인문학과 전통 수묵화를 사랑하는 중국 최고의 문인 기질을 가진 왕슈. 동서양은 물론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지식은 물론, 실제로 산수화와 서예에도 조예가 깊다는 왕슈. 그래서인지 디자인하는 과정이 중국 전통 화가들의 작업과 흡사하다고 한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0년간 설계를 하지 않고 옛 건축에 대한 개조와 복원 현장에서 작업자들과 전통 방식을 익혔다는 그는 외국 유학을 가본 적도 없고, 중국 내에서도 완전히 비주류다. 그런 왕슈가 쟁쟁한 중국의 현대 건축 전문가들을 제치고 프리츠커상의 수상자로 결정되어 중국건축학회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편, 건축 전공 후 단 2년만 건축사사무소에 근무한 후 15년이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로 활동한 리우 지아쿤. 그 과정에서 확립되었을 인문학적 관점과 역량을 가지고 건축, 도시, 조경, 인테리어, 제품 디자인, 설치미술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그는 글쓰기과 건축설계의 공통점, 건축과 영화를 만드는 일을 비교하면서 설명한다고 한다. 그는 건축은 생명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왕슈와 리우 지아쿤이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성장기를 거친 일종의 돌연변이들이라고 본다. 중국 건축계의 수준이 높다기보다는 10년, 15년간 우리는 상상하기 힘든 이단아 과정을 거쳐 탄생한 그 돌연변이로서의 개인기를 가지고 프리츠커상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다. 돌연변이라는 측면에서 그것은 중국의 건축 수준과는 상관없이 수시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 건축계는 어떠했는가? 우리 건축계에도 김수근, 김중업 등 거장의 시대가 있었고, 4·3그룹, 새미준 등의 모임이 결성되어 한국성 찾기, 문화로서의 건축에 관심을 집중했던 때가 있었다. 새건축사협의회로를 결성해 제대로 된 건축설계를 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그 성과로 오늘날의 우리에 이르렀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것은 ‘옛 부여박물관 사건’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에 한없는 분노와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기성세대는 전 국민적인 왜색 시비로 이 부여박물관과 박물관 설계자인 김수근 선생을 마치 마녀사냥 하듯이 짓밟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후배 건축사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설계에서 한국 전통 건축, 한국성을 찾으려 하다가 잘못되면 사회에서 낙인찍히거나 희생당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지 않았을까? 김수근 선생이 뭔가 디자인의 다양성 차원에서 탄탄한 논리를 펼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황이 지금보다는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그랬어도 우리의 건축 수준이 현재와 같을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그 당시는 전자 제품은 물론 모든 공산품들은 일본 제품이 최고인 세상이었고 일본의 최전성기였지만, 지금의 우리 시대는 일본 제품이 좋은 것인지조차도 관심 없는 선진국 시민으로 사는 시대다. 우리의 실질 국민소득이 일본을 앞선 상황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당시보다는 디자인의 다양성 차원에서만 본다면 우리도 상당히 너그러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번 사그라진 불길을 되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 건축의 공식적인 정체성 찾기, 한국성 찾기는 거기서 끝났다고 본다.

지금의 우리 건축사들은 어떤가? 지난 정권에서의 23회의 부동산 정책에도 우리 기성 건축사들은 아무런 의견을 내지 못하고 침묵했다. 우리가 설계하는 건축물은 그저 예술품일 뿐, 부동산은 아닌 것인가? 신축 건물이 무너져도, 철거를 하다가 무너져도 전체 건축사들의 이름으로 성명서나 사과문 하나 내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주택 공급 부족으로 지금도 논의되고 있는 재건축, 재개발에 대한 완화 정책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질 않는다.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목소리가 어렵다면 건축적인 차원에서의 의견이라도 내야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앞으로 20~30년이 지나면 우리의 아파트들은 어떻게 될까? 그때는 100층으로 올리면 될까? 노후되어 버린 아파트들은 어떻게 할까? 슬럼화되어가는 아파트 단지들과 후손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우리는 치안 담당이 아니니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인가?
작년에는 우리나라도 드디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뿐 아니라 선진국 시민이 된 우리에게 이제 ‘K-Culture(K-컬처)’는 당연하고 익숙한 단어다. 문화의 속성상 경제적인 부담이 큰 건축이 모든 문화현상에서 가장 나중에 나타난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가 맨 나중에라도 지금의 K-컬처처럼 열광을 받을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수준이 올라갈까? 우리 건축이 이 K-컬처의 대열에 짐이 되는 건 아닐까?

나는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한국건축사를 가르치는 건축사다. 한국건축사 강의를 시대별로 다루는 통시적 관점이 아니라 건축물의 용도, 주제, 배경 사상 등 공시적인 관점으로 다룬다. 왜냐하면 현업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판단해도 미래에 건축을 할, 그것도 건축설계를 할 학생들에게 한국건축사를 시대별로 나열하는 강의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서양 건축은 ‘기능, 구조, 미’를 건축의 3대 요소로 삼는다. 근대 이후 공간에 대한 생각이 추가되고 위 3요소에도 많은 현대적인 기술과 생각들이 가미되었으나 기능, 구조, 미라는 기본 3요소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 전통 건축에서 건축은 ‘장인의 기술과 재료의 아름다움’이 있으면 된다고 했다. 이 둘이 있는데도 좋은 건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땅의 기운’과 ‘하늘의 때’를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고도 했다. 땅의 기운이라는 것은 공간(장소, 위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고, 하늘의 때라고 하는 것은 시간(특정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건축은 시점과 위치를 중요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한국건축사라면 서구의 직선적인 시간관이 아니라 순환, 반복하는 우리의 시간관, 시점과 위치를 다루는 우리의 사고 개념으로 건축의 역사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풍수나 음양오행을 이야기하면서 그 기본인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이야기하면, 기성세대인 우리가 처음에 중학교에 들어가서 알파벳을 배울 때처럼 생경해한다. 차이가 있다면 후진국 국민이었던 기성세대는 알파벳을 당연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선진국 시민인 지금 세대들은 ‘이런 것을 뭐 하러 배우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우리의 건축 역사를 서구의 직선적 시간개념으로 풀어 놓았을 때 과연 제대로 전달이 될까? 시중에 나와 있는 한국건축사는 대부분 서구식 직선적 시간으로 서술되어 있다. 건축 역사뿐 아니라 우리는 공교육에서 우리, 우리의 것,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전통적인 관점으로 보는 교육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건축학과는 5년제로 전환되면서 건축학교육인증원에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인증을 받을 때 인증원의 평가에 따라 인증 기간을 짧게 받기도 하고, 지적 사항이 나오기도 한다. 내 강의에 대해서는 “한국건축의 시대별 교육 내용 구성에 대한 검토”를 할 것을 지적받았다. 통시적인 관점으로 본 내용을 보완하라는 내용이다.
나는 베이비부머의 끝자락에 걸친 386세대다. 후진국 ‘국민’으로 태어나 일제가 의도한 역사관의 2차 피해자인 내가, 이제는 선진국 ‘시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증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이런 서구적 역사관을 가진 관점의 지적을 한국건축사를 강의하면서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할 때면 가슴이 답답하다.
또 우리의 건축 교육이 설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아쉽다. 건축학과이니 당연히 설계 수업이 있어야겠지만 지금의 설계 방식은 인풋 없는 아웃풋 교육이라고 생각된다. 나름의 인문학적 가치관이 반영된 생각이 인풋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풍, 프랑스풍, 이탈리아풍, 혹은 국적 없는 형태 만들기의 아웃풋이 나온다.
각 대학들은 나름의 고충 때문에 이론 수업은 시간 강사로 때우고 설계 교수들을 많이 확충하려고 노력한다. 소위 명문 대학에도 한국건축사를 전공한 교수를 찾기가 힘들다. 그러다 보니 자기만의 생각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역사, 인문학에 대한 소양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영역이 되어 버렸다. 더구나 우리 학생들은 지독한 입시 제도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에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 인풋 없이는 자기 생각을 할 수 없고, 자기 생각 없이는 건축의 깊이가 생길 수 없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내가 학부 시절 가장 존경하고, 내게 건축사로서의 마인드가 생기도록 한 교수님은 한국건축사를 전공하신 교수님이셨다.
어디선가는 한국성 찾기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한국 건축의 정체성 관점에서 보는 한국 건축, 특히 건축설계의 현장은 한없이 무겁기만 해 보인다. 이제 와서 우리 건축계가 과거 일본처럼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처럼 개인적인 돌연변이가 생기기만을 바라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정신 자원을 찾아내고, 이미 이룬 가치체계를 현재의 생활에 맞게 갱신하는 노력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건축사들이 우리의 역사에 대해 고찰하고 문화에 대해 사유하고 성찰한다면 멀리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K-컬처를 현대의 우리가 온전히 다 이룬 건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 그 당시 과거에도 최고였던 것들이 DNA로 우리 몸에 내재되어 현대판으로 재현된 것이다. 과거 한때라도 세계 최고를 만들었던 민족이 현대에 와서도 세계 최고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팔만대장경으로 불리는 고려대장경판, 한글,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 화문석, 백자, 청자 등과 무형 유산인 종묘제례 및 제례악, 판소리, 탈춤, 남사당놀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최고들이 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세계적으로 인정되어 세계유산이나 세계기록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유산들만 보아도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는 우리에게는 훌륭한 건축 유산들이 많다는 것도 다행한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종묘, 석굴암, 해인사 장경판전, 화성과 남한산성, 궁궐과 왕릉, 서원과 사찰, 역사 마을, 경주와 백제 역사유적지구는 물론 등재되지 않은 유산 중에서도 훌륭한 건축 유산들이 수없이 많다. 더구나 이런 건축 유산들과 관련한 각종 의궤들 속에 어떤 노다지가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부서지고, 버려지고도 남은 것들이다. 이런 훌륭한 건축문화유산을 만들고 또 가진 경험이 있는 우리이기에 현대는 물론 미래에도 훌륭한 ‘K-Architecture’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DNA를 가졌다고 본다. 세계의 건축계에 우리의 정체성이 담긴 건축, 나아가 미래 인류의 삶을 위한 우리만의 건축을 선보일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오기를 고대한다.



 

 

글. 유훈조 Yu, Hoonjo (주)재마건축사사무소

 

 

유훈조  건축사 · (주)재마건축사사무소

 

성균관대학교 공과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동대학원 건축학과 석·박사를 졸업했다. 건축문화설계연구소와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정림건축 등을 거쳐 현재 (주)재마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강서제일교회 본당과 청파동교회 본당 설계 및 감리, 안면도 ‘C’ 펜션, 용인 동백지구 유타운, 광교 레고하우스, 과천 여안재, 용인 세정상가 신축 설계 및 감리, 노변동 사직단 복원·정비 외 다수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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