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31. 10:2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Visitor’s Report on the 2025 ASA Expo
태국건축사협회 ASA(Association of Siamese Architects under Royal Patronage) 의 2025년 컨벤션이 5월 3~5일 방콕에서 열렸다. 올해로 창립 90주년을 맞는 태국건축사협회의 올해 전시회는 여러 세대를 관통해서 사회의 발전에 기여해온 건축과 건축사들의 공로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과거, 현재 그리고 완벽함을 기한다는 의미로 ‘Past, Present , Perfect’를 주제로 방콕인근의 IMPACT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다.
대한건축사협회에서는 이건섭 국제위원장이 컨벤션에 참여해 이 자리에 모인 아시아 12개국의 협회 회장단에게 9월에 인천에서 열리는 아카시아 콩그레스를 홍보했다.
5월 3일 오후에는 태국건축사협회(ASA)와 대한건축사협회(KIRA) 간 교류회의를 개최했다. 장소는 방콕소재 So/ Bangkok 호텔 7층 회의실에서 이뤄졌으며 참석자는 태국건축사회장을 포함한 국제담당 부회장, 학술담당 부회장 등 5인과 KIRA 국제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태국의 건축사협회 Asae 회장을 비롯한 회장단과 협의를 통해 양국 건축사협회의 실무교류 확대, 건축대학 간 상호 학생 디자인 워크숍 기회 증진을 위한 협의를 가졌다.
상호 간 초청에 대한 감사 인사 후 90년을 맞는 ASA에 대한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대한건축사협회도 올해 60주년을 맞아 9월의 아카시아 인천대회를 개최하게 된 만큼 ASA에서 많은 회원이 참여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Asae 회장은 9월에 인천에서 양 협회가 학술과 사회봉사 부문에서 많은 교류가 있기 바라며, 이전에 체결된 상호 협력 MOU도 갱신해서 더욱 관계를 두텁게 하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매년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ASA 엑스포에는 실무건축사들과 학생들의 설계작품이 전시될 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디자이너, 도시계획가들이 연합해서 전시를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태국에서 건축사들이 건축과 인테리어, 도시계획을 모두 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들의 위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증거이다.
눈길을 끈 또다른 전시는 태국 건축에 공헌한 초기 원로들의 모더니스트 건축 전시회였다. 태국 도코모모와 ASA 합작으로 준비된 전시에는 1960~80년대 태국 각 지역에 새로운 대학들이 설립되던 당시 대학 캠퍼스에 많은 모더니즘에 입각한 건축설계를 남긴 건축사 Amorn Sriwong의 구조미와 건축에 대한 전시가 있었다.(참고_ https://asa.or.th/news/23563/)
빌 벤슬리 강연
전시와 병행해서 열린 강연에서 주목할 만한 연사는 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출신의 조경 디자이너이자 건축 디자이너인 빌 벤슬리(Bill Bensley)였다. 베트남 다낭의 인터컨티넨탈 호텔과 방콕의 시암호텔 등 럭셔리 호텔 디자인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의 강연인 만큼 많은 청중들이 몰려 그에 대한 관심을 증명했다. 그는 자신의 청년기를 회상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20대의 벤슬리는 1980년대 초에 미국에서 조경 대학원을 다니다가 아시아로 떠난 여행에서 그 자연과 문화에 매료된다. 석사학위를 받은 바로 다음날, 다른 친구들이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취직자리 알아보러 다니던 것과 달리 그는 친구들과 작별하고 세계를 둘러보는 배낭여행을 떠난다. 식당과 바에서 사람들의 초상을 그려주면서 여행을 계속한 그가 도착한 곳은 싱가포르. 이후 싱가포르와 홍콩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다가 5년뒤 방콕에서 자신의 사무실을 열고 독립한다.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한 호텔에 딸린 작은 조경프로젝트였다. 작은 사무실을 꾸린 그는 하는 모든 호텔 프로젝트마다 그 지역의 자연과 문화에 순응하되, 설계도면을 그려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 그림, 소품 등을 모두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만들어 내기로 결심한다. 그 업무 영역은 호텔 사이니지, 정원 디자인의 디테일, 레스토랑의 냅킨까지 광범위하게 뻗쳐 있다. 지금 150명이 넘는 그의 사무소 스태프들은 디자이너뿐 아니라 장인, 화가 등이 망라된 중세의 교회건축 팀과도 유사한 성격을 지닌 건축 장인들이 모인 개성 넘치는 집단이 된다. 럭셔리 리조트를 구성하는 데 자신의 스태프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벤슬리는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https://www.bensley.com)에 그와 협업하는 직물, 가구, 목공, 화가, 사진작가 등을 열거해놓고, 협업에 의해 탄생한 디자인의 성과들을 홍보하고 있다. 건축사가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는 것이 상식이지만, 작은 소품과 가구를 만드는 장인들까지 자신의 홈페이지에 실어서 같이 홍보하는 것은 팀웍과 협력에 대한 성과를 중시하는 진지한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세부사항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협업에 의한 성과를 공유하는 방침은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이게 되고, 그의 사무소는 리조트와 호텔 프로젝트를 거듭 성공시키고 영역을 확장해서 지금은 전세계 200개의 호텔 프로젝트를 수행한 호스피탈리티 디자인의 거장으로 명성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디자인관을 묻는 질문에 “스스로를 반복하기 시작하면 이미 죽은 것 (Once you start repeating yourself, you are dead!)”이라고 언급한 그는 이번 ASA 강연에서 한 학생이 던진 “미래의 디자이너들에게 당신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했다.
지금 당장 핸드폰을 꺼라, 당신 핸드폰에 저장된 수천 장의 사진은 당신의 디자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제 스케치북을 들고 여행을 떠나라 관찰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를 나누라,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될 것이다.
강연을 마친 벤슬리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한국의 제주도에 했던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한국의 건축인들과 협업하고 교류할 기회를 고대하겠다고 언급했다.
대만건축사회와의 대화
이번 태국 ASA 컨퍼런스에 참여한 외국 건축사협회에는 대만의 건축사협회가 대거 참여해서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그중 많은 인원들이 대만 타이중(臺中)시 건축사회 소속이었다. 대만의 건축사들은 우리가 고민하는 설계용역비 지급문제를 말끔히 해결한 좋은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랑해, 귀가 번쩍 뜨였다.
대만 타이중(臺中)시 건축사회( Greater Taichung Architects Association, 직전회장 鄭明裕, Barry CHENG )의 현 회장 Yu Cheng Zong에 따르면, 대만의 건축설계 계약과 대금지급 방식은 건축사와 건축주 사이 계약이 체결되면, 건축주가 협회가 관리하는 에스크로 구좌에 용역비 전액을 입금하고, 건축설계의 성과와 진도에 맞추어 건축사가 계약된 성과를 이룩하면(예를 들어, 건축심의나 허가를 득했을 경우) 협회가 용역비를 건축사의 계좌로 입금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대만 타이중시 건축사회는 이런 협회의 힘은 대만에서 건축허가 도서검토 업무의 상당부분을 건축사들이 수행하고, 공무원은 건축 허가과정의 공정성을 체크하고 도서검토 결과에 따라 허가증을 발급하며, 다음 단계의 건설공사의 안전과 공공성을 확인하는 업무를 건축사가 수행하기 때문에 건축사협회가 그만큼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건축사가 전문성을 활용해서 도서검토의 공신력을 인정받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건축사의 직업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대만에서 건축사의 한자표기가 ‘建築師’로 스승 사(師) 자를 쓰는 것부터 사회적인 존중이 따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대만에서 온 다른 구성원들과도 대화해 보았는데,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건축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위해 노력해온 건축사회의 정책 덕에 소규모 건축사사무소 일수록 더욱 큰 혜택을 입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협회에서도 의무가입으로 많은 젋은 건축사들이 입회해서 협회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이런 정책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대만 건축사회의 정책방향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겠다.
방콕의 새로운 명소 One Bangkok
태국건축사협회가 이번 컨벤션에 참여한 외국 건축사들에게 방콕의 새로운 개발과 건축사례로 안내해 준 곳은 One Bangkok이다. 우리나라 용산의 철도정비창 부지가 개발되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대규모 개발 사례다. 429,752제곱미터(13만 평) 규모 부지에 32억 달러의 투자 끝에 2024년 완공된 One Bangkok은 5동의 오피스, 3개의 호텔, 3개의 주거타워가 들어선 야심찬 도심복합시설이다. 도심개발의 주제로 ‘예술과 문화’의 융합을 내세우는 것은 흔한 추세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마스터플랜 초기부터 공공조각과 시민이 즐기는 예술 프로그램을 철저히 기획에 반영해 개발사업의 동력으로 만들었다. 인도계 영국작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와 조각가 토니 크랙(Tony Cragg), 그리고 태국의 설치미술가에 이르기까지 예술작품이 단지 곳곳에 세심하게 배치되어 시민들의 휴식과 방문 의욕을 북돋운다.
‘예술과 문화’ 다음으로 강조한 것은 ‘지속가능성’으로, 이 단지의 완공까지 친환경적인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채택해서 1년에 370만 톤의 물 사용을 절감하고 연간 탄소배출량을 3만 5,000톤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홍보한다. 건축에서의 친환경성이 단순히 더 높은 등급의 친환경 마크를 건물에 붙이기 위해 경쟁하는 것에서 벗어나, 진정한 비용대비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방향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방문해 본 결과 One Bangkok은 방콕의 도시 개발에서 시민에게 안전과 편의성을 보장하고, 장소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요소들을 적절히 잘 활용한 도시개발의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글·사진 이건섭 Rhie, Gibson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 위원장
이건섭 건축사 · 자유기고자 (주)스튜디오5 건축사사무소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장이자 (주)스튜디오5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다. 연세대 건축과와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삼성미술관, 고려대 백주년기념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미국 Virginia Tech에서 교환교수로 건축역사 및 이론을 가르쳤다. 지은 책으로 네이버에서 오늘의 책으로 선정된 『20세기 건축의 모험』이 있다.
gibs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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