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위해 필요한 집들 2025.7

2025. 7. 31. 10:3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Houses needed for my child



 

 

신림동 주변 전경 © 현승헌

 

인터넷이라는 단어도 생소하던 시절, 청년으로 살아가던 시기를 지나 모바일폰, 스마트폰을 거쳐 AI 와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하는 지금까지,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그에 따른 급격하고 다양한 생활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시대이다.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청년이라 불리던 동년배들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하며 머물렀던 곳은 자취방, 하숙집, 원룸, 고시원들이다. PCS 폰이라 불리던 16화음 휴대폰을 들고 하숙집, 자취방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카메라가 달린 컬러 휴대폰을 사용하던 시기를 지나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드디어 스마트폰이 만들어졌다. 이동할 수 있는 휴대전화 장치를 통해 우리는 생활 속에서 이전에 없던 다양한 시간적, 공간적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 즈음에는 목돈이 없어 가능한 적은 월세를 부담하는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현실은 5제곱미터 내외의 1~2평 남짓한 방에 있지만, 스마트폰을 들고 온라인 세상을 활보하며 좋은 공간과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꾸역꾸역 꿈을 꾸던 시간이었다. 이후에 직장 생활을 하며 적은 금액이지만 조금씩 모아둔 목돈을 활용해 전세 형태의 다가구 주택으로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청년이라는 시기에 집을 찾아가는 과정이 마치 신파와 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지는데 그 당시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지금의 청년들에게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통상적으로 집을 짓는다는 개념과 집을 찾는다는 개념은 의미상으론 다른 이야기이다. 다만 우리가 어딘가에 직접 살아가기 위해서는 집을 짓는 경우와 찾는 경우 중 무엇이 많을까? 우리가 직접 살기 위해 짓는 집을 제외하고 찾게 되는 그 집들은 누가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이제는 의식주라는 개념처럼 개인에게 꼭 필요한 필수품이 되어버린 휴대폰이라는 장치가 만들어지고 진화하는 동안, 하숙집에서 고시원까지 우리의 생애주기에 따라 누구나 한 번쯤 찾아 빌리게 되는 그 집들은 과연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이 집을 찾아야 하는 시대에서는 과연 어떤 집들을 빌리며 생활하게 될지 의문이다.

빌려주기 위한 집을 만드는 과정은 대부분 임대수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최대 수익을 위한 최소한의 면적과 최대 수량의 집을 만들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집을 만드는 과정에 많은 비용이 필요하니 공사비도 환수해야 하고 이자도 생각해야 하니 당연히 수익을 고려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건축사가 해야 할 일은 적정한 수익을 고려한 면적과 세대 수를 찾아내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곳에 살게 될 사람들을 위한 공간적 배려이다. 배려심 있는 건축주를 만나 좋은 공간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어려운 공간적 상황에서라도 치밀하고 합리적인 공간 계획으로 살게 될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이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집이 되면 좋지 않을까.

스스로 고민의 과정에서 이런 빌림의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고민했던 집들은 다행히도 주로 서울 도심 내 일반주거지역 내 소규모 필지 등에 민간과 공공이 협력해 진행했던 프로젝트였는데, 공공에서 토지를 저렴하게 민간에 장기간 빌려주면 적정한 임대료로 집을 빌려주는 형태와 공공에서 지역의 빈집을 해결하는 방안으로서, 공공에서 소규모로 건축해 집을 빌려주는 방식들이었다. 이 과정에서도 역시 적정한 임대료 책정과 공간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였고, 운영 기관과 사용자와 지역 특성을 고려해 협의하며 계획됐다. 주변 시세를 고려해 적정한 임대료를 산출하고 그에 따른 비교우위의 적정한 공간의 질을 확보하는 방안들을 고려하며 이런 조건 안에서 공간적 배려를 위한 나름대로의 몇 가지 원칙을 적용할 수 있었다.


비교적 초기에 진행했던 성산동 주택에서는 복층형, 가로 채광형, 원룸형 3개의 평면 타입으로 구분하여 적용해 단위세대 평면의 다양성을 획득하고자 했다. 하나의 주택에 위치와 평면 타입에 따라 6개의 유형으로 다르게 구성된 공간은 금액을 벗어나 사용자의 공간적 선택을 유도하는 경험을 만들기도 했다. 이후 구산동 주택에서는 일반적 원룸의 좁은 채광 방향 배치에서 채광 방향에 넓게 배치되는 가로 배치로 계획하여 작은 공간 단위이지만 아파트처럼 3베이 형태로 개별적인 채광, 환기를 확보했고 같은 운영 기관의 상수동 주택에서는 채광창, 환기창, 조망창을 구분하여 적용해 하나의 공간이지만 기능에 따라 다른 3개의 창이 설치되었다. 개별적이고 작은 공간적 상황일수록 채광과 창호 계획을 좀 더 세밀하게 배려했을 때 사용자의 만족도가 더 높아질 수 있었다. 공공주택인 삼양동 주택에서는 기존 빈집 필지 특성을 살려 기존 골목길을 유지하고, 각각의 세대가 길의 연장으로서 동선으로 연결되고 구릉지 특성상 외부 공간(테라스)과의 연계성을 활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집으로 올라가는 공용부 계단이 외부에 직접 열려 외부가 되기도 하고, 함께 사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앞선 경험들은 우리의 주요 관심사인 찾고 빌리는 집에 대해 더욱 심도 있는 고민을 시작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각각의 주택에서의 고민과 자체적으로 추진해왔던 신림동 고시원 대안모델 프로젝트들을 통해서 개별 필지나 지역, 사용자 특성에 따라 연구하여 앞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빌림의 공간들에 대한 기준들을 제안하고 직접 만들어내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고민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집들은 기존에 복제되며 만들어졌던 집들과 차별화될 수 있고, 그 집에서 사람들이 직접 생활하며 보다 긍정적인 경험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빌려주는 집, 빌림의 공간에 대해서도 공간적 가치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비싸게 빌리는 집이 상대적으로 좋은 집이 되었지만, 적정한 금액으로 빌릴 수 있는 좋은 집들이 많아지면 질적으로 좋지 않은 집들은 시장에서 자연적으로 도태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집이라는 개념을 시장 논리로 바라보면 모두에게 필요한 긍정적인 상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게 되고,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상황도 필요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빌려주기 위한 집을 만드는 과정과 집을 찾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시각과 선택에 따라 살기 위한 집, 살기 좋은 집이라는 사회 문화적 가치가 생길 수 있고 그래서 앞으로 빌림의 공간을 만들어 낼 때 그곳에 살아갈 사람들을 더욱 배려하고 대변하는 것이 바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집을 만드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글. 현승헌 Hyun, Seunghun (주)선랩 건축사사무소

 

현승헌 건축사·(주)선랩 건축사사무소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태두건축, 2105건축을 거쳐 2013년 (주)선랩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건축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사회적 기업을 활용한 다양한 방식의 건축 작업 수행을 목표로 활동한 과정과 결과를 인정받아 2024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다.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이자 제주도 공공건축가로 활동하며 서울시 사회주택 시범사업과 도시재생과 관련된 다양한 공간 리모델링 및 지역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간 기획과 운영을 바탕으로, 지역과 장소에 기반한 실질적인 건축 작업으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좋은 건축을 만들고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것을 목표로 일한다.

labp_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