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유연한 질서’에 따라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공간 2025.6

2025. 6. 30. 16:3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Jungyakyong Funground
A space that actively responds according to ‘flexible order’

 

 

 

<정약용 펀그라운드> 유스홀(아뜨리움)과 댄스 공연장 © 윤준환

 

정약용 펀그라운드 유스호스텔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에 위치한 청소년 복합문화시설이다. 비평을 의뢰받고 시간을 내어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건물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하학적 유쾌함을 보여주는 입면에서부터 시선의 흐름은 시작되었다.

내부로 들어서니 내 나이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낯설게 느껴지는 인테리어 풍경이 펼쳐졌고, 이내 동선을 파악하기로 했다. 우선 내부 공간의 평면 구성은 유스센터라는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게 다채롭고 비선형적인 조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1층에 위치한 유스홀(아뜨리움)은 댄스연습실, 전시실, 공연 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부층에는 숙박 공간, 식당, 옥상정원 등 체류 기반 프로그램이 계층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청소년의 자율적인 활동성과 감성적 확장, 그리고 비형식적 만남을 유도하고 촉진하려는 공간 철학의 구체화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구성은 단순히 기능적 분산을 넘어서, 동선의 리듬과 시각적 시퀀스를 고려한 영화적 전개 방식과 유사한 건축적 서사를 구성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네마틱 시퀀스란 단순한 연속 동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이동함에 따라 사용자에게 점진적으로 정보를 제시하고 감정적 반응을 유도하는 연출적 구성 방식이다. 

이는 마치 카메라가 장면을 전환하며 스토리텔링을 이끄는 영화의 구조처럼, 건축이 특정 공간 장면(scene)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긴장과 해소, 암시와 드러냄의 리듬을 설계함으로써 사용자가 공간 속에서 서사적 체험을 하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이 건물은 단순히 프로그램의 병렬 배치가 아니라, 감정의 기승전결과 시각적 몰입을 고려한 건축적 연출의 흐름으로 읽힐 수 있으며, 26년 전 『영화속의 건축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운동-이미지(movement-image)’ 개념을 느끼게 하는 동선 구성이다.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장면이 변주되고 의미가 층위적으로 쌓이는 건축 내러티브는 이 건물의 공간 체험을 다층적 감각의 흐름으로 확장시킨다.

또한 내부화된 ‘열린 도시의 상호작용성’ 이 작동하는 듯한 각각의 구성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맥락이 발생하는 단위 공간’으로, 공간은 닫혀 있기보다 다양성과 우연성을 포용하고 있다. 유스센터는 복수의 동선이 교차하고, 시각적 개방성과 프로그램 간 상호 참조가 가능한 구조를 통해 마치 축소된 도시의 역할을 수행한다. 유스홀을 중심으로 댄스실, 전시실, 다목적홀, 숙소와 식당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시선과 동선이 교차하는 공간들은 청소년들이 계획되지 않은 방식으로 만남과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는 구조적으로는 비선형적이고 다공성(porosity)이 높은 공간구성과 함께, 기능 간 경계의 유연성, 층위 간 시퀀스의 흐름을 통해 구현되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실험의 플랫폼’으로서의 건축 개념을 실현하고 있다. 즉, 청소년들은 각 공간을 독립적으로 체험하면서도 시선과 동선, 소리와 빛의 흐름을 통해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된 총체로 인식하게 되며, 이는 감정과 행동의 리듬에 맞춰 공간이 동적으로 반응하는 설계적 구조다.

특히 불규칙한 각도와 다각형의 매스를 기반으로 한 평면 구성은, 전통적 그리드 방식에 의존하지 않는 설계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건축 계획에서 그리드(grid) 방식은 수직과 수평의 직각 체계를 기반으로 공간을 나누고 정렬하는 보편적 원리로, 구조적 안정성과 시공의 효율성을 보장하며 질서와 명확성을 추구하는 근대 건축의 대표적 기법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종종 획일성과 예측 가능성이라는 한계를 동반하며, 감정적·심리적 다양성과는 거리를 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대로, 그리드를 벗어난 이형(異形)의 평면 계획은 공간을 유동적이며 개별적 경험의 흐름에 맞춰 구성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이는 형태와 동선의 불규칙성을 통해 사용자의 감각을 자극하고, 경직된 위계질서를 유연하게 풀어내려는 전략이다. 정약용 유스센터는 바로 이러한 접근을 채택하여 다각형 매스의 교차와 비직선의 축을 통해 프로그램 간의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간극을 조정하며, 각 공간이 독립적이면서도 시각적·감각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구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설계는 청소년이라는 사용자의 비선형적 행동 패턴과 감정의 변화에 따라 공간이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설계된 ‘유연한 질서(flexible order)’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파편화된 기하학은 단순히 조형적 장식이 아니라, 프로그램 간의 긴장과 유기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의 사건성(spatial event)’을 창출하는 전략이다. 각 공간은 고립되지 않고, 유스홀을 중심으로 한 시각적·심리적 연속성 속에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반응하며, 청소년의 감정 곡선이나 탐색 욕구에 능동적으로 응답한다. 이러한 구성은 청소년이라는 사용자층의 비선형적 시간감각과 감정의 흐름을 반영한 설계자의 철학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김경남 건축사의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이런 시도들을 더욱 이어가기를 희망하며 계속 관찰해 본다.

물론 내부의 리듬과 운동성이 외관으로 확장되지 못한 점은 미학적 완성도의 아쉬움이 보인다. 다만 평면과 입면 간의 불일치는 단순한 실수나 분리로 보이기보다는 의도된 건축적 반전의 효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유스홀이라는 중심 공간은 내부적으로는 풍부한 채광과 리듬을 구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그 공간의 상징성과 감각적 힘은 제한적으로만 전달된다. 이로써 건축의 ‘내부 경험’과 ‘외부 메시지’ 간의 불균형으로 상징성과 커뮤니케이션이 미흡해 보이는 점은 1% 아쉽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매력은 단면을 통해 드러나는 계단식 층위, 옥상정원, 데크 등으로 공공건축이 도시 환경 속에서 수직적 확장과 외부 개방을 시도한 요소다. 이는 공공 공간을 단순히 지면에서만 머물지 않게 하려는 의도이자, 청소년의 자유로운 동선과 체류를 위한 장치로서의 역할도 내포한다. 공간 심리학적으로 볼 때, 계단식 구성과 층위 이동은 사용자에게 심리적 기대와 탐색의 동기를 부여하며, 옥상 공간과 외부 데크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회복의 장소로 작동한다. 행동심리학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외부 구조물이 ‘행동 유도자(affordance)’로 작용해 특정 행동(예 : 앉기, 대화, 머무름)을 유도하며, 이는 공간이 사용자의 신체와 사회적 활동을 매개하는 방식으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정약용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이 유스센터는 실학이라는 철학과 교육의 정신을 계승하는 공간적 은유가 되어야 한다. 평면 구성의 비선형성과 다층적 공간 조직은 정약용의 사유와 실천, 즉 경험·검증·다원성을 건축적으로 변환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정약용 유스센터는 프로그램 구성과 평면 전략, 공간 체험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건축은 단지 기능의 집합이 아니라, 감정의 수용소이자 사회적 상호작용의 무대이며, 무엇보다 시간 속에서 경험되는 총체적 예술이다. 향후 유사한 공공건축에서는 평면의 창의성과 외피의 상징성, 그리고 사용자 경험의 감정적 흐름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총체적 건축 언어가 더욱 풍부하게 나타나는 우리 건축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 건축사·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영화 속 건축이야기(1999)』, 건축사가 쓴 최초의 경영서적 『스페이스마케팅(2007)』, 『하트마크(2016)』 등의 저서가 있다. 1998년 부터 다수의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작업 활동 중이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