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월계도서관 리모델링두터운 문지방의 상징적 메시지 2025.7

2025. 7. 31. 11:3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Library Wander
The Symbolic Message of the Thick Threshold



 

<월계도서관 리모델링> 남측 전경 © 이남선

 

‘월계동(月溪洞)’은 두 개의 계천(溪川), 즉 중랑천과 우이천 사이에 있는 동네의 형상이 반달(月) 같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월계도서관은 월계1동과 2동의 경계선이자 월계 3동의 진입로와 만나는 월계로변에 위치한다. 양옆에 우체국과 소방서를 둔 이 공공시설은 북서쪽 멀리 초안산을 뒤로 한 채 남쪽의 영축산에 면해 있다. 주변에는 15층 규모의 구축 아파트 단지와 30층 규모의 신축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두 산과 두 계천 사이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무려 9개의 학교가 밀집해 있다. 한 마디로 이곳은 공공도서관이 제 역할을 해야 할 당위가 충분한 입지다. 하지만 기존 도서관은 푸른색 유리 입면의 답답한 관공서 건물에 가까워서, 입지에 기대되는 건축의 상징성을 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엠엠케이엠(MMKM) 건축사사무소의 월계도서관 리모델링은 이런 조건에서 이뤄졌다. 양옆의 우체국과 소방서, 건너편 근린생활시설 블록과 영축산을 제외하면 주변 건조 환경은 대체로 아파트 단지가 지배한다. 그리고 우리의 아파트 환경은 언제부턴가 ‘발코니 확장’이라는 이름의 발코니 제거로 안팎을 매개하는 사이 공간의 가능성을 차단한 지 오래였다.

그렇게 폐쇄적인 내부와 납작해진 외관을 키워온 도시 서울의 어느 반달 같은 천변 사이 동네에서, 재단장된 월계도서관은 공공시설이 마땅히 복원해야 할 사이 공간의 미감을 정면에서 극대화한다. 정면의 본채 벽면 앞으로 돌출하며 문지방 공간의 두터움을 강조하는 콘크리트 프레임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도시적 메시지다. 무미건조한 건조 환경 속에 선명한 격자를 세우는 이 프레임은 마치 ‘여기에 건축이 있다’고 선언하는 듯하다. 나아가 이 프레임의 격자와 그 뒤로 보이는 유리 벽면의 중첩은 납작한 표면이 아닌 입체적 공간으로서 건축의 깊이를 인지시킨다. 모든 것을 납작하게 표면화하는 포스트모던 상업주의의 현실 속에서, 깊은 공간감의 복원은 공공시설의 책무이기 이전에 건축의 본업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두터워진 문지방 공간의 프레임이 모더니즘의 관습적 투명성을 넘어선 중첩의 감각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일찍이 콜린 로우는 지크프리트 기디온이 발터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 건물에서 주목한 모퉁이 유리 커튼월의 투명성을 ‘즉물적 투명성(literal transparency)’으로 구분하면서, 반대로 르 코르뷔지에의 슈타인 주택에서는 여러 불투명한 시각 면들의 중첩이 ‘현상적 투명성(phenomenal transparency)’을 성취한다고 주장했다. 기디온의 투명성이 구조의 정직성을 드러내며 시선을 관통시키는 질료적 속성에 기댄 것이라면, 로우가 주목한 투명성의 핵심은 질료가 아닌 형태의 중첩에 따른 비가시적인 면(plane)의 암시 현상, 말하자면 눈앞의 ‘사실’ 이면에 놓인 ‘함의’에 있었다. 월계도서관 리모델링은 투명성에 대한 이 두 정의를 함께 뛰어넘고 있는데, 기존의 유리 커튼월을 대체한 수평 띠의 유리창과 스팬드럴의 벽면 앞에 새롭게 중첩된 격자 프레임이 내부 인공조명과 결합하여 다소 눈속임적인 암시와 내부 프로그램의 외부적 상징화를 동시에 성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저녁 시간에 실내 차양을 올린 상태에서 불을 켠 월계도서관의 정면을 보면, 프레임의 색채와 유리창 너머의 내부 조명이 함께 만들어내는 두터운 문지방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유리는 그 자체로 투명한 질료이지만 기디온이 주목한 바우하우스 커튼월처럼 다른 입체와의 중첩을 드러낼 정도로 깊은 시선의 관통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유리창은 내부 조명을 외부로 투과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창밖으로 나온 노란빛은 외부 프레임 측면의 노란 컬러 강판과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다. 이는 ‘월계’라는 이름에 걸맞은 달빛의 느낌을 의도한 설계이자, 저녁 시간에 켜지는 내부 조명을 외부의 색채와 결합한다는 점에서 로우의 형태적 현상학이 아닌 광학적 현상학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현상학은 시선의 내부 관통에 주목한 기디온과 반대로 조명의 외부 확산에 주목하며, 여기서 중첩하는 것은 형태도 질료도 아닌 빛과 색의 지각 효과다.

한편 외부 프레임의 격자는 언뜻 내부 골조를 그대로 끄집어낸 듯한 착각을 일으키지만, 실은 내부 기둥의 불균등한 간격과 달리 균등하게(민서홍 건축사에 따르면 감각적으로) 분할된 것이다. 이런 눈속임이 가능한 이유는 프레임과 만나는 벽면 스팬드럴이 수평의 석재 띠로 덮여 있고 스팬드럴 사이의 수평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기둥들도 외부 프레임의 격자와 크게 어긋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2.7미터 높이 유리창과 1.2미터 높이 스팬드럴의 띠들은 가로 길이 총 27.6미터에 달하는 10×4칸 정면 격자와 중첩하며 절묘한 비례를 형성하는데, 특히 2~4층의 가운데 6×3칸 격자를 이루는 각 칸의 가로 대 세로 비율은 모두 2.76×3.9미터로 1:1.414의 금강비(金剛比, Lichtenberg ratio)에 근접한다. 이는 건축사의 수학적 의도가 아닌 감각에 따른 설계였음에도, 공교롭게 국전지 A판형의 가로 대 세로 비율에 해당해서 자연스럽게 도서관 서가에 나열되는 책의 규격을 연상시킨다. A4 두 장이 A3 한 장을 이루는 A판형과 같은 비례 체계는 2층에서 4층까지 가로와 세로 방향 모두에서 일관된 비례를 반복하며 전체적인 조화미를 성취한다.

정면 좌측 2~3층의 5.52×7.8미터 칸은 2개 층 높이를 아우르는 계단식 좌석 공간 앞에, 우측 3~4층의 5.52×9.65미터 칸은 3층과 4층에 각각 위치한 사무실 공간 앞에 해당하는데, 이는 모두 최초 계획되었던 외부 계단이 삭제되고 남은 흔적들이다. 비록 이 두터운 문지방 공간에 사람들의 동선을 중첩하려던 건축사의 최초 의도는 반영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마치 특별히 큰 책의 판형처럼 느껴지는 두 빈칸은 각각 도서관의 테마 공간과 도서관의 명칭 자체를 강조하며 제 나름의 기능적 암시를 하고 있다. 아울러 출입구 위 2~4층에 남은 외부 데크와 그 옆에 심긴 대나무들은 정면의 격자와 벽면 사이에 또 다른 중첩을 일으키며 더 두터운 문지방을 형성한다. 후면 조경과 옥상 정원 등 조경 계획에 관한 건축사의 최초 의도들은 그대로 반영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지만, 그럼에도 정면에서 관철된 이 대나무들의 중첩은 문지방의 건축적 메시지를 강화하기에 특별히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비교적 소규모인 구립 도서관의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관료 체계의 각종 요구 속에서 실험할 수 있는 건축적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제약 속에서도 도시와의 접면에 이 정도의 두터운 미감을 확보한 것은 꽤나 고무적인 성과다. 공공과 민간을 불문하고 많은 프로젝트가 두터운 문지방의 감각을 잃고 납작해져가는 도시 환경에서, 공공건축의 정면 공간은 더없이 상징적인 공유지의 전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재단장한 월계도서관은 정면의 격자 프레임과 프레임 정・측면의 컬러 마감, 내부 조명의 조도를 적절히 조화시킨 따뜻하고 화사한 제스처로 두터운 문지방의 건축을 연출한다. 이는 동네 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한 작업이면서도, 주변 건물과 다른 깊이의 감각이 얼마나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건축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지를 예증하고 있다.



 

글. 조순익 Cho Soonik 건축비평가

 

조순익 건축비평가·번역가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과 도시, 디자인, 비평 분야를 전문으로 다수의 단행본과 간행물을 번역해 왔다. 주로 정신 분석과 문화 비평의 관점에서 건축 현상을 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으며, 저서로 『보는 기계와 읽는 인간: 건축문화 텍스트 읽기』(2019)가 있다. <건축평단> 편집위원이자, 서울건축포럼에서 주관하는 한국건축비평 프로젝트의 비평가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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