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양녕 청년주택생활 길, 삶의 플랫폼 2025.5

2025. 5. 31. 10:4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Yangnyeong Youth Housing Everyday Path, Platform for Living

 

 

 

<양녕 청년주택> 서측 전경 © 최진보

 

약속시간은 오전 9시 반. 그보다 조금 일찍 근처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양녕 청년주택 으로 가는 길은 다소 가파른 느낌이었다. 오르는 길의 직각 방향으로 나 있는 길 역시 경사가 있고, 그 때문에 저층 주거의 매스는 계단 한 칸에 하나씩 올려놓은 화분처럼 층층의 스카이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시간에 계획대지 방향으로 가는 이는 거의 없고 대부분의 사람이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현상은 이 일대가 물을 담은 저수지와 같이 주거와 거주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인 듯 보였다.

양녕 청년주택 은 지도나 도면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은 언덕의 등성이에, 마을의 내측에, 저층 밀집주거지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한적하고 조용하다. 이 건축이 이 장소, 이 마을과 어우러져 존재한다는 느낌은 36세대 주거의 볼륨에서 비롯하는 듯하다. 주거매스는 3개의 유니트, 3개 층을 하나로 하여 9세대가 구성되고 그 덩어리 4개가 모여 전체를 이룬다. 적지 않은 세대수를 수용해야 하는 난해한 요구는 유니트를 집적시키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창의적인 제안을 통해 도시에 맞는 스케일로 변화하고 있다. 36세대는 마을에 비해 무겁지만, 하나의 매스로 작동하는 9세대는 적절한 축척을 가지며 오히려 가벼워 다양한 구성이 가능하다. 이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면은 내측 마당에 면한 매스 중 하나가 꺾여 다른 방향성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자칫 경직될 수 있는 유니트 매스에 다양함과 경쾌한 리듬을 만든다. 이와 같은 모습은 비슷한 것 같지만 저마다 모두 다른 우리 저층 도시주거의 양상과 닮아 있으며 그래서인지 유니트 매스는 스스럼없이 마을과 어울린다. 가스관은 노출해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다소 도드라져 보였는데, 프로젝트의 중간에 열원방식이 바뀌었다는 설명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밝은 벽돌의 정제된 유니트 매스가 도시나 마을과 어우러진 축적임을 인식하기에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더욱이 주거부분의 공용부분은 개념적으로는 十자로, 유니트 매스와 공용부가 서로 맞물리게 계획되어 있어 4개의 유니트 매스는 더욱 명료하게 정의된다. 공용공간의 단부에서 거주자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도시의 여러 장면을 자연스레 볼 수 있으며, 공용공간의 형상은 직교 체계에 변주를 주어 집을 드나들면서 다양한 경험이 가능하다.

116개의 지역생활권, 10분 동네, 생활SOC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단어들로 도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관념을 넘어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삶과 맞닿아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듯 양녕 청년주택 의 지상 2층은 마을의 다양한 활동을 담는 커뮤니티 시설이 배치된다. 커뮤니티 시설은 동서방향으로 계획된 ‘마을로’에 의해 두 개의 조닝으로 나뉜다. 2층 커뮤니티 시설을 관통하는 외부공간인 마을로는 과감하다. 개념적이고 직설적인 마을로의 형상과는 대조적으로 마을로가 커뮤니티 시설과 맺는 관계는 세심하다. 커뮤니티 시설은 크게 3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마을로에서 직접 진출입할 수 있어 그 관계가 긴밀하고, 나머지 둘은 양녕 청년주택 의 주출입구를 통해서 접근할 수 있어 거주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있다. 주출입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 시설 둘은 계획단계에서 입주자 그룹과 논의한 결과 거주자 사생활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백색 금속 패널로 외벽을 구성하여 열림과 닫힘을 조정하는 것을 기본형으로 하고 있으나, 마을로에 면한 부분은 커튼월을 두어 커뮤니티 활동이 길에서 보이는 개방성을 가진다. 커뮤니티 시설은 이제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입주를 준비하고 있는 단계라 지금은 그 장면을 상상해야 하지만, 멀지 않은 시간에 실제로 활발한 쓰임이 동네와 어우러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녕 청년주택 의 지상 1층과 지하 1층의 주요 시설은 각각 거주자 주차장과 공용 주차장이다. 두 주차장은 각기 다른 길에 면하여 서로 다른 방향에서 진입한다. 개인적으로 양녕 청년주택 의 가장 인상적인 건축적 제안은 길의 레벨을 포착하고 그 높이에 적합한 층고를 설정하여 지형과 기능, 구조와 덕트 워크를 통합적으로 해결하는 성취에 있다. 상도동의 완만하지 않은 경사를 걸으며 궁금했던 것이 높이를 바꿀 수 없는 길의 레벨을 어떻게 다루었을지, 지형과 건축이 어떻게 관계를 가지고 있을지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정교한 답변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공용주차장의 지붕이자 거주자 주차장의 바닥은 수평적인 레벨 설정과 합리적 층고라는 기능의 단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공원과 놀이터, 옥외 휴게공간의 바탕임과 동시에 앞서 커뮤니티 시설과 함께 서술했던 동서방향의 ‘마을로’와 남북방향의 ‘청춘로’를 그 위에 놓고 대지를 둘러싼 길과 연결하여 오픈스페이스를 도시로 확장한다. 청춘로는 평평하고 차분하게 길을 잇고, 마을로는 4.5미터가량의 높이 차이를 입체적으로 가로지른다.

공공건축은 관련된 기관이 많고 결정의 절차가 복잡하며 다수를 고려해야 하기에 일반적으로 무난한 성격을 지닌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에게 열린 시설이라는 점에서, 또 대부분 복합적 기능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참신함에 대한 가능성이 있으며 그 잠재력은 프로젝트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 양녕 청년주택 은 스페이스 프로그램이 생활 속으로 침투하고 서로 다층적으로 연결되어 일단의 혁신과 새로움을 지니고 있다. 목재 벤치에 걸터앉아 양녕 청년주택 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길지 않은 시간에도 어린이집 아이들은 미끄럼틀을 탔고, 어르신은 우리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가로질러 운동을 했으며, 어떤 청년은 반려동물을 산책시켰다. 스스럼없이 계획대지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도면에 적힌 마을로와 청춘로가 생활을 담은 길로 변모하였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길과 치밀하게 엮인 주차장, 커뮤니티 시설, 주거유니트와 공용공간, 외부 테라스와 옥상정원이 마을의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마을버스 동작 02번의 정류장 이름이 ‘양녕 청년주택 ’이라는 것은 이 건축이 지역에 열려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상징일지 모른다.

이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현장을 살피는 데 있어 참여한 회사도, 맡은 바 업무도, 함께한 사람도 여럿이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독립적이고 개별적이지만 양녕 프로젝트라는 하나의 플랫폼에 있었던 그분들 각자의 역할과 시간을 상상해 본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처음 설계공모 안을 준비하고 비로소 짓기까지 짧지 않은 그 시간들은, 다채로운 삶의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는 양녕 청년주택과 서로 닮아 있는 듯하다.

 

 

 

글. 김세진  Kim, Sejin 지요건축사사무소

 

 

김세진 건축사 · 지요건축사사무소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지요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종이의 면으로 시작한 건축이 존재의 개별성과 감각의 보편성을 가지고 스스로 깊이 있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서울대학교 설계스튜디오에 출강한 바 있으며 2020 젊은건축가상, 2022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 부문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ssew@ji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